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박시은 기자] 재계가 잇단 외풍에 전전긍긍한 모습이다. 검찰의 재계 주요기업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를 시작으로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도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공정위는 하도급 거래가 많은 업종 기업들에 대한 불공정 거래 여부 현장 조사를 시작했다. 공정위의 첫 수사 대상은 한진그룹의 싸이버스카이, 롯데그룹으로 편입된 현대그룹 계열사 현대로지스틱스다. 이런 가운데 국세청의 대기업 특별세무조사도 이어지고 있다. 이에 재계는 “박근혜 정부의 비리 척결 정책기조와 임기 3년차에 의례적으로 진행돼온 ‘대기업 잡기’가 진행되는 것 아니냐”는 시선을 보내고 있다.
임기 3년차 맞물린 레임덕 우려…정부 희생물일까
검찰의 대기업 수사가 계속되는 가운데 공정위도 불공정 거래 여부에 대한 현장 조사를 시작했다. 일감몰아주기 규제 시행 후 이뤄지는 첫 조사다.
대기업이 중견·중소 협력업체들에 하도급 대금을 제대로 지급했는지와 내부거래 비중을 밝히는 것이 조사의 초점이다. 결과가 기업들에 미칠 파장은 적지 않을 것으로 예측된다.
공정위의 첫 조사 대상은 한진그룹 계열사 싸이버스카이와 현대그룹 계열사 현대로지스틱스다.
싸이버스카이는 대한항공 여객기 내 비치되는 잡지 광고와 기내 면세품 통신판매 등을 독점하는 비상장 계열사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조원태 대한항공 부사장,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 등 조양호 회장의 자녀 3남매가 싸이버스카이 지분 33.3%씩을 보유하고 있다. 오너일가가 100% 보유한 회사다.
싸이버스카이는 공정위의 일감 몰아주기 규제인 기준인 20%를 크게 웃돈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는 공정거래법 개정을 통해 지난해 2월 시행된 후 1년간의 유예기간을 거쳐 올해 2월부터 본격 시행됐다. 총수 일가 지분이 30% 이상인 계열사가 규제 대상이며 비상장사는 20% 이상이 규제 대상에 속한다. 이는 정상거래에 비해 조건이 7% 이상 차이가 나거나, 연간 거래총액이 200억 원 이상, 국내 매출액의 12% 규모로 거래하는 경우다.
공정위는 싸이버스카이를 통해 오너 일가가 부당한 이득을 얻었는지 따져볼 방침이다.
또 현대로지스틱스는 롯데그룹 계열사로 편입되기 전 현대그룹 소속이었던 2013~2014년에 걸친 계열사 내부거래 자료가 수사대상에 올랐다.
그동안 현대로지스틱스는 전체 매출액 중 대부분을 현대그룹 내 계열사를 통해 올려 내부거래 비중이 높은 업체로 손꼽혀 왔다. 이에 따라 공정위는 올해 초 롯데그룹 계열이 되기 전까지 계열사의 물류 관련 업무를 현대로지스틱스에 몰아줬는지 확인한다는 방침이다.
현대로지스틱스는 올해 초 현대그룹과 현정은 회장이 보유하던 지분 88.8%를 매각하면서 롯데그룹 계열사로 편입됐다.
긴장 못 늦춘다
이처럼 공정위가 동시다발적인 조사를 시작한 것은 한두 기업만 본보기로 엄벌하는 것에 대한 효과가 미비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정재찬 공정위원장은 “일감몰아주기 조사는 일제히 점검해 일괄처리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김학현 공정위 부위원장은 “국내 10대 그룹에 대해서도 철저한 조사를 진행할 방침이며 예외는 없다”고 밝혔다.
다만 재계 내에서는 이 같은 공정위 일감몰아주기 규제에 관한 불만의 목소리가 더 큰 모양새다. 규제 조항들이 포괄적이고 모호하다는 지적이다.
이와 더불어 국세청도 대기업을 대상으로 특별세무조사에 들어갔다. 또 지방자치단체도 지난달부터 기업 본사에 대한 세무조사를 진행할 수 있게 됐다. 복수의 사정당국이 하나의 사안을 동시에 수사할 수 있게 된 셈이다.
국세청은 지난달 19일 탈세, 비자금 조성 등 비리 의혹 조사를 주로 진행하는 부서인 조사4국 직원들을 신세계 계열사인 이마트로 보냈다. 신세계는 지난해 11월부터 비자금 의혹이 불거진 바 있다. 앞서 검찰은 신세계의 법인 당좌계좌에서 발행된 당좌수표가 정상적인 물품 거래에 쓰이지 않고, 현금화된 경위를 포착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밖에 교보증권도 조사 대상에 올라 회계 및 세무 관련 자료를 조사받았다. 2013년 정기 세무조사를 받은 후 2년 만의 조사다.
이 같은 분위기가 지속되자 재계는 박근혜 정부 출범 3주년과 맞물린 조기 레임덕을 의심하는 분위기다.
최근 박 대통령을 둘러싼 여론 악화, 지지율 하락의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정부가 기업을 희생물로 삼았다는 주장이다.
또 기업들이 정부가 요청한 주문에 맞서는 양상을 보이다 화해 분위기 조성에 실패했다는 시선도 있다. 올해 초만 해도 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 “기업 활동의 자유를 보장하겠다”며 정부와 기업들 간의 긍정적 분위기가 조성됐다. 하지만 정부의 임금인상, 고용확대 주문에 기업들이 “투자는 늘리지만 채용은 줄일 수밖에 없다”고 맞서는 양상을 보이면서 흐름이 달라졌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기업들이 정부의 지휘 아래 구석으로 몰리고 있다”며 “반기업정서와 경제민주화와는 다른 문제로 여겨진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처럼 재계에 칼바람이 살벌하게 불자 다음 수사 대상으로 오르내리는 기업들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결정된 것도 없고, 진행되지도 않은 수사이지만 ‘대상에 올랐다’는 소문 하나만으로도 회사 내부가 발칵 뒤집힌다”며 “대다수 기업들이 비상 근무체제에 들어가 관련 뉴스, 정보를 받아보는 데 몰두하고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기업과 사정 당국 간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는 가운데, 이번 수사가 향후 어떤 식으로 마무리 될지 관심이 집중된다.
박시은 기자 seun897@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