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선 교사, 밖에선 복면강도
현직 고등학교 교사가 낀 3인조 복면강도 사건이 발생해 교육계가 발칵 뒤집혔다. 지난 10일, 대낮에 노부부를 감금하고 금품을 뜯은 3인조 복면강도가 경찰에 붙잡혔다. 강도 일당 가운데는 현직 고등학교 교사가 포함됐고, 해당 교사는 검거 직전까지 태연하게 출근해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막장 드라마보다 못한 교사 복면강도 사건의 전모를 알아봤다.2010. 4. 2. 오전 10시 20분.
경기도 고양시 한 오피스텔에 건강한 30대 남성 3명이 모자를 쓰고 얼굴을 가린 채 김씨(71·여·부동산중개업)를 뒤 따라갔다.
이들은 김씨 부부가 사는 집까지 쫓아 들어갔다. 30대의 건장한 청년들에 의해 김씨와 남편은 일순간 제압됐다. 강도로 돌변한 복면 남성들은 김씨 부부의 두 팔과 다리를 압박하고, 외부에 소리가 새나가지 않게 이불을 덮어 싸맸다. 그리고 수차례에 걸쳐 폭행을 했다.
이들은 흉기로 부부를 위협해 통장에 있던 1600만 원을 빼앗았다. 그리고 경찰에 신고하지 못하도록 자녀와 손자들의 사진과 연락처가 적힌 수첩을 빼앗은 뒤, 2억 원을 대포통장에 송금하지 않으면 가족을 살해하겠다고 협박했다. 강도들의 협박과 폭행에 시달린 부부는 강도들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무서움과 공포 속에 시달렸던 부부는 13시간 만에 강도들의 손에서 풀려났다.
강도가 떠난 뒤 부부는 한동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정신적 공항 증세마저 보였다. 타인에 대한 공포증이 생겨났다. 겁에 질린 부부는 자신들이 경찰에 신고할 경우 범인들이 자녀들에게 해코지를 하지 않을까하는 두려움 때문에 피해 사실을 숨겼다. 하지만 주변 지인이 경찰에 제보한 끝에 통신 수사로 지난 5월 10일 일당은 검거됐다.
범죄의 재구성
경기도 고양경찰서는 지난 10일, 대낮에 노부부를 감금하고 금품을 뜯은 3인조 복면강도사건의 전모를 밝혔다.
J건설대표였던 배씨(31)는 지난 1월,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에 위치한 김씨 소유의 부동산을 70억 원에 매입계약을 채결하고 상가 건설을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배씨는 사채 30억 원을 빌려 계약을 했다. 하지만 부동산 침체와 심각한 자금난으로 40억 원의 잔금을 지급하지 못하고, 사채 빚에 시달리게 됐다. 설상가상 잔금을 지급하지 못해 계약해지 상황에 놓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배씨는 범행을 계획하고 같은 고향인 이씨(32)와 송씨(31) 등 3명을 범행에 끌어들였다. 서울의 한 고교 체육교사인 이씨는 전북 지역 고교에서 함께 운동선수 생활을 했던 후배 송씨의 제의로 범행에 가담했다. 배씨는 이들에게 돈을 받을 게 있는데 받게 되면 나눠주겠다고 속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배씨 등은 지난 3월 24일부터 김씨를 납치하기 위해 미행했다. 하지만 납치가 쉽지 않았다.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김씨의 집과 그가 운영하는 부동산 중개사무소는 가까운 5분 거리에 있었다. 하지만 매일 김씨 부부가 항상 붙어 지내고 있어 김씨 만을 납치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김씨 납치 계획을 바꿨다. 3인조 복면강도였다. 김씨가 배씨의 인상착의를 알고 있다는 점 때문에 복면강도를 계획한 것이다. 지난 3월말, 모자를 쓰고 복면한 이들은 택배기사로 변장해 김씨 집을 찾아갔다. 인터폰을 누른 뒤 “00택배입니다. 택배 왔습니다”고 속였으나, 김씨가 음성을 변조한 배씨의 목소리를 알아채고 열어주지 않아 실패했다. 계획이 연거푸 실패로 돌아가자 세 번째 계획을 세운다. 고등학교 교사인 이씨의 휴무인 날을 골라 대낮에 집에 침입해 납치하기로 한 것.
지난 4월 2일, 복면한 이들은 김씨를 미행하다가 집안에 들어서는 순간을 노려, 일순간 집안에 침입했다. 70대를 훌쩍 넘은 노부부는 건강한 3명의 남성의 급습에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었다.
경찰 “스승의 날 앞두고 교권 추락” 우려
사건은 사건 발생 20여일 후인 지난 5월 10일 범인들이 모두 검거되면서 일단락됐다.
고양경찰서의 한 관계자는 “범인들은 고향 선후배 사이이다. 배씨가 김씨로부터 부동산을 매입했지만, 사업이 여의치 않자 범행을 저지른 것이다. 이씨와 송씨의 경우 배씨의 딱한 사정 때문에 의리상 범죄에 가담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70대 노인을 상대로 한 범죄라는 점에서 죄질이 나쁘다”고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배씨 일당은 지난 3월부터 피해자 부부를 미행하고 치밀하게 범행을 계획했다. 특히, 교사 이씨는 수업이 없는 날을 범행시간으로 선택하고, 알리바이를 위해 범행 직후 학교로 돌아가 근무하는 등 주도면밀하게 범행을 저질렀던 것으로 알려졌다.
학생들의 충격 파장 커
이번 사건에 가장 큰 피해자는 학생들이다.
지난 5월 7일 정오께 강서구 A고등학교 교무실에 경찰이 들이닥쳤다. 교사들은 갑작스러운 경찰의 방문에 당황했다. 곧바로 경찰은 이씨에게 다가가 미란다 원칙을 고지한 뒤, 연행했다. 당시 중간고사 기간이라 학생들은 하교한터라 소동은 벌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교사 연행소식은 ‘학교괴담’처럼 학생들 사이에서 공공연히 퍼져나가고 있다.
B교사는 “그날 오후에 (이씨가)연행됐다는 보고를 받았다. 그저 당혹스럽다”면서 “이씨 사건으로 교권이 땅 밑으로 추락했다. 아무튼 학생들이 이씨 사건을 반면교사 삼아 더욱 학업에 전념하고 바른 법 정신을 가질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현재 학교 측은 지난 11일 긴급회의를 열어 이씨 문제를 논의, 형이 확정되는 데로 파면하기로 했다. 이씨는 사회정의를 가리치는 교사에서 한 순간 범죄자로 전락했다. 그는 평생 삶이 보장된 교사직까지 박탈 당할 상황이다.
이씨는 “피해자에게 죄송하다”면서 “처음에 (친구가) 돈을 뭐 받을 게 있다고 해서 도와줬다”고 후회했다. 그러나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그에게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어 보인다.
또 다른 경찰은 “스승의 날을 앞둔 시점에서 교사가 개입한 범죄가 발생한 점에 안타깝다. 특히 친구 간의 우정과 범죄행위를 구분하지 못한 채 고향후배의 꼬임에 빠져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범죄에 무관심해졌는가를 말해주는 바로미터이다”고 말했다.
[김수정 기자] hohokim@dailypot.co.kr
김수정 기자 hohokim@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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