
[일요서울Ⅰ오두환 기자] 지난 25일 한국 프로레슬링의 산증인이자 기둥이었던 이왕표 한국프로레슬링연맹 대표 겸 대한종합격투기협회 총재가 장충체육관에서 은퇴식을 가졌다. 이 총재는 1975년 김일 도장 1기생으로 프로레슬링에 입문한 뒤 세계프로레슬링기구(WWA) 헤비급과 미국프로레슬링연합(NWA) 오리엔탈 헤비급 챔피언을 지냈다. 화려한 기술을 갖췄던 이 총재는 지난 1994년 고 김일 선생으로부터 후계자로 지명된 바 있다. [일요서울]에서는 이 총재와 전화 인터뷰를 통해 그의 40년 프로레슬러 인생을 돌아봤다.
“내년쯤 한·중·일 모두 참여하는 프로경기 볼 수 있을 것”
“웹툰과 만화로 볼 수 있는 일대기 준비…희망 주고 싶다”
- 지난 25일 공식적인 은퇴식을 가졌다. 은퇴 소감은?
▲ 섭섭하고 서운하고 그렇다. 시합을 하고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은퇴를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섭섭하다. 또 프로레슬링을 다시 정상에 올려놨어야 했는데 그런 점이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영광스럽고 행복한 면도 없지 않다.
- 비록 은퇴를 했지만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팬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 40년간 정말 과분한 사랑을 주셔서 감사드린다. 이제 링에서 내려왔지만 그동안 제게 주셨던 사랑을 후배들에게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 담도암 투병중인 것으로 안다. 현재 몸 상태는 어떤지? 처음 암에 걸린 걸 알았을 땐 어땠나?
▲ 암에 걸린다는 것에 대해 ‘우리는 열외다. 우리는 (암하고) 관계없는 사람이다’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막상 암에 걸리니까 ‘우리한테도 암이 찾아오는 구나’ 싶었다. 암에 걸렸다는 것을 그냥 받아들였지만 수술도 해야 하고 해서 절망적이기도 했다. 게다가 병원에서는 어렵다고 했기 때문에 ‘이렇게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 투병 생활 중 힘들었던 점이나 자신에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아프고 고통스러운 것은 평생 살아오면서 경험했지만 정신적으로 힘든 것은 경험해 보지 못했다. 체중도 40kg이나 빠졌다. 그러다보니 기력도 떨어지고 만사가 과거와 달라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지금은 많이 호전됐다. 은퇴식도 준비할 정도였으니까. 체중도 15kg이 늘어서 이제 몸무게가 95kg이다.
식생활도 달라졌다. 과거에는 음식에 대해 아무 생각없이 과식도 하고 좋다 싶은 것들은 이것저것 많이 먹었다. 술도 마시고. 하지만 투병생활을 하면서 식단이 확 달라졌다. 암을 이기는데 좋은 음식들만 먹게 됐다. 야채, 청국장 등을 많이 먹는 항암 레시피로 음식을 만들어 먹다보니 책도 만들게 됐다. 제목이 ‘앞치마 두른 세계 챔피언’이다. 내가 경험한 것들을 다른 암환자들과 공유했으면 했다.
또 과거에는 웨이트트레이닝이나 무겁고 힘든 운동을 많이 했는데 지금은 가벼운 운동을 많이 한다. 걷거나 야산을 오른다. 웨이트트레이닝도 고무줄을 이용한다.
- 프로레슬링 선수 생활 40년을 돌아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 큰 산을 넘고 큰 강도 건너고 터널도 빠져 나왔다. 그러는 동안 절망, 성취감, 고난, 역경을 다 겪었다. 한마디로 폭풍의 세월이었다. 어렵게 도전하고 또 도전하고 그래온 것 같다. 평탄한 삶을 살지는 않았지만 운동을 하면서 ‘투지’와 ‘꼭 해야 한다’는 열망으로 어려움을 극복하며 살아왔다.
- 이왕표 선수에게 ‘김일’은 어떤 존재인가?
▲ 스승님이면서 아버님같은 존재였다. 선생님은 항상 인성을 중요시 하셨다. 참지 못하면 레슬러가 될 수 없다고 하셨다. 그리고 남을 배려할 줄 알아야 된다고도 하셨다. 선생님 대회 때는 늘 대회명칭 앞에 ‘독거노인돕기’ ‘소년소녀가장돕기’ 등의 타이틀이 붙었다. 이런 가르침을 실천하려고 하고 있다.
- 침체된 프로레슬링을 활성화하기 위해 변해야 할 것들이 있다면?
▲ 제일 중요한 것은 선수들이 경기를 잘해야 한다. 열심히 하고는 있지만 실력을 향상시켜야 하고 팬들한테 인정을 받아야 한다. 또 팬들도 프로레슬링을 긍정적으로 봐 줘야 하고 TV 등에서 중계를 지속적으로 해줘야 활성화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메인스폰서도 절실하다.
- 프로레슬링의 매력이 뭐라고 생각하나? 경기를 자주 볼 수 없을까?
▲ 선수들의 몸이 건장하고 기술 자체가 크다. 이런 선수들이 링 위에서 방방 뛰고 날다 보니 보는 사람들은 시원시원하고 통쾌함을 느낀다. 그게 바로 프로레슬링의 매력이라 생각한다.
국내에서는 오는 10월부터 전국투어를 기획하고 있다. WWA 아시아연맹 회장으로 임명받은 만큼 프로레슬링을 활성화 시키려 노력하고 있다. 한국, 일본, 중국 3국의 프로레슬러들이 경기를 하는 모습도 조만간 볼 수 있을 것이다. 한국시장만 보고 프로레슬링을 육성하기는 힘들다. 3개국을 오가며 경기를 하다보면 기량도 좋아질 것으로 본다. 빠르면 내년쯤부터 경기를 볼 수 있을 것이다.
- 레슬링 외에도 다양한 활동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다문화가정, 청소년을 돕는 활동 등에 관해 소개 좀 해 달라.
▲ 개인적으로는 로터리클럽에 들어가 조직적인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다문화가정을 위한 결혼식, 고향방문 등을 돕고 있다. 학교폭력 추방활동도 하고 있다. ‘울타리클럽’을 직접 만들어 전국의 중고등학교 특강을 다니며 학교폭력 추방 활동도 하고 있다.
- 향후 계획이 있다면?
▲ 자서전 형식으로 일대기를 만들어 웹툰과 만화로 연재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팬들을 위한 것이다. 또 이런 것들로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교육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 은퇴를 하면서 시합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과거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청소년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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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환 기자 freeore@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