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특별 기획연재 제 3회 보물을 쫓는 사람들 ‘야마시타 골드 인 코리아’
[일요서울] 특별 기획연재 제 3회 보물을 쫓는 사람들 ‘야마시타 골드 인 코리아’
  • 윤지환 기자
  • 입력 2010-05-17 15:52
  • 승인 2010.05.17 15:52
  • 호수 838
  • 5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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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명 ‘긴노 유리(황금백합)’ 일본군이 숨겨둔 보물찾는 보물사냥꾼 이야기
로버트 커티스에 의한 테레사-2 사이트의 원본 보물지도와 그 해석.

2차 대전 당시 일본군의 자취를 따라 전 세계를 헤매는 한국인들이 있다. 이들은 다름 아닌 보물사냥꾼들이다. 보물을 찾게 해줄 단서는 단 하나다. 일명 ‘긴노 유리(황금백합)작전’이 바로 그 단서다. 황금백합작전은 일본이 점령국에서 약탈한 금과 국보 등 보물을 본국으로 송환하거나 현지 땅굴에 감추는 작전이었다.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몇 달 전, 필리핀 루손(luzon)의 험준한 산악지대에서 일본군의 야마시타 토모유키 장군은 지연작전을 펴고 있었다. 그 동안 일본 황실의 여러 최고위 왕자들은 그들이 약탈한 엄청난 양의 금괴와 보물을 나중에 되찾을 계획을 짰다. 그리고 인근 동굴과 터널 곳곳에 보물을 감추는 작업을 극비리에 진행했다.

이 보물의 실체는 필리핀에서 제일 먼저 드러났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1945년 10월 미국의 첩보요원들은 필리핀에서 몇 군데 일본 보물창고의 위치를 알아내 금, 백금, 문화재, 가공되지 않은 보석 등 상당량의 보물을 찾아냈다. 그러나 미국은 이를 철저히 비밀로 했다.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은 극비리에 보물 발굴을 지시하고 발굴된 보물들은 검은 자금으로 탈바꿈 시켰다.

같은해 9월 2일 일본 천황이 항복하자 야마시타 장군과 그의 참모들은 키안간(Kiangan)협곤의 산악 요새에서 나와 헌병 소령 잭 캔워시가 이끄는 미군 장교들에게 그들의 칼을 바쳤다. 미군은 야마시타 골드의 비밀을 캐기 위해 또 하나의 음모를 꾸몄다.

미군은 보물을 찾아내기 위해 야마시타 장군의 운전사였던 고지마 카시이 소령을 고문했다. 야마시타 장군을 고문하지 않은 것은 국제적 문제를 우려해서였다. 고지마 소령은 ‘샌티(Santy)’라 불리는 미군 장교에게 혹독한 고문을 받았다. 그는 고지마 소령으로부터 야마시타를 태우고 돌아다니던 모든 장소, 곧 금괴와 보물이 묻혀있는 장소를 추궁했다.

샌티의 고문을 지시한 인물은 에드워드 랜즈데일 대위다. 그는 1945년 9월 당시 37세로, 전시에 샌프란시스코에서 OSS를 위해 선전 문구를 쓰던 홍보 요원이었다. 하지만 그는 나중에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냉전투사 중 하나로 거듭났다. 랜즈데일 대위는 필리핀으로 파견돼 근무하게 됐다. 이때 그는 야마시타 장군과 고지마 소령에 대해 듣게 되고 모든 고문 과정에 참여했다.

10월 초 고지마는 결국 모든 사실을 털어 놓았다. 그는 샌티와 랜즈데일을 마닐라 북구의 산악지대에 있던 10여 곳의 골든 릴리 보물창고로 인도했다. 그 중 두곳은 쉽게 개봉됐는데, 그 안에 있던 것을 보고는 모두 놀라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것이 야마시타 골드라는 전설의 시작이었다.

샌티의 팀이 나머지 창고들을 개봉하는 동안 랜즈데일 대위는 도쿄의 맥아더 장군과 워싱턴의 트루먼 대통령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다. 트루먼은 각료들과 협의 후, 발굴 작업을 진행시키되 그것을 국가 기밀로 할 것을 결정했다. 이 보물들은 금괴와 백금 그리고 가공되지 않은 보석들이었다. 그 양은 대형 화물트럭 수백 대로 실어 날라도 모자랄 정도로 많았다.


미 정부의 검은 황금으로

미 행정부는 이 보물을 공산주의와 싸우기 위한 정치 활동자금으로 사용했다. 트루먼 행정부는 이 ‘검은 황금’을 통해 무제한에 가까울 정도로 막대한 지원금을 댔다. 또 이 검은 황금은 미국이 동맹국의 국교를 강화하거나 정치 지도자들을 매수하는데 쓰였다. 심지어 제 3국의 선거를 조작하는 작업에도 이 검은 황금이 동원됐다.

이 자금을 이렇게 사용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은 육군성장관 헨리 스팀슨, 존 맥클로이, 로버트 로벳, 로버트B. 앤더슨이었다. 맥클로이는 나중에 세계은행 총재가 됐고 로벳은 국방성장관, 앤더슨은 재무성장관이 되었다.

이들은 이 검은 황금의 유통과 활용을 위해 비공식적으로 블랙이글트러스트(Black eagle trust)라 불리는 기금을 창설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이 아이디어는 1944년 7월 44개국이 뉴햄프셔 브레튼 우즈에서 전후 세계 경제를 계획하기 위해 모인 자리에서 최초로 비밀리에 논의됐다.

이런 사실은 CIA 문서와 기타 미국의 비밀문서를 통해 이미 여러 차례 확인된 바 있다. 특히 전 CIA국장 레이 클라인은 샌티가 1945년 샌티가 보물창고를 발견한 사실을 보고받았다. 그는 1990년대까지도 시티뱅크 금고에 있던 일본의 약탈 보물 문제를 다루려는 시도에 계속 관여했다.


금괴로 가득 찬 거대 창고

1945년 11월 랜즈데일은 트루먼 대통령과 맥클로이, 로벳, 스팀슨 등을 포함한 워싱턴의 여러 인사들에게 이를 보고한 후 로버트 B. 앤더슨과 함께 도쿄로 돌아왔다. 그 후 맥아더 장군은 앤더슨과 랜즈데일을 대동하고 비밀리에 마닐라로 가 샌티가 이미 개봉한 보물창고들을 둘러보았다. 맥아더와 앤더슨은 2미터 높이로 줄줄이 쌓인 금괴들 사이로 돌아다녔다고 전해진다.

이를 통해 일본이 전쟁기간 중 아시아 전역에서 수십억 달러의 보물을 약탈했다는 사실을 미국은 뒤늦게 확인 했다. 필리핀에서 발견된 보물은 일본이 약탈한 뒤 미처 가져가지 못한 남은 일부에 불과했다. 일본은 전쟁으로 패망한 게 아니라 더 큰 부를 축적했던 것이다.

1945년과 1947년 사이 샌티와 랜즈데일이 발견한 금괴들은 비밀리에 배로 운반돼 42개국 은행의 176개 계좌에 분산, 저장됐다. 비밀문서에 따르면 금괴들은 유니온방크스위스와 다른 스위스의 여러 은행을 포함한 세계 최대 은행 곳곳에 예치됐다. 이때 결정적인 역할을 한 곳은 스위스의 은행들이었다. 이는 스위스가 전쟁 기간 동안 중립국으로 남았으며 그 은행들이 약탈 손상 혹은 고갈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후 몇 십 년 동안 세계의 몇몇 거대 은행들은 그들의 금고에 있는 검은 황금으로 돈벌이를 하는 데 탐닉했다. 검은 황금의 존재를 숨기고 탐닉하기 위해 미 정부도 추악한 거래를 했다. 미 정부는 일본이 아무런 약탈도 하지 않았으며 완전히 파산했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엄청난 비밀을 은폐하기 위한 거대한 왜곡이 시작됐다.

[윤지환 기자] jjh@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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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환 기자 jjh@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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