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표도 여권의 ‘역사바로세우기’와 관련, 비장한 각오를 다지고 있다고 한다.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선 더 이상 신경쓰지 말라’며 당직자들을 오히려 독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 대표는 여기서 한발 더 나가 “강하게 대응하라”는 주문을 하고 있다는 게 한나라당 고위 당직자의 전언이다. 정부와 여당에서 역사바로세우기 차원에서 한나라당을 압박해 들어오면 당 차원에서 비장의 무기를 빼 들 수도 있다는 메시지도 도처에서 느낄 수 있다. 한나라당에서 말한 비장의 무기는 무엇일까. 한나라당은 친일문제 뿐 아니라 용공과 친북세력에 대해서도 진상규명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대사를 통째로 재규명하기 위해선 반드시 용공과 친북세력 문제에 대해서도 진상규명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용공과 친북세력 문제는 공교롭게도 노무현 대통령도 자유롭지 못하다. 노 대통령의 부인인 권양순 여사의 아버지와 관련, 한나라당도 나름대로 폭탄파일을 준비중이기 때문이다.권 여사 아버지는 6·25 때 우익인사 집단처형에 관련된 혐의로 실형을 살다, 노 대통령이 부인과 결혼하기 전에 옥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 대통령이 민주당 대선후보로 결정되고 장인의 묘소를 찾은 적이 있다. 2002년 5월 3일 대선후보로서 장인의 묘소를 찾은 노 대통령은 “식민지 시대 후 해방의 전략에 대해 좌우로 나뉘어지고 분단의 상처가 고스란히 남겨졌다”며 “막상 일선에서 죽창들고 싸운 사람들은 정치하던 사람이 하는 대로 깃발만 보면 편갈라 바닥에서 싸웠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의 장인과 관련, 한나라당 한 관계자는 의미 있는 말을 했다.“2002년 대선 때 권양숙 여사의 아버지가 어떻게 좌익활동을 했는지 증언하기 위해 한나라당으로 많은 사람이 몰려왔다. 기자회견을 통해 권 여사의 아버지와 관련된 내용을 폭로할 예정이었지만, 당시 이회창 전총재의 만류로 무산된 적이 있다.”이 전총재가 기자회견을 만류한 것은 ‘무리수’를 두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란 게 한나라당 고위 당직자의 말이다. 당시 당선이 가능한 상황이어서 굳이 이같은 폭로전을 할 필요가 없었다고 느꼈다는 것이다. 더구나 지난 2002년 대선 때는 네거티브 전략이 오히려 득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분위기가 팽배해 이같은 기자회견을 이 전총재가 바라지 않았다는 것이다.
‘역사바로세우기’로 여야가 극하게 대립하고 있는 현상황에서 한나라당에선 노무현 대통령을 직접 겨냥하는 카드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여당에서 박정희 전대통령의 친일문제를 본격적으로 거론할 경우, 야당도 압박카드 차원에서 권양숙 여사의 아버지 문제를 다시 꺼내들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이 카드와 관련, B박사가 관심을 끌고 있다. B박사가 지난 2002년 대선 때 기자회견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경제학 박사인 B박사의 집안이 우익활동 혐의로 좌익으로부터 살해 당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따라서 ‘역사바로세우기’가 여야 간 폭로전으로 비화될 수도 있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아버지 박정희 전대통령의 친일행적과 노무현 대통령 장인의 좌익활동 문제로 두 진영이 충돌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이 때문에 정치권 일각에선 “역사바로세우기가 자칫 국론을 분열시킬 가능성도 있다”며 “우리나라 사회가 계층간 분열에 이어 이념적 분열로 이어져 소모적인 논쟁을 벌일 수도 있다”고 분석한다. 특히 한나라당 관계자들의 시각은 더욱 극명하다. ‘역사바로세우기’의 의도가 불순하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에선 국면전환용 파병으로 인한 지지세력 이탈 방지 남북정상회담 분위기 조성 등을 정부 여당이 역사바로세우기에 나선 이유로 보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의 이같은 분석에 대해 ‘터무니없는 주장’이라는 반응이다. 순수하게 역사를 바로 세우려는 뜻을 왜곡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청와대·열린우리당-한나라당 간의 피 튀기는 ‘역사전쟁’은 정치권 전체로 파급될 전망이다. 당장 국회의원 부모들의 친일행적이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르내리고 있다.
열린우리당 신기남 전의장 부친의 친일행적은 국회의원 부모들의 친일행적 폭로의 서막에 불과하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일치된 분석이다. 국회의원 부친들의 친일행적과 관련, 국회에는 ‘의원명단’이 나돌기도 한다. 열린우리당 의원 가운데 대선주자로 거론되고 있는 거물급 의원을 비롯, 10여명의 의원들이 거론된다. 한나라당도 마찬가지다. 중진급 의원은 말할 것도 없고, C, K, K 의원 등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줄잡아 20여명의 의원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여권의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이미 각 정당에선 국회의원 부친들의 친일행적과 관련, 상당 부분 파일을 확보하고 있다”며 “국회의원들이 친일행적의 검증대에 오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고위 당직자도 “친일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국회의원들이 상당수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며 “과거 기득권층 상당수가 친일과 관련됐다는 점을 상기하면 상당수 국회의원도 친일문제로 곤욕을 치르게 될 것”이라고 분석, 정치권이 한바탕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도 있음을 내비쳤다.
또한 국회의원들의 친일문제로부터 시작, 사회 기득권층의 친일문제로 전면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고 정치권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친일청산이 주요 화제로 등장한 이상, 기득권층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기득권층을 갈아엎을 특단의 조치”라고 분석했다. ‘역사바로세우기’를 두고 정부 여당과 한나라당 간 전쟁은 이미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 마주 오는 기차를 멈출 뾰족한 카드가 별로 없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이미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두 진영의 이념전쟁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상생의 정치’는 이제 까마득한 옛말이 되고 말았다. ‘죽기 살기식 전쟁’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밀리면 끝장’이라는 극한 용어가 다시 정치권에 난무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목희 언론인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