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밤, 정신분열 아들을 조심하라!
지난 3일 늦은 저녁 서울 성수동 한 허름한 빌라로 형사들이 들이닥쳤다. 이틀 전 실종된 박모(51) 여인의 행적을 쫓던 수사팀은 거실에 앉아 통닭을 뜯고 있는 박 여인의 아들 남모(17)군과 맞닥뜨렸다. 먹음직한 닭튀김 냄새와 섞여 기묘한 악취가 코를 찔렀다. 형사들이 굳게 잠긴 안방 문을 따고 들어서자 피투성이 주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틀 전 아들 손에 처참히 살해된 박 여인이었다. ‘가정의 달’ 5월이 살인과 폭행으로 얼룩지고 있다. 특히 친부모의 목숨을 빼앗는 존속살인은 ‘패륜’이라는 말 그대로 더욱 잔혹화, 흉포화 되는 추세다. 최근 한국의 존속살인 성향에 대한 흥미로운 분석 결과가 나왔다. 이에 따르면 존속살해범의 90.3%는 아들이었으며 모친이 희생되는 경우가 58.3%에 달했다. 또 가해자 가운데 정신분열을 앓고 있거나 치료를 받은 경우가 55%로 절반이 넘었고 사건은 월요일 오후 6시~밤 11시 사이에 가장 빈번히 벌어졌다. 이는 해외 사례에서 발견하지 못한 독특한 특징이다. 즉, 한국의 존속살인 속엔 ‘특별한 것’이 있다는 얘기다.
강원지방경찰청 소속 정성국 박사(검시관)는 수사전문 월간지 [수사연구] 5월호에 기고한 논문을 통해 ‘한국의 존속살해 성향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2008년 1월~지난해 6월까지 18개월 간 발생한 총 1734건의 살인사건 중 존속살해사건 72건에 대해 발생시점, 가해자와 피해자의 성별 및 연령, 수법, 동기, 정신병질 여부 등을 조사 분석한 것이다.
외국보다 존속살인 흔해
눈에 띄는 것은 국내의 존속살인 발생 빈도가 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다는 점이다. 전체 살인사건에서 존속살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미국 2%, 영국 1%, 프랑스가 2.8%인 반면 국내는 연평균 50건 내외, 약 5% 전후로 높은 편이다. ‘묻지마 살인’ 등 엽기적, 가학적 범죄를 일명 ‘서구형 범죄’로 규정짓는 가운데 오히려 심각한 반인륜적 행위인 존속살인만큼은 한국이 더 빈번하다는 얘기다.
경찰청 범죄통계에 따르면 2008년 1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18개월 간 전국에서 총 1734건의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이 가운데 존속살인은 2008년 44건, 지난해 6월까지 28건 등 총 72건이다. 이는 전체 살인사건의 4.2%에 해당하는 수치다.
주말보다 주중에 사건이 벌어지는 경우가 많았으며 특히 월요일에 총 13건(18.1%)의 존속살인이 발생해 가장 높은 빈도를 차지했다. 사건 시간대는 오후 6시~밤 11시 사이가 38.9%로 나타나 가장 높았다.
또 존속살인의 가해자가 아들인 경우가 90.3%로 절대다수를 차지했으며 부모 중 어머니가 피해자인 사건은 58.3%로 아버지가 피해자인 사건 30.6%보다 두 배 가까이 많았다. 아들이 어머니를 살해한 사례 역시 56.9%로 절반이 넘었다. 정 박사에 따르면 이는 아버지보다 어머니가 양육 책임이 더 크기 때문으로 짐작된다. 자녀와 보낸 시간이 부친보다는 모친이 상대적으로 많아 망상이나 분노의 대상이 되기 쉽다는 얘기다.
존속살인은 수법과 피해자의 손상 상태에서도 독특한 특징을 보인다. 보고서에 따르면 부엌칼 등 날카로운 흉기를 사용한 경우가 전체의 1/3(31.9%)을 차지했으며 손과 발, 야구 방망이, 망치 등 둔기를 이용한 무차별 폭행이 25%로 그 뒤를 이었다. 특히 피해자는 머리, 얼굴, 목 주위를 집중적으로 난자 또는 가격 당했다. 이는 가해자인 자녀가 극도의 흥분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을 나타낸다.
정 박사는 보고서에서 “1건을 제외한 모든 사건에서 두부(머리)손상이 결정적인 사인(死因)이었다”며 “부엌칼 등 예기를 사용한 경우 머리나 얼굴, 목을 무차별하게 찌르는 사례가 많았다”고 밝혔다.
“엄마가 괴물로 보였다”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존속살인 가해자 가운데 상당수가 망상 등 정신분열 증세에 시달렸다는 사실이다.
2008년도 기준으로 일반 살인사건에서 피의자가 정신분열증인 경우는 3%에 그친 반면 존속살인 가해자 중 정신분열증인 경우는 55%로 조사됐다. 통계적으로 존속살해 범인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을 가능성이 일반 살인범보다 40배 이상 높은 셈이다.
정 박사는 “정신분열이 주된 동기인 경우 흉기로 도검류(칼)를 쓴 경우가 많았고 찌른 횟수도 많아 잔혹하게 살해하는 경향이 있다”며 “반면 이들이 범행을 사전에 계획하거나 시신을 은폐, 위장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밝혔다.
유산 등 금전을 노린 계획범죄나 우발적 범행의 경우 방화나 암매장 등으로 사건을 은폐하는 것과는 분명 다른 양상이다.
지난해 한 주택가에서 벌어진 60대 여인의 피살 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범인은 피해자의 딸인 20대 여대생 K씨였다. K씨는 어머니와 말다툼 도중 부엌칼로 모친의 목과 머리를 포함해 온 몸을 수십 번 찔러 살해했다.
수사팀에 의해 발견된 모친의 시신은 참혹하기 이를 데 없었다. 얼굴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난도질 돼 있었고 팔과 다리의 힘줄이 모두 절단된 상태였다. 시신 옆에는 안구가 뽑혀 나뒹굴고 있었으며 등, 손바닥, 발바닥에도 찔린 상처가 가득했다.
수사결과 K씨는 과대망상에 의한 정신분열 환자로 드러났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살해할 때 어머니 얼굴이 괴물처럼 계속 바뀌었다”고 진술했다. 모 대학 유아교육과 재학 중이었던 K씨는 몇 해 전 모 종합병원에서 같은 증세로 입원 치료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정신질환자임이 인정돼 현재 치료감호소에 수감 중이다.
이처럼 국내 존속살인 가해자 가운데 상당수가 정신분열증 병력을 갖고 있으며 범행동기 역시 정신질환과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부모를 살해하라는 ‘지시적 환청’이나 부모가 괴물 등 다른 형상으로 보이는 망상성 정신분열 증세를 보이기도 했다.
정 박사는 “효를 중시하는 우리나라에서 존속살인 비율이 높다는 것은 아이러니”라며 “가정불화를 해소하는 노력 뿐 아니라 범행의 주요원인인 정신분열 환자에 대한 가족의 관심과 국가적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희대의 패륜아’ 박한상 지금 뭐하나
16년 전 100억대의 유산을 노리고 친부모를 살해한 희대의 패륜아 박한상(39)은 지금 어떤 모습일까. 1995년 8월 대법원에서 사형 확정 판결을 받은 그는 현재 미결수 신분으로 대구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16년 째 사형수로 목숨을 이어가고 있는 박한상은 지난 1998년과 2002년 동료 수감자와 주먹다짐을 벌여 독방 생활을 한 것을 제외하고는 비교적 눈에 띄지 않는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구 교도소 관계자는 “(박씨가)다른 수감자 2~3명과 한방에서 생활하고 있다”며 “특별히 면회를 오는 사람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보통의 사형수들이 종교 활동을 통해 마음의 안정을 얻는 것과 달리 박한상은 어떤 종교에도 마음을 열지 않고 있다.
1994년 당시 23세였던 박한상은 미국 유학 중 도박에 빠졌고 이후 아버지에 의해 강제로 귀국했다. 이 일로 아버지에게 심한 반감을 갖게 된 그는 같은 해 5월 빚을 청산하고 100억 원대 유산을 빨리 상속받기 위해 친부모를 살해한 뒤 집에 불을 질러 증거를 없앴다.
그러나 경찰은 현장에 있었음에도 유독 박한상만 이렇다 할 상처가 없는 점과 머리에 묻은 핏자국을 근거로 추궁한 끝에 그의 자백을 받아냈다.
[이수영 기자] severo@dailypot.co.kr
이수영 기자 severo@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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