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동거녀 살인사건 전모

가정폭력의 심각성이 도를 더하고 있다. 최근 정신지체 장애가 있는 동거녀를 폭행해 숨지게 한 50대가 과거에도 부인과 아버지를 잇따라 살해한 것으로 드러나 범법자 관리가 허술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대전 중부경찰서는 지난달 29일 정신지체(2급) 장애가 있는 동거녀를 마구 때려 숨지게 한 혐의(상해치사)로 박모(52)씨를 구속했다.
경찰에 따르면 박씨는 2008년 1월 중순께 대전시 중구 용두동의 자택에서 동거녀 정모(당시 42세)씨와 다투다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정씨를 주먹과 발로 마구 때려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박씨는 과거에도 아버지와 부인을 때려 숨지게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에 따르면 박씨는 아버지의 가정폭력에 시달리며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의 폭력에 치를 떨었으면서도 장성한 후 아버지의 모습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다. 가정폭력에 시달린 어린이는 어른이 돼서도 심각한 인격 장애를 앓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박씨는 1998년 11월에도 친아버지(당시 73세)를 마구 때려 숨지게 한 혐의(상해치사)로 구속돼 법원에서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한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나타났다.
당시 박씨는 당시 “아버지가 술만 마시면 어머니를 때려 화가 나 그랬다”고 경찰에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1992년에는 부인을 때려 숨지게 한 혐의(상해치사)로 구속돼 의정부 지방법원에서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한 것으로 드러났다.
박씨는 출소 후 알게 된 정모(42)씨와 동거하며 새 삶을 살고자 했지만 쉽지 않았다. 특히 습관은 무서운 것이었다.
부인과 아버지를 차례로 폭행해 살해한 박씨는 수시로 정신지체(2급) 장애인인 정씨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더욱이 정씨를 숨지게 할 당시에는 임신 중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마구 폭력을 휘두른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에 따르면 박씨는 2008년 1월 중순께 대전시 중구 용두동의 자택에서 정씨와 다투다 정씨를 주먹과 발로 심하게 때려 숨지게 했다. 정씨가 평소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의심이 부른 참극
정씨의 시신은 2008년 3월 이웃 주민에 의해 발견됐다. 이후 경찰은 종적을 감춘 박씨를 용의자로 지목, 추적해 왔다.
경찰 관계자는 “사건 당시 만난 이웃 주민들은 정씨가 평소에도 종종 얼굴에 멍이 든 모습으로 외출하곤 했다고 말했다”면서 “박씨는 정씨를 자주 폭행했으며, 정씨가 임신한 데 대해서도 ‘아이 아버지가 내가 맞느냐’고 의심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박씨는 혐의 내용을 순순히 인정했으며, 수사 과정에서 ‘범행을 후회한다’고 말했다.
박씨는 일정한 수입이 없어 정씨 앞으로 매달 30만원씩 지급되는 기초생활수급권자 수당에 의지한 삶을 살아왔다. 하지만 정씨를 폭행할 때는 말 그대로 무자비했다.
사건 당시 임신 4개월째이던 정씨는 박씨의 폭행에 못 이겨 뇌부종, 늑골(갈비뼈) 골절 등의 중상을 입고 숨졌으며, 시신은 사건 발생 한달여 후인 3월 초 이웃 주민에 의해 발견됐다.
박씨는 범행 직후 도주, 경북 경주와 울산시 등에서 노숙 생활을 하다 지난달 23일 오후 4시 55분께 경북 경주시 서악동에서 검문 중이던 경찰관들에게 붙잡혔다.
경찰 관계자는 “박씨가 경찰 조사에서 반성의 기미를 보이면서도 종종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면서 “다면성 인격장애가 의심된다”고 밝혔다.
박씨는 평소 이웃들과 왕래가 많지 않았으며, 소수의 친구들과 어울려 가끔 술을 마신 것으로 알려졌다.
가정폭력의 결과
이 사건과 더불어 30대 주부가 남편의 폭행과 학대에 못 이겨 남편을 잔인하게 살해한 사건도 발생했다.
인천 남부경찰서는 지난달 30일 평소 남편에게 폭행과 학대를 당한 것에 앙심을 품고 남편을 잠들게 한 뒤 살해 한 혐의(살인)로 김모(39)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김씨는 같은 달 26일 오전 5시께 인천시 남구 도화동의 자택에서 남편 박모(43)씨에게 수면제를 탄 커피를 마시게 해 잠들게 한 다음, 미리 준비한 동물용 수술마취제를 박씨의 다리에 주사하고, 코와 입을 청테이프로 막아 살해 한 혐의를 받고 있다. 박씨 살해에 이용됐던 동물용 수술마취제는 김씨가 동물용 약품을 취급하는 약국에서 구입한 것으로 경찰조사결과 확인됐다.
동물용 마취제는 마약류로 분류돼 마취제의 성분에 따라서는 수의사, 약사, 전문의 외에는 취급할 수 없도록 규정돼 있다. 이에 경찰은 김 씨가 마취제를 구입한 경위에 대해서도 조사를 하고 있다.
경찰조사에서 김씨는 “10년전 결혼한 이후부터 무시당하며 학대 받아왔다”고 진술했다.
부부 ‘맞주먹’ 폭행 증가세
최근 가정 폭력 가운데 아내가 남편의 폭력에 맞서 대응하는 ‘맞폭력’의 비율이 해마다 늘어 6~7건 중 1건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4월 25일 한국가정법률상담소가 지난해 상담했던 가정 폭력 사례 66건을 분석한 결과 남편과 아내의 맞폭력이 차지하는 비율은 15.2%로 분석됐다. 나머지는 남편의 일방적인 폭행이었다. 남편과 아내의 맞폭력 비율은 2001년 4.3%, 2003년 4.9%, 2005년 12.3%, 2007년 10.0% 등 가파르게 늘고 있다. 지난 8년새 3배 이상 증가했다.
가정법률 상담소 관계자는 “여성 의식수준과 지위가 높아지면서 남편에게 폭력을 당할 경우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가정폭력에 대한 사회적 대응필요
가정 폭력은 단순한 가족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폭력에 희생된 사람이 또 다른 폭력의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사회에 적절한 대책이 요구되고 있다.
최근 한나라당 홍일표 의원은 가정폭력범죄 피해자 보호 강화를 추진하는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지난 4월 26일, 홍 의원은 가정폭력범죄 발생 시 사법경찰관에게 가해자에 대한 임시 긴급격리 또는 접근금지 조치 권한을 부여해 피해자의 실질적인 안전을 확보토록 하는 내용의 ‘가정폭력범죄처벌특례법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개정안은 피해자 보호명령제도를 도입해 피해자 스스로 안전과 보호를 위한 방책을 강구하고 이를 직접 법원에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통상 가정폭력범죄 발생 시 사법경찰관의 피해자 보호를 위한 실질적 초기대응이 미흡하고, 피해자보호조치가 임시조치나 보호처분의 일환으로 가해자에 대한 제재조치에 종속돼 있어 피해자 보호에 한계가 있어왔다고 홍 의원측은 밝혔다.
홍 의원은 “2007년 실시한 여성가족부 전국 가정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부부폭력, 노인·아동 학대 등 가정폭력발생률이 50.4%로 조사됐고, 이는 두 가구 중 한 가구에서 가정폭력이 발생하는 심각한 상황을 의미하는 것”이라며 “앞으로 긴급임시조치, 피해자보호명령 등이 도입되면 실질적 피해자 보호와 권한 강화에 큰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윤지환 기자] jjh@dailypot.co.kr
윤지환 기자 jjh@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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