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내부 개혁파 보수파 간 파벌 파워게임 양상
이명박 대통령의 검찰·경찰 개혁 드라이브가 성공할 수 있을지에 국민적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 9일 과천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사회 구석구석에 많은 비리가 드러나고 있다”면서 “검찰과 경찰개혁도 큰 과제”라고 말해 강도 높은 검·경 개혁 작업이 임박했음을 암시했다. 또 이날 이 대통령은 “검찰·경찰은 모범이 돼야 한다”라면서 “검찰·경찰이 국민 신뢰를 받을 만한 확고한 자세를 확립, 시스템을 바꾸고 문화를 바꾸는 게 시급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도 “검찰은 이번 ‘스폰서’ 사건을 내부 문화를 바꾸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며 고강도 검찰개혁을 주문한데 이어 이날에는 경찰까지 포함해서 개혁 노력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하지만 진상조사는 파행으로 이어질 기미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특검수용 여부도 점차 불투명해져 가는 분위기다. 이 대통령의 검·경개혁 의지표명과 더불어 정치권에서는 특검도입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검사 향응 파문 진상조사가 파행을 거듭하고 있어서다.
최근에는 검사들을 향응한 건설업자가 “검찰을 믿지 못하겠다”며 조사를 거부해 사건을 조사하고 있는 검찰이 난감해 하고 있다.
대검찰청 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성낙인)는 “검사 100여명한테 향응했다”고 폭로한 부산 건설업자 정모(51)씨가 조사를 거부해 의혹 규명에 차질을 빚고 있다고 지난 11일 밝혔다.
정씨는 전날 갑자기 검찰을 신뢰할 수 없다는 이유로 불출석 사유서를 낸 뒤 조사에 응하지 않았다. 규명위에 따르면 변호사법 위반 등 혐의로 최근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수감 중인 정씨는 부산고검의 영상녹화조사실 대신 구치소 안에서 조사받겠다고 고집했다.
규명위 산하 진상조사단(단장 채동욱)이 정씨가 접대에 쓴 자금 출처 파악에 나서고 박기준 부산지검장과 통화내용을 녹음한 휴대전화를 압수한 데 대한 반발로 풀이된다.
정씨 측 정재성 변호사는 “조사를 거부한 첫 번째 이유는 건강 악화이고, 두 번째는 검찰 조사를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라며 “상당 부분 조사가 된 만큼 더 필요한 조사는 구치소에서 받겠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규명위 조사 부담감 증폭
또 특검 도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점도 규명위에는 부담이다. 그동안 성 위원장은 정치권의 규명위 활동 비판에 유감을 표시하며 특검 실시에 부정적 입장을 드러냈지만, 야당에 이어 여당 의원조차 ‘특검 불가피론’을 거론하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사건에 대한 검사들의 시각도 규명위가 넘어야 할 숙제다. 검사들 사이에선 “이번 사건은 접대 대가성 규명이 힘들어 규명위 조사에서 나오는 게 없을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조사를 한다 해도 기소하기는 힘들 것이라 보고 있다. 검찰 한편에서는 검찰의 기강을 바로 세우기 위해선 아예 특검을 하는 것도 방법이라는 소리도 들린다. 특검을 통해 ‘제식구 감싸기’ 오해를 불식시키자는 것이다.
이에 규명위는 정치권에서 논의되는 특검이 도입되더라도 사전조사 차원에서 당분간 계속 조사활동을 하기로 했다.
규명위의 하창우 대변인은 “특검은 법안이 발의돼 법률이 제정돼도 발효기간과 준비기간을 감안하면 한 달반 내지는 두 달 동안 조사가 중지된다”며 “진상규명위는 특검이 제대로 조사할 수 있도록 당분간 조사활동을 계속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또 하 대변인은 “진상규명위는 원래 관련자들에 대한 형사처벌보다는 직무감찰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구체적인 검찰의 윤리기강 확립 방안을 제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여야는 지난 11일 오전 원내대표 회동을 갖고 `검사 스폰서' 의혹을 수사할 특검 도입을 전향적으로 검토하기로 했다. 한나라당 김무성,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 귀빈식당에서 취임 후 상견례를 겸한 회동을 갖고 이같이 의견을 모았다고 한나라당 정옥임, 민주당 전현희 원내대변인이 밝혔다. 양당 원내대표는 특검을 검토하되 조사 범위는 조율할 필요가 있다는데 인식을 같이했다. 특히 김무성 원내대표는 별도의 논의기구를 통해 이 문제를 협의하자고 제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깨끗한 조직?
그러나 김준규 검찰총장은 정치권의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와 상설특검에 사실상 반대의사 표명해 논란이 예상된다.
김 총장은 지난 12일 오전 사법연수원에서 열린 강연에서 “검찰에 대한 신뢰가 떨어졌다는 문제에서 (검찰의) 권한과 권력을 쪼개서 남을 주던지 새 권력을 입히는 것은 답이 아니다”라며 “지금 수행하는 권력과 권한에 국민의 견제가 들어가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정치권에서 논의 중인 공수처나 상설특검제는 받아들이기 힘들고 대신 미국의 연방대배심이나 일본의 검찰심사회처럼 일반 시민들이 기소에 참여하는 방안을 도입해 검찰의 기소독점권을 해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또 김 총장은 “(스폰서 검사가 문제되고 있지만) 검찰만큼 깨끗한 데를 또 어디서 찾겠느냐”며 “검찰제도를 국민의 견제를 받는 것으로 바꾸겠다는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이 자리에서 김 총장은 강력한 자정의 의지를 표명하기도 했다.
김 총장은 “과거의 잘못된 관행을 제도와 문화로 과감하게 바꾸고 남아있는 흔적이 있다면 싹 도려낼 것”이라며 “취임하고 나서 ‘변모(transform)’를 많이 했는데 이제는 ‘다시 태어난다(reborn)’고 해야겠다. ‘새 검찰’수준의 변화를 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치권의 검찰 개혁 플랜은 확고해지고 있는 분위기다. 한나라당 홍준표, 남경필 의원은 같은 날 검찰개혁 방안으로 검찰의 기소독점 견제 필요성을 주장했다.
홍 의원은 이날 SBS 라디오 ‘서두원의 SBS 전망대’에 출연, “기소독점주의를 견제하는 기구 및 장치가 필요하다”며 “일본처럼 민간인으로 구성된 공소심의회를 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남 의원도 최고위원·중진 연석회의에서 “기소독점 완화와 분산 등 검찰에 대한 견제와 감시가 구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권 “이번엔 반드시”
또 ‘스폰서 검사’ 의혹에 직면한 검찰을 강하게 비난했다.
홍 의원은 “검찰에 대한 정치권의 반감이 강하다. 대접만 받으려 하고, 검사답지 않으니까 못 믿는 것으로, 검찰총장 이하 전 검사들이 반성해야 한다”며 “검찰 최고위 간부들이 능력 없는 사람들은 아닌지 정권을 담당하는 사람들도 반성해야 한다”고 밝혔다.
남 의원도 “그동안 여러 차례 물의가 있어도 몇 사람이 사표를 제출하는 식으로 흐지부지 넘어가다 보니 (검찰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했다”며 외부 명망가를 위원장으로 하는 당내 검찰·경찰 개혁 태스크포스(TF) 설치를 주장했다.
한편 김준규 검찰총장이 ‘상설 특검·공수처’에 공개 반발한 것을 놓고 정치권을 중심으로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한나라당은 지난 13일 김준규 총장을 겨냥, “변화와 자정의 모습을 보여야 할 검찰이 자기변명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강력하게 성토했다.
김무성 원내대표는 여의도당사에서 열린 중앙선대위 회의에서 “사정기관이 국민의 불신을 받는 것은 국민적 불행인 만큼 과감하고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며 “집권 여당이라고 해서 적당히 넘어가거나 봐줄 게 아니라 메스를 댈 때에는 과감히 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진수희 의원은 “검찰총장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 못하는 것 같아 우려된다”며 “검찰총장이 미리 선을 긋고 마치 저항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비판했다.
이 처럼 비판 여론이 확산되자 검찰은 사태를 진화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대검찰청은 같은 날 “취지가 잘못 전달 된 것 같다”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대검은 이날 낸 보도자료에서 “(김 총장의 강연은) 국민이 지적하는 검찰의 문제와 개혁요구 및 정부차원의 검찰개혁 논의를 전적으로 공감하고 수용하는 것을 전제한 것이며, 국민의 요구와 정부차원의 논의를 부정하고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김 총장은 자신의 발언 이후 파문이 확대 재생산되자 “그런 취지로 말한 게 아닌데 와전돼서 안타깝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개혁논의 자체의 필요성과 논의 진행을 부정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하지만 이는 검찰 조직의 깨끗함을 강조하며 정치권의 사법부 개혁 움직임에 거부감을 표시했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이 때문에 “진심으로 이번 사태를 겸허히 반성하고 개혁을 단행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는 비난여론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윤지환 기자] jjh@dailysun.co.kr
윤지환 기자 jjh@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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