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폰서 몸 로비에 男·女 따로 없다

“기획사 대표가 ‘남자를 알아야 된다’ 이러면서 모텔로 끌고 갔어요.” “데뷔시켜주겠다고 하더라고요. 뜰 때까지 다 해주겠다고. 그 다음부터 기획사 사장님하고 밥을 먹는데 들이대는 거예요. 뽀뽀도 하고 살짝살짝 만지고. ‘너 내 애인하자’ 이러면서.”
초보 ‘나가요 걸’들의 신세 한탄이 아니다. 모두 현재 연예계에서 활동하고 있거나 데뷔를 기다리는 여배우들의 육성고백이다. 그것도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현병철·이하 인권위)의 실태 조사 과정에서 나온 검증된 증언들이다. 성접대 파문의 불씨를 당기고 사망한 故 장자연의 육체는 한줌 재가 됐지만 연예계의 뿌리 깊은 악습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조사에 응한 여배우와 배우지망생 중 60.2%가 성접대 제의를 받았으며 이 중 6.5%는 실제 성폭행, 강간 등 범죄피해를 입은 것으로 드러났다. ‘~카더라’식의 루머로 떠돌던 성접대, 스폰서 관행이 국가 기관에 의해 사실로 확인된 것은 처음이다. 충격적인 ‘연예인 성상납’ 보고서엔 어떤 내용이 담겨있을까.
지난달 27일 인권위는 ‘여성연예인 인권상황 실태조사’에 대한 발표와 토론회를 열었다. 이번 조사는 여성 연예인의 인권 상황을 짚은 국내 최초의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100명 중 6명 꼴 ‘성폭행’ 피해
한국여성정책연구원(책임연구원 이수연)의 주관으로 지난해 9월~12월까지 3개월에 걸친 실태조사에는 현재 활동 중인 여배우 111명과 배우지망생 240명이 참여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절반을 훌쩍 넘는 60.2%의 여배우들이 PD 등 방송관계자나 일명 ‘스폰서’로 불리는 유력인사들로부터 성접대 제의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술시중을 들라는 요구를 받은 경우도 45.3%나 됐다. 31.5%는 가슴, 엉덩이 등 신체 일부를 만지는 피해를 입었으며 실제 성폭행, 강간을 당한 경험도 6.5%에 달했다.
일례로 연기자 A씨(20대 중반)는 기획사 대표로부터 몹쓸 짓을 당할 뻔 했다. 어느 날 의상 협찬을 핑계로 고급 옷 가게에 A씨를 대동한 대표는 실컷 옷을 사주며 환심을 샀다. 그런데 귀가 시간이 되자 대표는 A씨를 모텔로 끌고 간 것.
당황한 A씨에게 그가 뱉은 사탕발림은 이랬다. “이쪽 일을 하려면 세상을 더 알아야 하고 남자도 알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또 다른 여배우 B씨(20대 중반)는 기획사 대표의 ‘징그러운’ 요구 탓에 계약을 접었다. 심층면접조사에 응한 B씨는 “소속사 요구로 술자리 등에 여러 번 불려나갔다”며 “언급조차 싫을 만큼 불쾌한 상황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돈을 주고 여배우의 몸을 사는 ‘스폰서’의 존재 역시 이번 실태조사에서 사실로 확인됐다. 설문에 응한 연기자 중 55%가 ‘유력 인사’와의 만남을 제의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스폰서’ 관계는 연예계 주변에서 매우 일상적이며 빈번하다는 게 연기자들의 반응이었다.
연예인과 스폰서의 부적절한 관계는 과거부터 끊임없이 회자돼 왔다. 특히 연예인들이 CF 출연 등 활동 기회를 얻기 위해 강간에 가까운 섹스와 변태적인 유흥을 감수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심지어 일부 PD는 신인 여배우를 뽑을 때 룸살롱에서 오디션을 보는 경우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었다.
男 신인도 몸 로비 희생
문제는 부당한 요구에 대한 일부 연예인들의 대처법이다. 이런 제안을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 받아들이는 매니저와 연예인 지망생들이 적지 않다는 이야기다. 섹스를 일종의 경쟁력으로 여기는 ‘까진’ 신인들 탓에 여자 연예인 전체가 도매금으로 치부되고 있다.
전직 매니저 이모(29)씨는 “속칭 ‘까진’ 아이들의 경우 ‘PD와 잠자리를 할 수는 없느냐’고 노골적으로 묻는 경우도 있다”며 “그런 애들에겐 연예계는 섹스만 잘하면 스타가 되는 곳으로 통한다. 요즘은 부모들까지 거기에 동조하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이번 인권위 조사에는 여자 연예인들의 피해 상황만 언급됐지만 연예계 몸 로비에는 남녀가 따로 없다는 게 정설이다. 과거에는 주로 남성 스폰서가 여자 연예인들을 구했지만, 최근에는 부유한 여성이 남자 연예인을 수소문하는 경우가 급증한 탓이다. 이른바 ‘꽃미남 열풍’ 이후 젊은 남성과의 잠자리를 원하는 귀부인들이 줄을 섰다는 얘기다.
전·현직 매니저들에 따르면 일부 재벌가 영애나 고급 레스토랑, 미용실 등을 운영하는 여사장 정도가 남자 연예인의 ‘누나 스폰서’를 자청한다. 실제 이들의 영향력은 상당히 막강하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귀띔이다. 모 신인 배우는 ‘누나’의 도움으로 최근 톱 탤런트의 반열에 올랐다.
익명을 요구한 한 매니저는 ‘누나 스폰서’에 대해 “한 마디로 섹스에 미친 여자들”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시도 때도 없이 해당 연예인을 불러내 질펀한 섹스를 즐기는가 하면, 아예 연예인의 친구까지 불러 ‘3p’ 등 난교를 즐기기까지 한다”며 “모 신인 연예인은 ‘내가 호스트바 남창이냐’고 항변해 결국 뛰쳐나갔다”고 전했다.
연예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상대적으로 남성보다 여성 스폰서가 ‘진상’ ‘악질’로 통한다. 철저히 돈을 들인 만큼 단물을 빨아먹으려 한다는 것이다.
시간이 흘러 관계가 지겨워지거나 이용가치가 없을 때는 가차 없이 해당 연예인을 내친다는 점에서 간담이 서늘할 정도다.
[이수영 기자] severo@dailysun.co.kr
#연예인과 하룻밤은 ‘쩐의 전쟁’
스폰 비용은 연예인 등급에 따라서 천차만별이다. 레이싱걸은 1년에 1억이 ‘적정가격’이다. 아무리 예뻐도 연예인이라는 꼬리표가 붙지 않은 상태에서는 그 이상을 넘기 힘들다. 반면 A급 연예인의 경우 1년 간 관계를 유지하는 데 10억 정도가 든다.
‘톱스타’의 경우는 어떨까. 연예계 소문을 종합하면 최고 40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이는 재벌이 아니면 도저히 감당을 할 수 없는 금액이다. 이밖에 인기나 인지도에 따라 1억~10억 이하로 다양하게 계약이 체결된다.
하지만 이 돈은 연예인 개인에게 돌아가지 않는다. 워낙 액수가 커 스폰서가 운영하는 회사가 매니지먼트 회사에 ‘투자’하는 형식으로 지급된다는 것. 그래야 의심받지 않고 안정적인 거래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매니지먼트사 입장에서도 이런 스폰은 큰돈을 벌어다주는 중요한 계기가 돼 상당수 회사들이 반기는 수법이다. 연예인도 연예인이지만 매니지먼트사들도 결코 뿌리치기 힘든 유혹일 수밖에 없다.
이수영 기자 severo@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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