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적] 도마위 오른 사정기관ㆍ국회 특수활동비
[대추적] 도마위 오른 사정기관ㆍ국회 특수활동비
  • 류제성 언론인
  • 입력 2015-06-01 09:29
  • 승인 2015.06.01 09:29
  • 호수 1100
  • 1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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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는 상습적인 공금 횡령 집단인가
▲ photo@ilyoseoul.co.kr

“국민 혈세가 국회 수뇌부 주머니 쌈짓돈으로”
정부 부처에 숨어 있는 국정원 예산도 관행처럼

[일요서울 | 류제성 언론인] 2010년 99억4천300만 원, 2011년 98억6천200만 원, 2012년 87억5천만 원, 2013년 84억5천392만 원, 2014년 84억4천92만 원, 그리고 올해 83억9천817만 원.

국회의장, 부의장, 18개 상임위원장 및 특별위원장에게 매년 ‘특수활동비’ 명목으로 지급된 돈이다. 국회 사무처는 매년 특수활동비를 책정한다. 이 예산은 심의 과정에서 원안대로 통과된다. 사용처도 묻지 않는다. 영수증을 제출할 의무도 없다.

국민혈세가 국회 수뇌부의 주머니 속 쌈짓돈이 탈 났다. 홍준표 경남도지사, 새정치민주연합 신계륜 의원이 검찰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국회 특수활동비를 사적으로 유용했음을 자백했기 때문이다. 두 정치인이 ‘검은 돈’의 출처를 위장하기 위해 국회 특수활동비를 끌어댔다는 분석이 많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국회 특수활동비는 물론, 정보기관을 중심으로 한 정부 부처의 특수활동비도 도마에 올랐다. 정부와 국회의 특수활동비가 어떻게 편성되고 집행되는지를 추적해 본다.

‘성완종 리스트’ 의혹의 당사자로 검찰 수사를 받는 홍준표 경남지사와 입법 로비 사건으로 재판을 받는 신계륜 의원이 특수활동비로 가계에 보탰거나 자녀 유학비로 사용했다고 진술했다.

국회대책비·
직책비의 용도

홍 지사는 검찰이 2011년 새누리당 대표 경선 자금 1억2천만 원의 출처를 묻자 “‘국회 대책비’를 아내가 모아서 준 것”이라고 해명 아닌 해명을 했다. 신 의원은 검찰이 매월 200~300만 원씩을 캐나다로 유학 간 아들에게 보냈는데, 이 돈이 김민성 서울종합예술실용학교 이사장에게서 받은 뇌물 아니냐고 추궁하자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을 하면서 받은 국회 ‘직책비’를 개인 돈과 합쳐서 보냈다”고 말했다.

홍 지사가 말한 ‘국회 대책비’나 신 의원이 주장한 ‘직책비’는 국회에서 ‘특수활동비’라고 통칭하는 용어다. 국회의장단과 각 당 원내대표, 국회 상임위원장들에게 의정 활동에 쓰라고 주는 돈인데, 마치 개인 돈처럼 관행적으로 사용해 왔다.

새정치연합 박지원 의원 등이 이를 문제 삼아서 국회 특수활동비 폐지 법안을 제출했지만 3년째 낮잠을 자고 있다. 국회의원들의 밥그릇 지키기다.

국회는 더 나아가 입법부만 문제 삼지 말고 행정부도 따져 보자고 나섰다.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는 “행정부의 경우 연간 8천억 원 이상의 특수활동비를 사용하고 있다. 여기엔 청와대와 국정원, 경찰, 검찰, 국방부 등 모든 부처가 해당 된다”고 말했다. 국회의 특수활동비는 행정부의 1% 수준인 만큼 따지려면 국정원을 포함한 사정기관, 국방부 등 안보기관의 숨은 돈도 함께 파헤쳐야 된다는 의미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한 발 더 나갔다. 정 의장은 “국민 세금으로 조성된 특수활동비는 공적 목적으로 국민을 위해 쓰라고 제공되는 돈이다. 이를 일부 정치인이 사적 용도로 쓰는 것은 문제가 있다. 국회 차원에서 대책을 마련하도록 지시했다”고 일단 밝혔다.

그러나 정 의장은 “특수활동비의 목적상 세부 사용 내역을 모두 공개할 경우 국가적으로 혼란스러운 일이 발생할 수 있다. 공적 용도의 경비는 꼭 필요한 만큼 특수활동비 자체를 없앨 수는 없다”고 말했다.

정 의장이 말한 ‘혼란스러운 일’은 어떤 의미일까. 일단은 국회의장단, 상임위원장단의 경비 지출 내역이 낱낱이 공개될 경우 ‘막후 활동’이 어려워진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정치권에선 겉으로 드러나는 현안 협상 외에도 ‘밀실 거래’가 이뤄지는 게 현실이다. 이 밀실 거래에서 식사비, 술값 등의 경비가 필요하므로 특수활동비도 ‘막후’에 있어야 된다는 의미가 된다.

행정부의 특수활동비가 공개될 경우에도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 심지어 공직사회의 투명성을 강조한 ‘김영란법’을 만든 국민권익위원회도 이 대목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국민권익위는 연간 4억 원 가량의 특수활동비를 불투명하게 집행한 것으로 최근 확인됐다.

더 큰 문제가 있다. 행정부 각 부처에 숨어 있는 국정원 예산이다. 국정원의 예산과 결산은 ‘기밀’을 이유로 정확한 내역이 파악되지 않고 있다. 유 원내대표가 말한 행정부의 특수활동비 8천억 원 가운데 국정원이 집행하는 예산이 절반 정도라고 한다. 국정원은 특수활동비 명목에서 연간 4천억~5천억 원 가량을 집행하고, 예비비 약 3천억 원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정부 부처 곳곳에 산재된 특수활동비 2천억~3천억 원도 사실상 국정원 몫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통일부, 법무부, 국방부, 지식경제부 등 각 부처에 편성됐지만 실제로는 국정원이라고 표시된 금액이 많다. 가령 국방부가 특수부대를 운영할 경우 보안유지가 필요하다. 따라서 그 비용을 국방부 예산으로 잡으면 국회에서 당장 잡혀 공개되기 때문에 국정원 예비비로 편입시키는 방법이다.

그런 돈이 일일이 공개되면 국정원의 정보수집, 대북활동 등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게 정 의장이 언급한 ‘혼란’의 요지라고 볼 수 있다. 국정원 안에서는 ‘설명도 변명도 홍보도 하지 않는다’는 말이 격언처럼 회자되고 있다.

과거에는 국정원이 정권의 통치자금도 관리했다. 국정원 예산을 다루는 곳은 기획조정실이다. 역대 정권은 기조실장으로 대통령의 핵심 측근을 임명했다. 김영삼(YS) 정부 때의 김기섭 안기부 기조실장이 대표적이다.

기업체 돈으로 통치자금 충당

안기부(현 국정원)는 YS정부 때인 1996년 여당인 신한국당에 수백억 원대의 선거자금을 지원했는데, 이 돈은 안기부가 조성하고 집행한 ‘통치자금’으로 확인된 바 있다. 안기부의 통치자금은 자체 편성되는 예산 외에도 기업체 모금으로 충당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 통치 기간엔 모두 6천억~7천억 원의 자금을 기업에게서 거뒀는데, 이 돈 가운데 상당부분을 안기부가 관리했다고 한다. YS 정부 시절에는 기업자금보다는 안기부 예산이 통치자금에서 차지하는 몫이 더 커졌다. 이 돈을 YS의 차남 김현철씨 측근인 김기섭 기조실장이 관리했다.

지금은 국정원의 예산도 꽤 투명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정보기관 예산이 각 부처 예산에 숨어 있는 관행은 완전히 없어지지 않았다. 이는 ‘필요악’이기도 하다. 정치 선진국에서도 정보기관의 예산을 일일이 공개하지는 않는다. 의회의 극소수 의원만 열람할 뿐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국회 정보위원회가 어느 정도는 국정원 예산을 들여다보고 있다고 한다.

여야 정치권에서 국회와 행정부의 특별활동비 예산에 대한 제도 개선 마련에 나섰지만 실질적인 대안을 내놓을지는 미지수다. 이상과 현실의 한계 때문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5월 27일 ‘특수활동비 제도개선 대책단’을 발족시켰다. 6월 중에 개선안을 발표하겠다는 로드맵도 밝혔다. 예산 편성의 최소화와 집행의 투명성 강화가 목표다. 특수활동비 사용 내역에 대한 증빙 서류 제출 의무화, 감사원 및 국회의 결산심사 강화 방안 등이 다뤄질 예정이다.

새누리당도 특수 활동비 제도 개선에 나섰다. 유승민 원내대표는 정의화 국회의장과 면담을 갖고 국회의장실에서 방안을 제시하면 여당이 따르겠다고 밝혔다. 김무성 대표는 “특수활동비를 모두 신용카드로 결제토록 하면 투명성이 보장된다”고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여야의 이런 움직임은 홍준표 지사와 신계륜 의원의 특수활동비 사적 유용 자백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자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나선 측면이 있다. 따라서 국회 집행부는 물론, 국정원을 포함한 국가기관의 특수활동비까지 손질을 가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란 관측이 많다.

실제로 정치권에선 홍 지사와 신 의원의 자백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특수활동비 제도 개선 필요성 목소리보다 크게 들린다. 자신들의 범법 혐의를 부인하면서 신상을 방어하기 위한 수단으로 특수활동비를 공론화 시켰다는 불만이다.
ilyo@ilyoseoul.co.kr 

류제성 언론인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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