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 마당발 권혁, 즐거운 비명
KBO 마당발 권혁, 즐거운 비명
  • 김종현 기자
  • 입력 2015-05-18 15:15
  • 승인 2015.05.18 15:15
  • 호수 1098
  • 56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뉴시스>

혹사 논란 권혁, 구원 중 정규이닝 유일…역대 최대이닝 눈독
김성근 벌떼야구에 강팀들 혼쭐…삼성 상대 1358일만의 기적

올 시즌 KBO의 화두는 단연 한화 이글스의 ‘벌떼야구’로 압축된다. 이 같은 현상은 마땅한 선발진을 찾기 힘든 팀 내 사정이 한몫했지만 매 경기 한국시리즈를 방불케 할 정도로 팀 승리를 위해 총공략에 나서는 김성근 감독의 전략에서 비롯된다. 이런 가운데 한화의 승리에는 불펜투수 권혁이 필수조건이 되면서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더욱이 그는 혹사 논란에도 불구하고 친정팀 삼성라이온즈를 무너뜨리면서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지칠 줄 모르는 그의 투혼을 만나봤다.

올 시즌 프로야구 마운드에 가장 많이 오른 선수는 올해 한화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왼손투수 권혁이다. 그는 올 시즌 팀이 치른 36경기 중 23경기에 등판해 36이닝을 던지며 마당발로 자리매김했다.

권혁은 지난 14일 대구구장서 열린 ‘2015 타이어뱅크 KBO리그’ 친정팀인 삼정전에서 시즌 8세이즈를 올렸다. 한화는 8-5로 앞선 8회 무사 1루에서 팀이 다섯 번째 투수로 권혁을 등판시켜 2이닝을 맡겼다.

이날 권혁은 8회 1사 1·2루 위기에서 구자욱과 채태인을 연속 삼진 처리하며 실점 위기를 넘겼고 9회에는 이승엽-우동균에게 적시타를 맞아 2실점했지만 이지영과 김상수를 범타처리하며 결국 승리를 지켜냈다.

이로써 한화는 지난 2011년 이후 처음으로 삼성을 상대로 위닝시리즈를 거두며 또 한 번의 파란을 일으켰다. 더욱이 올시즌 한화의 파란에는 단연 권혁이 자리를 차지하며 독보적인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다.

기록으로 살펴보면 권혁의 존재감은 더욱 뚜렷하다. 한화가 지난 14일 현재 거둔 18승 가운데 16승이 권혁이 마운드에 오른 경기다.

이 같은 권혁의 활약은 인상적일 수 있지만 혹사당하고 있다는 주장이 여러 번 제기됐다. 권혁은 올 시즌 14일 현재 612개의 투구수를 기록하고 있다. 더욱이 2이닝 이상 던진 경기만 11차례나 되고 여기에 2이닝 이상 던진 경기만 11차례나 된다.

권혁의 필승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구원투수 중 최다 이닝이며 규정이닝을 채운 유일한 선수다. 또 지난 2014 시즌 삼성 시절 던진 34.6이닝을 이미 뛰어넘은 지 오래다.

이에 대해 권혁은 지난 14일 “나도 사람이다. 오늘 내일만 던지는 것도 아니고 1·2년만 던질 것도 아니다”면서 “오래 야구를 하고 싶다. 내 몸은 내가 아껴야 한다. 힘들면 코칭 스태프에 직접 말하겠다. 니시모토 투수코치, 홍남일 트레이닝 코치, 김성근 감독이 늘 내 몸 상태를 확인한다”고 해명했다.

물론 이닝을 거듭할수록 경기내용은 조금씩 나빠지고 있다. 4월에 배해 평균 자책점은 2.78에서 3.75로 피안타율은 0.239에서 0.278, 볼넷 비율 1.59에서 4.66개로 모두 높아지면서 우려를 낳고 있다.

권혁은 “힘들긴 하지만 아직까지 할 만하다. 나는 괜찮다고 하는데 혹사 얘기가 나와서 이상하다. 그럴수록 내가 더 잘 던져야 한다”고 각오를 전한 바 있다.

더욱이 권혁은 시즌 초반 셋업맨으로 시작해 마무리 윤규진 부상 이탈 이후에는 임시 마무리 역할까지 맡으며 사실상 롱릴리프와 원포인트를 가리지 않는 전천후 계투로 활약하면서 야구팬들에게 전 한화 소속이던 구대성을 떠올리게 하고 있다.

만개한 권혁
제2의 구대성 보인다

▲ <뉴시스>
‘대성불패’로 불리며 1990년대 후반부터 최고의 마무리 투수로 군림했던 구대성은 지금도 권혁과 마찬가지로 롱리릴프 같은 마무리로 유명했다. 그는 철저한 자기관리와 투구밸런스를 바탕으로 40대까지 현역으로 장수했고 아직 호주 무대에서 명성을 날리고 있다.

권혁도 좌완 투수에 탁월한 체격조건을 지니고 있는 등 구대성과 상당부분 유사한 점을 찾을 수 있다. 큰 키에서 내리 꽂는 높은 타점은 타자들에 위압감을 주고 있다. 또 삼성 시절 약점으로 지적됐던 제구력도 김 감독 아래서 많이 좋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구대성 만큼의 내구력이 있는지 검증되지 않았다는 점이 물음표로 남아 있다. 선발과 불펜을 오갔던 구대성과 달리 권혁은 대부분을 불펜으로 보냈다.

권혁의 한 시즌 최다이닝은 2004년 기록한 81이닝으로 지금까지 70이닝 이상 소화한 시즌은 통산 세 번 밖에 없었고 최근 4년간 모두 50이닝 미만을 투구했다. 현재 페이스를 감안한다면 권혁은 올 시즌 역대 최대이닝 투구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같은 상승세에는 여러 가지 사실들이 반증하고 있다. 권혁은 올 시즌 그 어느 때보다는 밝은 표정을 짓고 있다. 이는 팬들의 큰 관심 덕분이다.

한때 삼성의 불펜진 핵심을 맡았던 권혁이지만 팀 내 비중이 줄어들면서 최근 2~3년간 주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던져 관심 밖으로 점차 멀어졌다.

이에 FA자격을 얻는 뒤 13년 동안 몸담았던 삼성을 떠나는 계기가 됐다. 권혁은 “기준 좋다. 팬들도 정말 많이 응원해 주신다. 많이 나갈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하다”며 그간의 설움을 대신했다.

이뿐만 아니라 성격도 바뀌었다. 권혁은 한화에 온 뒤 마운드에서 불같은 투지를 드러내기도 하고 기뻐하는 모습도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등 활발하게 어울리거나 감정을 거침없이 표현할 정도로 적극적이 됐다. 이를 두고 한화로 이적한 뒤 야구장에서 즐기자는 생각으로 바뀌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 <뉴시스>
김성근 공수매직
4위와 0.5 게임차

이처럼 권혁을 불굴의 상징으로 만든 건 김성근 매직의 결과라 할 수 있다.

김 감독은 올 시즌 파격적인 용병술과 다양한 작전구사로 상대팀의 허를 찌르는 데 성공했다. 특히 박정진과 권혁으로 이어지는 필승조의 역투는 한화의 승리 공식으로 자리매김했다.

실제 12일부터 이어진 삼성전에서 한화는 마치 포스트시즌을 연상시키는 선수기용과 상식과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는 김 감독의 야구철학이 빛을 발하면서 5월 야구의 중요한 고비를 넘기게 됐다. 삼성전을 위닝시리즈로 마무리하면서 넥센-SK 등 줄줄이 이어지는 강팀과의 대진운에서 큰 보탬이 됐다는 평가다.

앞서 한화는 최약체인 KT에 이어 두산에게도 연달아 위닝시리즈를 내주면서 위기감에 휩싸였다. 더욱이 권혁의 혹사 논란까지 이어지면서 감 감독의 마운드 총력전이 가져온 부작용이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올 정도였다.

또 한화는 김 감독이 부임하기 전까지 최근 6년간 상대전적에서 한 번도 앞서보지 못해 김 감독이 이끄는 한화가 삼성을 상대로 얼마나 선전할 수 있을지가 야구팬들의 최대관심사 중 하나였다.

하지만 김 감독은 일명 ‘벌때야구’를 선보이며 승기를 잡았다. 한화는 승리한 1, 3차전에서 총 13명의 투수를 투입하는 총력전을 펼쳤다. 이미 선발은 의미가 없었다.

탈보트가 극도의 부진으로 2군에 내려갔고 배영수도 컨디션 난조로 등판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에 안영명이 이틀의 간격을 두고 같은 시리즈에 두 번이나 선발로 나서는 변칙을 감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화 승리의 꽃은 2~3회부터 불펜이 가동되면서 빛을 발했고 그 중심에는 권혁과 박정진이 있었다. 특히 김 감독이 삼성 타자들의 특성에 맞춰 투수들을 철저하게 잘라 투입해 실점을 최소화한 점은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더욱이 정대훈, 김기현, 송창식, 박정진 등 한 팀 선수 4명이 홀드를 기록하는 진풍경이 연출돼 여전히 박진감 넘치는 한화드라마를 써내려갔다.

공격에서도 김 감독의 지략은 상대방을 무너뜨렸다. 3차전 5회 초 공격에서 강경학-이용규의 안타와 도루로 1사 2, 3루 기회를 만들고 권용관에게 스퀴즈 번트를 지시해 삼성 내야진을 무력케 했다.

또 2사 만루에서 김경언을 빼고 삼성 장원삼에게 강한 김태균을 대타로 투입해 김태균의 만루홈런으로 승부를 한화쪽으로 가져오는 결정적 기회를 만들기도 했다.

이로써 한화는 여전히 5할 승률을 지켜내며 김성근 매직을 경험하고 있다. 또 그 이면에는 선수들을 최대한으로 끌어내며 강팀들을 뒤흔드는 일명 ‘마리한화’의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한편 한화는 지난 14일 현재 6위에 이름을 올렸지만 4위 넥센과는 겨우 0.5게임차에 불과해 가을야구를 향한 도약을 이어가고 있다.

todida@ilyoseoul.co.kr

김종현 기자 todida@ilyoseoul.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