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홍준철 기자] 박근혜 대통령의 집권 3년차를 맞이하고 있는 가운데 ‘청와대’를 사칭하거나 대통령과 친분을 내세워 사기를 치는 사건이 올해만 7건이나 터졌다. 대체로 청와대를 사칭한 사건은 ‘인사 청탁’부터 ‘취직 민원’, ‘관급공사 수주’, ‘인허가 해결’등 일반인을 상대로 1억원부터 10억 이상 사기치다 적발된 경우다. 최근에는 새누리당 현직 당직자로 있는 L씨의 경우 일반인이 아닌 공무원을 대상으로 인사 청탁을 들어주는 대신 금품을 받고 다닌다는 의혹이 일면서 여권을 긴장케 만들었다. 여권 내에서는 정권 임기말에나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 집권 3년차부터 터지고 있다고 우려감을 표출할 정도다. 그 진상을 알아봤다.
- 박근혜 후보 선대위 출신 70대가 금품 요구
- 대통령 팬클럽 활동경력 K·L의원과 친분 과시

본지가 입수한 L씨의 이력을 보면 일반인들의 경우 깜빡 속을 정도로 화려했다. 70대의 고령인 이 인사는 4년제 대학을 나왔다. 또한 각종 국내외 특수 대학원을 수료했고 명예박사직까지 갖고 있었다. 2009년부터 한나라당 중앙위 활동을 했고 박근혜 대통령 팬클럽에서 활동을 했다. 또한 영남이 지역구인 중진급 K 의원과 수도권 중진 L의원과 함께 활동한 전력도 갖고 있었다.
이력이 화려해 공무원도 ‘깜빡’ 속아
이력의 화룡점정은 지난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후보 선거 대책위에서 ○○○위원장직을 맡아 활동한 점이었다. 현재 새누리당 당직을 가졌고 보수단체 상임고문을 맡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 본지가 확인한 결과 실제로 L씨는 새누리당 중앙당 직을 맡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새누리당 중앙위에 재직중인 한 인사는 [본지]와 통화에서 “새누리당 야당시절부터 10년 넘게 당에서 일한 사람이다”며 “고령이지만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고 평했다. 그러나 L씨가 ‘청와대에 가 대통령과 만날 정도로 핵심 측근이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그럴 능력은 되지 못한다”며 “혹시 단체로 당내 원로급 인사들이 들어가 식사를 하는 것이 아닌 이상 힘들다고 봐야 한다”고 내다봤다.
이어 이 인사는 “만약 인사 청탁을 위해 대통령을 팔았다면 그것은 문제”라면서도 “그러나 억대를 요구할 정도로 배포가 큰 사람은 아니고 용돈 수준이 아니겠느냐”고 사안이 확대되는 것을 경계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결국 정부부처에 근무하는 이 인사는 L씨와 관계를 청산했다.
이처럼 박 대통령 집권 3년차를 맞이해 청와대를 사칭하거나 대통령과의 친분을 내세워 인사청탁, 관급 사업수주, 인허가 해결을 해주겠다며 금품을 수수하다 경찰에 적발된 사건이 연이어 터지고 있다. 그중 압권은 정윤회, 문고리 3인방, 7인회 등 언론을 뜨겁게 달궜던 ‘청와대 비선조직 문건 파문’이 터진 지난 연말에 발생했다. 당시 50대 남성이 문고리 3인방 중의 한 명인 이재만 청와대 총무비서관을 사칭해 대기업 임원으로 1년 동안 취업해 있다가 계약이 만료되자 재차 KT에 같은 수법으로 입사하려다 들통난 사건이다.
이 남성은 이 비서관인것처럼 행세해 D건설 사장에게 전화해 “사람 한 명 보낼 테니 취업을 시켜줘라”고 했고 D건설 측은 아무 의심없이 임원으로 쓴 사례다. 그러나 KT 사장은 비서실에 신분확인을 요청해 범행이 세상에 알려졌고 1년간 고액의 월급을 준 D건설은 업계에서 망신을 당했다.
지난 2월 11일에는 박 대통령과 친분이 있다고 속여 수억원을 가로챈 70대 노인이 실형에 처해졌다. 여성인 이 노인은 박 대통령의 상임특보로 임명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명함을 파고 다니면서 주위 사람들을 속여 3억1000여만 원을 가로챈 혐의로 기소됐다. 이 노인은 범행을 위해 자신의 생일날에는 ‘축 생신, 대통령 박근혜’라고 기재된 화분을 사무실에 비치하는 등 치밀함을 보였다.
같은달 17일에 충남 당진경찰서에는 40대 여성이 경찰에 구속됐는데 역시 청와대 근무를 사칭한 경우다. 이 여성은 특수국가기관 근무를 사칭해 ‘청와대 비자금을 관리하고 있다’고 속여 피해자 4명으로부터 6억8000만 원 상당의 돈을 편취하려다 들통이 났다.
경찰에 따르면 이 여성은 “청와대 비자금으로 해외 주식에 투자를 하고 있다”며 ‘월 20%이상의 고수익을 보장한다’고 피해자들을 현혹시켜 약 90회에 걸쳐 6억원이 넘는 돈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특히 피해자들에게 이 여성은 “비자금 성격상 비밀리에 투자가 진행되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투자한 사실을 알리면 안 된다”고 말하며 완벽한 범행을 노렸지만 경찰에 덜미를 붙잡혔다.
박정권 3년차 청와대 사칭사건 7건
지난 4월에도 청와대 직원을 사칭해 1억 원이 넘는 돈을 사기친 50대 남성이 구속됐다. 이 남성은 자신을 전직 국정원 및 청와대 직원이라고 속이고 떼인 돈을 해결해주겠다며 돈을 뜯어냈다. 공직에 전혀 근무한 경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국정원이나 청와대 사정팀 등 정부기관에 근무한 것처럼 사칭해 “해당 기관에 압력을 넣어 사건을 해결해 주겠다”, “국가적으로 은밀하게 진행되는 국가산업채권 처리를 통해 이익금을 주겠다”고 말하는 방식으로 돈을 뜯어낸 혐의를 받았다.
같은달 78세인 노인이 청와대를 사칭해 100여 명의 사람에게 10억 원 상당의 돈을 뜯어낸 사건이 방송을 타면서 청와대와 일반 국민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올해 청와대 사칭 사건 중 피해자와 피해 금액이 가장 컸기 때문이다. 특히나 사기친 주범이 고령의 할아버지였다는 점도 화제가 됐다. 이 70대 노인은 대통령의 직속으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명예회장으로 있다는 비밀조직의 공무원을 시켜주겠다며 사기 행각을 벌이다 들통났다.
특히 이 노인은 다단계 취업 사기를 벌였는데 자신의 휘하에 총책을 두고 지시를 내리면 총책이 모집책에게 지시를 내리는 등 치밀함을 보였다. 한 모집책은 지인들에게 “공무원이 맞는 것 같다”며 “2000만 원을 주면 군 공무원으로 취직시켜 주겠다”고 권유를 하고 다녔다.
피해자들은 ‘돈을 요구하는 것’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던 배경으로 최종 합격 전 돈을 요구하는 사람이 4곳이나 있었으며 취업 진행상황이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전해져 의심하지 않았다. 특히나 이 사기단은 고위층 유명 인사와의 친분을 강조했고 사기 사실이 드러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비밀 조직이니 입단속 철저히 해라”고 말했다.
한편 임기말도 아닌 집권 3년차에 ‘청와대 사칭’이나 ‘대통령 친분’을 내세운 사기사건이 한 달에 두세 번씩 터지는 것과 관련 여권의 한 인사는 “정국이 혼란스럽고 박근혜 정부의 ‘신비주의’, ‘비밀주의’ 인사로 인해 투명하지 않다보니 생기는 일”이라며 “남은 임기라도 시스템이 투명하게 돌아가면 이런 사기사건이 발붙일 공간이 없을 것”이라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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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철 기자 mariocap@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