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서울Ⅰ오두환 기자] 검찰이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과 금품거래를 한 혐의를 받은 홍준표 경남지사와 이완구 전 국무총리를 불구속기소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별수사팀이 구성되고 40여일이 지나고 나온 첫 결과물이다.
하지만 오랜 수사 끝에 나온 결과물 치고는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오히려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이 대다수인 것을 보면 검찰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생각보다 크다. 결국 검찰은 자신들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법 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해야 하지만 권력자들 앞에서는 검찰도 여지없이 흔들리고 마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상대방에 따라 엿가락 휘듯 마음대로 휘어지는 검찰의 ‘이중잣대’라는 오명을 벗기는커녕 오히려 불신만 가중시키는 꼴이 되고 말았다.
정치자금법·뇌물죄 있어도 처벌 안하는 ‘직무유기’ 검찰
국민이 바라는 검찰은 정권·정치권 눈치 안보는 검사
홍준표 경남지사와 이완구 전 국무총리에 대한 검찰의 불구속기소 방침은 수사초기부터 꾸준히 흘러나왔다. 검찰 스스로도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에서 수수한 금액이 2억 원 이내일 경우 불구속으로 기소하는 가이드라인에 따른 것이라고 말해왔다. 법을 위반하면 당연히 처벌을 받아야 마땅하지만 기업가로부터 받은 정치자금이 2억 원 미만이라고 해서 구속시키지 않는다니 법보다 검찰 내부의 가이드라인이 우선인 시대다.
검찰의 이런 태도는 결국 홍 지사와 이 전 국무총리에게 면죄부를 줄 가능성이 크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국민들이 기대하는 것처럼 검찰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확실한 증거를 내놔 상황이 반전되지 않는 한두 사람은 가벼운 처벌로 그칠 것이 뻔하다.
국민들은 검찰 스스로 정치자금법 위반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 막강한 권한을 가진 정치인들 주변에 돈을 가진 기업인들과 청탁인들이 모이는 일은 당연하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돈이 오간다는 것은 이미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데 법위반소지가 있는 경우조차 그 금액이 작다고 해 처벌하지 않는다면 정치자금법의 존재 이유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홍 지사나 이 전 총리는 핵심증인을 회유하고 허위진술을 강요한 의혹도 받고 있다. 하지만 검찰의 수사는 소극적이었다. 가뜩이나 ‘검찰선배’ 등의 이야기가 나오는 상황에서 검찰의 소극적인 자세는 ‘봐주기 수사’ 의혹을 키웠다.
일반적인 형사사건이라면 피의자 회유와 허위진술 강요는 구속사유다. 정황과 증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홍 지사와 이 전 국무총리는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았다. 하지만 검찰은 박준호 전 경남기업 상무와 이용기 전 비서실장을 증거인멸 혐의로 구속했다. 돈을 준 쪽 사람들은 증거인멸을 시도했다고 구속해 놓고 돈을 받은 쪽 사람들은 불구속으로 수사를 하는 웃지 못 할 상황이 바로 지금 검찰에서 이뤄지고 있다.
홍준표·성완종
사법처리 가능성 높았는데
홍 지사와 이 전 총리에 대한 사법처리 결과는 ‘성완종 리스트’ 사건의 기준이 될 만한 수사였다. 두 사람은 리스트에 오른 8명 중 돈 전달과정과 정황, 등장인물 등이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그만큼 사법처리 확률이 가장 높은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검찰의 ‘봐주기 수사’로 ‘성완종 리스트’ 사건은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두 명을 제외하고 ‘성완종 리스트’에 이름이 거론되는 인사들은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홍문종 의원, 유정복 인천시장 등이다. 이들은 현 정권의 실세들로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통하는 인사들이다. 과연 검찰이 이들에 대한 수사를 얼마나 강도 높게 진행할 수 있을까.
이러한 상황에 대해 새정치연합은 21일 성명서를 통해 “검찰이 결국 두 사람의 불구속 결정을 내림으로써 ‘성완종 리스트’ 수사의 한계를 자인한 것”이라며 “검찰은 ‘꼬리자르기’ ‘봐주기 수사’라는 비판도 외면한 채 대통령의 가이드라인만을 철저히 따르는 수사를 하며 정치검찰의 오명을 벗을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 버렸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새정치연합의 성명서에 동의하는 분위기다.
검찰의 이중잣대는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특히 정치자금법과 뇌물죄 적용여부는 그야말로 검찰 마음대로였다. 정권에 따라 대상에 따라 검찰이 구속기준을 달리 적용하다보니 ‘정치 검찰’이라는 오명도 쓰게 됐다.
성 전 회장은 리스트에 오른 정치인들에게 주로 대선·경선자금 명목으로 금품을 건넸다고 밝혔다. 이 경우 정치자금법이 적용되는데 이 법은 5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하고, 공식 후원금 처리없이 정치인이 돈을 받으면 청탁 및 대가성과 관련이 없어도 처벌하도록 했다. 2007년 12월 21일 형사소송법이 개정되면서 공소시효가 5년에서 7년으로 늘어났다.
뇌물죄는 정치자금법에 비해 공소시효가 더 길다. 액수가 5000만 이상 1억 원 미만이면 공소시효가 7년, 1억 원 이상은 10년이다.
이중잣대 ‘정치검찰’ 오명
수사 의지 있나?
성 전 회장은 홍문종 의원에게 2012년 대선 기간 동안 2억원, 홍준표 지사 측에 2011년에 1억 원을 건넸다고 밝혔다. 이들에게 적용 가능한 법은 정치자금법이다. 2006년 9월 10만 달러를 전달했다고 밝힌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2007년 7억 원을 줬다고 말한 허태열 전 비서실장의 경우 정치자금법 공소시효가 모두 지났다. 그러나 두 정치인이 당시 국회의원 신분인 점에서 공소시효가 더 긴 뇌물죄 적용이 가능하다.
허 전 실장은 공소시효가 남아 있는 만큼 직무관련성 등이 입증되면 기소가 가능해진다. 하지만 김 전 실장의 경우 10만 달러가 당시 환율로 환산하면 약 9500만 원으로 1억원에 500만 원이 모자란다.
그러나 환전비용 등을 감안해 10만 달러의 가치가 1억원 이상의 금품에 해당한다고 검찰이 적극 해석하면 공소시효는 남아 있다. 유정복 인천시장과 서병수 시장으로 추정되는 ‘부산시장’은 각각 3억 원과 2억 원을 받은 것으로 메모지에 적혀 있으나, 시점이 특정되지 않아 현재로선 공소시효 만료를 가늠하기 어렵다.
물론 수사상의 어려움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정해진 법의 테두리 안에서 수사를 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검찰은 충분히 ‘성종완 리스트’에 오른 인물들에 대해 수사를 할수 있다. 하지만 법을 적용하는 것도 수사를 하는 것도 검찰인 만큼 어떤 잣대로 수사를 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지난해 검찰은 새누리당 박상은 의원을 구속했다. 불법 정치자금 6억 원을 수수하는 등 11가지 혐의가 적용됐다. 조현룡 의원은 사기업에서 불법자금 1억6000만 원을 받아 정치자금법 위반, 김재윤 의원은 교육기관으로부터 5000만 원을 받아 뇌물죄로 구속됐다.
2004년에는 박상규 전 의원이 처벌을 받았다. 당시 총 11명이 당적을 옮기면서 수고비로 1억5000만~2억 원을 받았지만 처벌은 박 전 의원만 받았다. 1998년 경성사건 때 정대철 전 의원은 한 업체로부터 4000만 원을 받아 구속됐다.
1999년 당시 최기선 인천시장 사건은 더 황당했다. 검찰은 2000만 원을 받은 최 전 시장은 불구속하고 1000만 원씩 받은 최 시장 비서실장과 경찰 고위간부는 구속했다. 한보사건 때는 1억원 이상을 받은 정치인 5명은 구속하고, 5000만 원까지는 받은 정치인들은 불구속했다. 이들 모두 대가성이 증명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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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환 기자 freeore@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