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묘한 시기 訪中 뒤에 감춰진 진짜 의도 “세계가 놀랄 일 터진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방중(訪中)소식이 정국에 미묘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일각에서는 지방선거를 앞둔 지금 김 위원장의 방중이 정국변화의 신호탄이 될 것이라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 3일 중국 단둥(丹東)을 거쳐 다롄(大連)에 도착한 것으로 확인됐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김 위원장의 중국 방문 사실을 지난 7일 공식 보도했다. 통신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다롄에서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의 위임을 받은 리커창(李克强)중국 부총리를 만나 담화를 나눴다. 양국은 경제문제와 더불어 6자회담 등 외교적 사안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양국의 대화에서 철저하게 배제된 인상을 주고 있다. 정부는 김 위원장이 왜 지금 중국을 방문했는지 중국과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느낌이다. 외교가 소식통에 따르면 김 위원장의 이번 방중은 올 초부터 계속 물밑에서 추진돼 왔던 사안이다. 방문 전 사전 조율을 충분히 거친 후 이번 방문이 이뤄진 것이다. 실제로 김 위원장의 4월~6월 방중설은 끊임없이 제기됐다. 하지만 일부 언론은 이번 김 위원장의 방중을 천안함와 연결시키는 등 엉뚱한 해석을 내놓고 있다.
통신은 김 위원장이 다롄(大連)과 텐진(天津)을 방문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베이징 방문과 후진타오 주석과의 정상회담 사실은 전하지 않았다. 방중기간 중 중요한 협의가 은밀히 이뤄졌음을 암시하는 부분이다. 뿐만 아니라 초미의 관심사였던 6자회담 재개와 천안함 문제는 물론 중국의 대북경제협력과 관련한 김 위원장의 언급도 일체 보도하지 않았다.
북한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이 이번 방중 기간 중 北·中간의 경제협력방안을 집중 논의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통신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통신은 김 위원장이 리커창 부총리가 마련한 연회에 참석한 뒤 왕민(王珉) 랴오닝성 서기, 왕자루이(王家瑞)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 등과 함께 대련빙산그룹, 대련기관차생산공사, 료녕어업그룹, 대련설룡산업그룹 등을 참관했다고 전했다.
이 자리에서 김 위원장은 “세기적인 낙후성을 털어버리고 활력에 넘쳐 첨단의 높이에서 조화롭게 전진하는 대련(다롄)시의 전변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며 “대련시를 비롯한 동북지역의 급속한 발전은 중국당과 정부가 제시한 동북진흥전략의 정당성과 생활력을 여실히 증명해주고 있다”고 말했다고 통신은 전했다.
아울러 텐진 방문에서는 장가오리(張高麗) 텐진시 당서기의 안내를 받아 텐진항을 참관하고, 텐진시가 몇 년 사이 몰라보게 바뀐데 대해 감탄했다고 밝혔다.
통신은 “김 위원장이 8000리에 달하는 중국의 동북지역을 오가며 근면하고 지혜로운 중국인민의 사상감정과 경제, 문화 등 모든 부분을 깊이 있게 료해(요해)했다”면서 “이번 비공식 방문은 후진타오 주석과 중국 당, 정부의 특별한 관심과 뜨거운 환대 속에 성과적으로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북한 최고 실세들 한자리에
특히 이번 김 위원장의 방중이 눈길을 끄는 이유 중 하나는 수행원단이 최고위급 실세들로 구성됐다는 데 있다.
통신이 공식적으로 밝힌 김 위원장 중국 방문 수행원은 김영춘 인민무력부장, 조선노동당 김기남·최태복 비서,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 장성택 행정부장,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김영일 국제부장, 주규창 군수공업부 제1부부장, 현철해 인민군 총정치국 상무부국장, 리명수 국방위원회 행정국장, 김평해 평안북도위원회 책임비서, 태종수 함경남도위원회 책임비서 등이다.
이처럼 실세들이 중국방문에 총동원 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이런 모습은 북한이 중국을 통한 경제문제 해결에 모든 것을 걸고 있음을 보이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에 북한이 어떤 형태로 중국과 경제협력 구조를 만들어 나갈지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또 중국과 6자회담 복귀에 대한 논의도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북한은 경제협력과 6자회담 복귀를 하나의 고리에 엮기 위해 중국과 심도 깊은 논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과 후진타오 주석은 지난 5일 오후 베이징(北京) 인민대회당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양국 현안을 논의 했다. 이 자리에서 한반도 비핵화 및 6자회담, 천안함 침몰사건, 北·中간 경협문제가 논의됐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북·중 양국이 천안함 침몰사건에 대해 언급할지 비상한 관심이 모아졌다. 그러나 북한은 실무 협의 차원에서 “북한은 천안함 사건과 무관하다”는 입장을 중국측에 간단하게 전달했을 뿐 더 이상의 대화는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은 천안함 침몰사건에 대한 한국측의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조사 결과를 일단 기다려보자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 때문에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는 양쪽 다 말을 아끼는 모습이다.
식에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의 이번 방중은 이미 년 초부터 확정돼 있었다. 남측의 일부 언론은 이번 방중을 천안함 사건과 연결시키거나 북핵 6자회담을 위한 행보로 보기도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는 게 이 소식통의 전언이다.
북한의 발 빠른 행보
북한 소이 소식통이 전하는 내용 가운데 무엇보다 귀를 솔깃하게 하는 것은 이번 김 위원장의 방중이 미국과의 사전 조율아래 이뤄졌다는 주장이다.
이 소식통은 “김 위원장의 이번 중국방문은 북한의 필요에 의해 이뤄진 게 아니다. 미국과 중국의 집요한 요청이 있었고 북한이 이를 수용해 추진된 일종의 이벤트”라며 “미국은 북한의 6자회담 복귀시기를 놓고 중국을 통해 조율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이번 중국 방문에서 북한은 미국 중국으로부터 6자회담을 위한 빅딜을 제안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미국이 6자회담 복귀를 조건으로 북한에 ‘선물’을 전달했을 것이라는 게 이 소식통의 설명이다. 6자회담과 관련해 북·중이 김 위원장 방중을 계기로 6자회담 재개 프로세스에 합의하고 미국이 이를 수용하는 쪽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다. 중국으로부터 대규모 경제지원이 절실한 북한이 이번에 6자회담 재개에 대한 구체적인 답을 제공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또 이 소식통은 “6자회담 복귀 시점에 맞춰 세계가 놀랄 깜짝 쇼가 벌어질 것”이라며 “남한은 북한 중국 미국이 벌이는 외교 깜짝쇼에서 소외되고 있다. 이것이 남한 외교의 현주소”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남북정상회담설도 다시 솔솔 들린다. 북한의 북핵6자회담 복귀를 앞두고 남한 역할론이 다시 수면위로 떠오를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6자회담에서 남한이 주도권을 쥐기 위한 핵심은 남북정상회담이다. 남북 간에 논의 가능한 정치적 현안은 뚜렷하지 않아도 외부시선 고려할 때 정상회담은 꼭 필요하다. 북·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우리 정부도 정상회담 추진을 위해 속도를 낼 것이라는 전망이 외교가 주변에서 나오고 있는 것은 그래서다.
그러나 북한 전문가들은 남한의 외교력이 북한 외교력에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정상회담에서 남측이 실리를 챙기기는 힘들다고 지적한다. 정부가 최근 꼬이고 있는 북한 문제의 출구를 찾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그 증거로 꼽힌다.
북한은 김 위원장 방중 직전까지 금강산 부동산을 동결·몰수하고, 개성공단 통행 차단 가능성을 통보했다. 아울러 이명박 대통령을 다시 ‘역도’로 칭하는 등 대남 공세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북중정상회담에서 북한은 중국으로부터 인도적 지원과 경협 약속을 받아냈을 가능성이 큰 만큼 남측에 경제지원 등을 조건으로 공세를 늦추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외교보다 정치에 집중하는 정부
하지만 정부는 천안함 사건에 매달린 채 북한에 대한 뚜렷한 입장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남한은 미국 중국과 달리 북한에 줄 선물이 없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중국은 지리적 이점과 경제적 힘을 이용해 북한이 요구하는 수준의 큰 선물을 줄 수 있다. 미국 역시 북한에 막대한 물량의 식량지원을 물밑에서 계속해 왔다. 이에 비하면 남측이 북측에 제공한 것은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더구나 중국과 미국에 밀려 북한에 존재감을 심어주지 못하고 있다. 또 한민족이라는 점을 이용해 정치적 이득만 챙기고 끝난 지난 정권에 대한 배신감도 남북관계의 장애물이다.
한 북한 전문가는 “북한은 지난 정권을 잡기 위해 자신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북한은 남한의 정치인들을 더 이상 믿지 않는다. 남측 정치인과 일절 대화하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다. 현 정부에 대한 불신감도 매우 높은 상태”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6자회담과 남북관계의 주도권을 잡기위해서는 현 상황에서 남한이 발 빠르게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정치권은 북중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천안함 사건에만 집중하느라 정신없는 모습이다. 북한이 어떤 태도로 나오더라도 남북관계는 당분간 ‘천안함’의 벽을 깨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우리 정부는 오는 20일 전후로 천안함 사건 조사결과를 발표하면서 북한의 소행이라는 방향으로 잠정 결론 낼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이를 이용해 대북 압박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선거 민심을 겨냥한 이같은 외교전략이 결과적으로 최악의 결과를 낳게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이 경고하고 있는 가운데 향후 정치권이 대북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지 귀추가 주목된다.
[윤지환 기자] jjh@dailypot.co.kr
윤지환 기자 jjh@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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