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서울 ㅣ 이범희 기자] ‘검찰·공정거래위위원회·황교안’ 기업을 옥죄는 키워드다.
하루가 다르게 기업인에 대한 비리 수사가 이어지고 있고 공정위가 특정기업을 상대로 일감몰아주기 조사에 착수하면서 기업이 느끼는 부담도 크다.
여기에 황교안 법무장관이 신임 총리로 내정되면서 기업 사정한파 바람이 더 거세질 전망이다.
사면이 물 건너갔다며 분위기 쇄신하자던 기업들 입장에서도 이번 사정바람은 역대 가장 센 바람이 불 것이라며 문단속에 나서고 있다.
직접적인 사정 칼날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총수가 수감된 기업들은 정부의 강경한 태도에 냉가슴을 앓고 있다.
총수 사익편취 규제 이후 첫 조사…전방위 확대 촉각
눈치 보는 재계 “실적 악화 우려, 정부에 배신감 느껴”
모 기업 대외협력관 A씨의 하루를 따라다녀봤다. 그는 아침 8시 이전부터 검찰청에서 타 정보원과 교류를 마친 상태였다.
그는 “예전에는 자신이 모시는 총수의 사면 관련 정보를 수집했다면 이제는 타 기업인의 수사 소식을 먼저 취합한다”고 말했다. 현재의 여론분위기 상 사면을 이야기하기가 쉽지 않은 데다 타 기업인의 불미스러운 일이 계속해 외부로 알려지면서 그 불똥이 이미 구속된 총수에게 튀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이유에서다.
일례로 최태원 SK회장의 경우 사면 대상자에 포함될 것이란 기대감을 안고 사측이 내·외부적으로 촉각을 곤두세웠지만 기업인에 대한 불편한 여론으로 사면 언급 자체가 어렵게 됐다.
또한 올 초부터 시작된 기업 사정이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자살 파문으로 잠시 주춤하다 최근 들어 또 다시 고개들고 있다. 황교안 법무장관이 신임총리로 내정되면서 정부의 사정 칼날이 매서워질 전망이라는 점도 부담이다.
따라서 사면을 노린 기업 입장에선 더욱 움츠러들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A협력관은 “무슨 말을 더 하겠냐. 사면을 바라는 건 기업내부 사정이고 외부에선 사면 자체가 잘못이라는 분위기가 많아 상반기엔 쉽지 않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한다. 사면의 긍정적인 면보다 부정적인 면이 더 강조되면서 더 이상 총수의 사면을 바라는 것도 눈치가 보인다는 것이다. 내심 기대하면서도 더 이상 입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분위기가 기업 내외부적으로 형성되고 있음이 감지된다.
박근혜 대통령이 특별사면 제도에 대한 손질을 간접적으로 지시하면서 총수의 석가탄신일 또는 광복절 특별사면을 내심 기대하던 SK그룹과 CJ그룹, LIG그룹에는 적막감만 흐르고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 4일 중남미 4개국 순방 귀국 이후 처음으로 가진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고 성완종 전 회장의 특별사면 등을 사례로 들며 “국민이 납득할 수 없는 사면이 더 이상 발생되지 않도록 특별사면 제도의 개선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부정부패 척결 강조
여기에 공정위가 총수일가 사익편취 규제 이후 특정기업에 대한 일감몰아주기 조사에 착수하면서 기업들의 고충이 심화됐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 19일과 20일 양일간 공정위 서비스업감시과 직원들이 서울 연지동 현대로지스틱스 본사에 대한 현장조사를 실시했다.
공정위는 현대그룹 등 총수일가가 현대로지스틱스를 통해 부당이득을 취했다는 신고를 받아 조사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로지스틱스는 지난해 매출액이 1조7천537억원인 물류회사다. 지난해까지는 현대그룹 계열사였다가 매각돼 올해 1월 롯데그룹 소속으로 변경됐다. 공정위가 현대로지스틱스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롯데그룹으로까지 범위가 확대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하루 앞선 18일에는 한진그룹(대한항공) 계열사인 싸이버스카이에 대한 현장조사를 시작으로 일감몰아주기 조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싸이버스카이는 대한항공 여객기 내 비치되는 잡지 광고와 기내 면세품 통신판매 등을 서비스하는 비상장 계열사다.
이 회사는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등 조양호 회장의 자녀 3남매가 33.3%씩 지분 100%를 갖고 있다. 공정위는 싸이버스카이를 통해 조 전 부사장 등 총수일가가 부당한 이득을 얻었는지 따져볼 방침이다.
주목할 점은 재벌 총수일가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담은 공정거래법이 지난 2월 시행된 후 첫 조사라는 점이다. 따라서 재계는 이번 조사가 전방위적인 조사로 이어질 것으로 판단, 내부 문단속에 여념이 없다. 이미 공정위 근처로 모이는 협력관의 수도 늘고 있다.
검찰발 기업수사 소식은 하루가 멀다 하고 들린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기업에 대한 전방위적 수사 소식이 알려진다. 일부 기업은 이미 꼬리 수사는 마치고 몸통을 직접 겨누기 위한 마지막 레이스를 펼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포스코와 동국제강이다. 계열사 포스코건설의 비자금 조성과 또 다른 계열사 인수 과정에서의 특혜 시비 등 포스코에 대한 수사는 현재 진행형이다.
성완종 전 회장의 자살 이후 정부의 사정 칼날이 기업이 아닌 정치권으로 향한 것이 불행 중 다행이지만 이미 시작된 수사는 여전히 계속 되고 있다. 정준양 전 회장에게 쏠린 의혹을 조사하기 위한 검찰의 분주한 움직임도 곳곳에서 알려지고 있다.
동국제강 장세주 회장에 대한 수사도 상당부분 진행됐다. 조만간 자원외교 수사도 진행될 것으로 예고되면서 수사를 받는 기업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속타는 기업 ‘우리만 봉(?)’
재계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정부의 사정 활동에 대해 공개적으로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기업의 부조리를 바로 잡기 위한 정당한 사정 활동이라면 충분히 이해하겠지만 순수성 측면에서 이미 심각한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 재계의 목소리다.
특히 올해 초부터 계속되고 있는 사정이 지지율 하락으로 레임덕 위기에 빠진 박근혜 정부가 ‘기업 때리기’ 정책을 통해 반등의 계기를 마련하고자 하는 일시적 방편이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강압수사에 따른 실적압박에 대한 부담도 주장하고 있다.
재계는 “한 번은 속아도 두 번은 안 속는다”며 반발하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정부는 말로만 투자가 용이하도록 도와준다고 하면서 뒤로는 등에 칼을 꽂고 있다”며 “지지율 반등을 이끌어내려면 기업 때리기보다 정치 혁신이 우선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공정위의 대대적 조사 행보와 관련해서는 “중견 재벌기업들을 중심으로 공정위가 조사 방향을 설정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며 “다음 대상은 어디일지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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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희 기자 skycro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