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만에 창궐한 ‘죽음 바이러스’
지난 12일 경기도 화성과 강원도 춘천에서 2건의 동반자살 사건이 잇달아 발생했다. 남성 4명과 여성 4명 등 모두 8명이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경찰에 따르면 숨진 이들의 나이와 사는 곳이 제각각이고 유서와 현장 상황으로 미뤄 타살 가능성은 희박하다.이날 오후 1시 10분 쯤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장외리 장외공단 도로변에 주차된 카렌스 승용차에서 20~30대 남성 1명과 여성 4명이 숨져 있는 것을 행인이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 차 안에는 타다 남은 번개탄과 화덕, 유서가 나왔으며 차창 전면과 틈새는 검은 비닐로 꼼꼼히 막힌 상태였다.
숨진 이들은 강모(27·경남 남해), 피모(22·여·경기 평택), 김모(22·여·경기 의정부), 전모(31·여·충남 천안), 황모(20대 초·여)씨 등 5명으로 모두 주소지가 달랐다. 시신이 발견된 승용차는 경남 번호판을 달고 있었다.
약 4시간 뒤인 오후 5시 15분쯤에는 강원도 춘천시 남산면 방곡리 한 민박집 객실에서 20대 남성 3명의 시신이 발견됐다. 박모(28·경기 군포시), 한모(27·주거부정), 방모(21·부산 사하구)씨 등이 숨진 객실 안에는 역시 불탄 연탄 2장과 화덕이 있었으며 현관문과 창문이 모두 테이프로 막혀 있었다. 이들은 지난 9일 오후 민박집에 투숙했으며 시신이 발견되기 하루 전인 지난 11일 가족 등에 의해 가출 신고가 된 상태였다. 일각에서는 두 사건 모두 범행 장소만 다를 뿐 같은 날 같은 수법이었다는 점에서 모종의 연관성이 있을지 모른다는 추측도 나온다. 숨진 8명이 같은 자살 사이트나 블로그 등 ‘특정 매체’를 통해 자살을 공모했을지 모른다는 얘기다. 경찰은 자살한 이들이 사건 당일인 12일을 ‘자살 D-Day’로 삼았을 가능성에 대해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다.
‘마의 12일’ 추가사건 또 있나
2008년 12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 강원지역에서는 연탄을 이용한 ‘연쇄 동반자살’이 유행처럼 번진 바 있다. 인터넷을 통해 무섭게 퍼진 ‘죽음 바이러스’는 지난해 4월 한 달 동안에만 무려 5건의 동반자살 사건을 야기했고 모두 12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특히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무리지어 목숨을 끊었다는 점, 숨진 이들의 절반 이상이 10~20대 젊은이였다는 점에서 사회적 충격은 컸다. 인터넷과 언론 보도를 통해 구체적인 자살 수법이 알려지면서 모방심리를 자극했다는 비판여론도 거셌다.
여전히 집단자살을 공모하는 창구는 인터넷이다. 2000년 이후 ‘자살 사이트’ 등 자살 관련 커뮤니티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이후 집중 단속 덕분에 사이트 수는 확연히 줄었지만 포털사이트 지식검색이나 블로그, 쪽지 등이 그 빈자리를 채우고 있다.
한국자살예방협회의 발표에 따르면 2008년 온라인 자살유해환경 모니터링 결과 전체 자살조장 게시물 중 절반을 훌쩍 넘긴 557건(66%)이 포털사이트 지식검색 서비스에서 발견됐다. 또 개인 블로그에 올라온 유해게시물도 109건에 달했다.
무엇보다 블로그나 지식검색으로 자살을 공모할 경우 이를 외부에서 알아차리는 것이 매우 어렵다. 그나마 공개된 게시판에 올라온 글은 검색을 통해 쉽게 발견할 수 있지만 개인이 주고받는 ‘쪽지’로 연락을 할 경우 이를 막을 방법이 전혀 없는 게 현실이다.
‘집단자살’ 4대 요소
집단자살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로 마음먹은 사람들끼리 일종의 ‘협정’을 맺는 것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 협정은 크게 4가지 요소로 이뤄진다.
첫째는 가정불화, 취업·사업실패 등 한 가지 이상의 분명한 자살동기가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저마다 현실에서 겪던 문제에 대한 해결 방법을 찾다 죽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생각에 도달하게 된다. 셋째는 죽을 장소를 정하고 유언을 남기는 등 자살을 ‘의식화’하는 과정을 거친다. 넷째는 같은 방법으로 여러 사람과 함께 목숨을 끊어 동료들과 자신을 동일시한다.
쉽게 말해 집단자살의 심리는 횡단보도에서 평소 혼자일 때는 빨간불에 길을 건너지 않지만 몇 사람이 모이면 쉽게 무단횡단을 저지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볼 수 있다. 이들에게 있어 죽음은 컴퓨터의 리셋(Reset) 버튼을 누르는 것과 같은 개념인 셈이다.
이인혜 강원대 심리학과 교수는 “청장년의 자살은 의지나 시도에 비춰 실행에 옮기는 비율이 낮은 것이 일반적”이라면서도 “하지만 동반자살은 군중심리와 같아서 단순 충동을 실행으로 옮기는 확률이 높아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된다”고 설명했다.
‘꼬여버린 인생을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열망에 죽음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사람들. 하지만 그들의 선택은 목숨을 건 비겁한 도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게 전문가들과 다수 여론의 지적이다.
[이수영 기자] severo@dailysun.co.kr
이수영 기자 severo@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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