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특별 기획연재 제 2회 보물을 쫓는 사람들 ‘야마시타 골드 인 코리아’
[일요서울] 특별 기획연재 제 2회 보물을 쫓는 사람들 ‘야마시타 골드 인 코리아’
  • 윤지환 기자
  • 입력 2010-05-11 12:40
  • 승인 2010.05.11 12:40
  • 호수 837
  • 5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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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일본황실이 약탈황금 보관하던 창고”
황금불상을 마르코스 대통령에게 강탈당하기 직전 황금 불상과 함께 찍은 로저 로자의 사진.

1945년 2차대전 말경 일본 천황은 패망을 앞두고 각국에 파견된 군부대에 극비리 긴급작전명령을 하달했다. 이 작전의 암호명은 ‘긴노 유리(きんの ユリ, Golden Lily)’였다. 한국어로 황금백합(黃金百合)이란 뜻이다. 이 작전은 일본이 태평양 전쟁 중 중국과 동남아시아 각국에서 약탈한 막대한 양의 금을 본국으로 가져오거나 지하에 감추는 작전이었다. 아시아 곳곳에 감춰진 금의 양이 얼마나 되는지는 아직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다. 다만 돈으로 환산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양의 금이 묻혀 있다는 정도만 전해지고 있다. 주목해야 할 사실은 이 금의 보관 창고가 바로 조선이었다는 점이다. 일본은 중국 루트를 활용 전 세계에서 약탈한 보물을 모두 조선으로 옮겨왔다. 전쟁 말기 조선으로 가져오지 못한 보물들은 현지에 매장했다. 그리고 조선에서 본국으로 옮겨가지 못한 보물들 역시 모두 한반도 곳곳에 매장했다. 전쟁이 끝난 후 이 보물들 일부는 알지 못하는 세력들에 의해 발굴됐고 해외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이렇게 한반도에서 나간 일본 황실의 약탈금은 세계 곳곳에서 검은 자금으로 활용되고 있다. 한반도와 아시아 각지에서 아직까지 발굴되지 않은 채 잠들어 있는 금의 양은 천문학적이다. 이 금 중 일부를 찾아낸 사람은 조용히 자취를 감춘다. 보물 사냥꾼들에 따르면 보물을 찾아낸 이는 셀 수 없이 많다. 하지만 찾았다고 말하는 이는 없다. 유일하게 대중에 드러난 이가 필리핀의 마르코스 대통령이다. 그는 이 금으로 권력을 잡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도 이 보물을 찾아 헤매는 보물 사냥꾼이 적지 않다. 이들은 “금은 반드시 있다”고 확신한다. [일요서울]은 보물을 찾아 헤매는 보물 사냥꾼들과 함께 4년간 그 실체를 추적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지금부터 풀어본다.

지난 2007년 초 [일요서울]은 한 보물 사냥꾼의 이야기를 보도했다. 기사내용에는 일본 황실이 숨겨둔 일명 ‘야마시타 골드’와 더불어 필리핀에서 보물을 찾아 헤매는 한 일본인의 이야기도 담겼다. 기사가 나가고 수 일 뒤 [일요서울]로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를 걸어온 이는 자신을 보물 탐사가라고 밝혔다. 그는 과거 보물 탐사에 참여했던 P씨였다. P씨는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보물이 있다고 주장한 사람은 대부분 사기꾼”이라고 했다. 또 그는 “자신이 수 없이 많은 곳을 탐사해 본 바에 따르면 보물은 이미 우리나라에서 사라진지 오래”라고도 했다. 도굴됐다는 얘기다.

P씨는 “기사에 난 내용 중 사실에 가까운 내용도 많지만 내가 보물을 찾았다는 이야기는 거짓”이라며 “우리나라에서 보물을 찾았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보물에 대한 취재는 계속 이뤄졌다. 분명히 있다고 주장하는 쪽이 더 많은 근거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얼마 뒤에는 전직 국정원 직원의 증언을 들을 수 있었다. 충격적이었다. 국내에 상당량의 보물이 매장돼 있는 것이 사실이며, 이 보물의 발굴을 위해 역대 정권이 은밀히 보물발굴에 관여해 왔다는 것이다. 심지어 국정원도 중앙정보부 시절부터 계속 보물 발굴 작업에 관여해 왔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이후부터 취재는 쉽지 않았다. 방대한 자료를 수집할 수 있었지만 일일이 확인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이에 취재는 거의 중단되다시피 한 상태로 2년 정도가 흘렀다. 그러다 어느 날 또 다른 보물 탐사가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서울의 한 지역과 경기, 영남 지역에 묻힌 보물을 찾아다니던 L씨였다.

보물 사냥꾼들의 이야기를 전하기에 앞서 보물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일반인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일본 황실이 감춘 약탈 보물의 역사와 그 실체에 대해 먼저 설명하도록 한다.


암호명 ‘긴노 유리(황금백합)’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몇 달 전, 필리핀 루손(luzon)의 험준한 산악지대에서 일본군의 야마시타 토모유키 장군은 지연작전을 펴고 있었다. 그 동안 일본 황실의 여러 최고위 왕자들은 그들이 약탈한 엄청난 양의 금괴와 보물을 나중에 되찾을 계획을 짰다. 그리고 인근 동굴과 터널 곳곳에 보물을 감추는 작업을 극비리에 진행했다.

이 보물들은 아시아의 열두 나라가 여러 왕조를 거치며 수천 년 동안 축적한 것으로 그 가치는 상상을 초월했다. 일본의 군사력을 동반한 전문가들은 점령지의 국고, 은행, 공장, 박물관, 화랑 심지어 민간 가정까지 몽땅 털었다. 일본은 보물약탈에 대해서는 나치보다 훨씬 더 철저했다.

이렇게 약탈한 보물은 대다수가 육로를 거쳐 조선으로 이동됐고 다시 조선의 항구에서 일본으로 옮겨졌다. 육로를 통해 조선으로 먼저 보물을 옮긴 이유는 미군의 해상봉쇄로 약탈 장소에서 해로를 통해 본국으로 가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본은 전쟁이 끝나도 계속 필리핀을 점령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에 필리핀에 보물을 숨기는 것은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필리핀에 보물을 숨겨두면 일본이 군사적으로 패해도 재산상으로는 잃을 게 없을 것이라는 황실의 판단이 있었다.

황실 왕자들의 감독아래 섬 전역에 175개의 ‘황실보물창고’가 건설됐다. 미군 탱크가 필리핀에 맹공을 퍼붓던 1945년 6월 초, 창고 건설을 담당한 175명의 수석 엔지니어들은 벽을 빙 둘러 금괴로 가득 찬 ‘터널-8’이라는 거대한 구축물의 220피트 지하에서 송별 파티를 했다. 그들은 밤이 깊도록 술을 퍼붓듯이 마셔댔다. 애국의 노래를 부르고 반자이(만세)를 외쳐댔다. 한밤중이 되자 야마시타 장군과 왕자들이 슬며시 빠져 나왔고 그 사이 터널에서 다이너마이트가 터졌다. 엔지니어들이 생매장된 것은 두말할 것 없다. 이렇게 창고는 비밀 속에 묻혔다.

전쟁이 끝나고 반세기 동안 이 생매장학살극은 전설처럼 떠돌았다. 하지만 그 장소는 누구도 몰랐다. 오직 단 한사람만이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바로 벤 발모레즈였다. 벤은 전쟁 기간 동안 필리핀의 모든 황실 재산 저장소를 건설, 관리, 은폐하는 책임을 맡았던 일본 왕자의 시중을 들던 젊은 필리핀 하인이었다. 그 왕자는 교육 수준이 높고 감상적인 면이 있어 마지막 순간 벤의 목숨을 구해 주었다.

필리핀에 묻힌 야마시타 골드의 비밀은 벤의 증언으로 조금씩 풀려나갔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1945년 10월 미국의 첩보요원들은 필리핀에서 몇 군데 일본 보물창고의 위치를 알아내 금, 백금, 문화재, 가공되지 않은 보석 등 상당량의 보물을 찾아냈다. 그러나 미국은 이를 철저히 비밀로 했다.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은 극비리에 보물 발굴을 지시하고 발굴된 보물들은 검은 자금을 탈바꿈 시켰다.


단 한명의 목격자 증언

같은해 9월 2일 일본 천황이 항복하자 야마시타 장군과 그의 참모들은 키안간(Kiangan)협곤의 산악 요새에서 나와 헌병 소령 잭 캔워시가 이끄는 미군 장교들에게 그들의 칼을 바쳤다. 미군은 야마시타 골드의 비밀을 캐기 위해 또 하나의 음모를 꾸몄다.

[윤지환 기자] jjh@dailypot.co.kr

☞관련기사는 다음호에서 계속됩니다.

윤지환 기자 jjh@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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