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잔류 고민… 스코틀랜드 독립운동 가속화
유럽연합과 벌여나갈 향후 협상도 버거워
[일요서울 | 송철복 수석 편집위원] 7일 치러진 영국 총선에서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이끄는 집권 보수당이 과반보다 4석 더 많은 331석을 얻어 232석에 그친 노동당을 멀찍이 따돌리고 완승했다. 당초 영국은 물론 세계 언론은 보수당이 과반 확보에 실패해 소수 정당과 연정을 구성할 수밖에 없으리라 보았지만 이런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에드 밀리밴드 노동당 당수는 선거 참패에 책임을 지고 즉각 사임했다.
캐머런 총리는 총선에서 압승함에 따라 1997년 이후 처음 보수당만으로 단독 정부를 꾸려 두 번째 총리 임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승리의 감격에 도취하기보다 캐머런 앞에는 영국이라는 국가의 정체성과 세계 속 영국의 위상과 관련해 가히 실존주의적이라고 할 수 있는 도전이 버티고 있다. 유럽연합(EU) 내에서 영국을 영국 내에서 스코틀랜드를 어떤 모습으로 유지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그것이다.
캐머런은 “EU가 이민 억제와 관련한 우리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영국이 EU에 남을지 말지 묻는 국민투표를 2017년 말까지 실시하겠다”라고 공언해 놓은 상태다. 이 약속을 이행하는 것만도 버거운데 스코틀랜드 독립운동의 주역인 스코틀랜드독립당(SNP)이 이번 총선에서 급부상한 것은 캐머런에게 또 다른 부담이다.
양날의 칼 같은 총선 압승
캐머런에게 이번 승리는 양날의 칼 같은 성격을 지닌다. 총선에서 이겨 보수당이 여당이 된 것은 다행스럽지만, 보수당이 과반에서 불과 4석을 더 얻었을 뿐이어서 불안하기 그지없다. 그도 그럴 것이, 의회 정치의 본산인 영국에서는 한국에서처럼 국회의원이 당론(黨論)을 무조건 따르지 않기 때문이다. 보수당 내부에는 이민이나 영국의 EU 잔류 같은 중대 사안과 관련해 캐머런보다 훨씬 우파적인 입장을 취하는 국회의원들이 적지 않다. 이들 ‘당내 반대파’가 의회에서 반란이라도 일으킨다면 당수인 캐머런이 난감한 처지에 빠진다.
캐머런은 지난 1기 정부 때는 중도파 자유민주당과 연정해 의회 내에서 ‘넉넉한’ 다수를 차지할 수 있었던 덕분에 의회에서 자신의 정책을 추진하는 데 크게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져 과반에서 불과 4석 많은 보수당이 단독으로 다수당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에 당내에서 이탈자가 나오면 큰일이다. 그래서 벌써부터 의원 단속에 부쩍 신경을 쓰고 있다.
당내 반대파 문제 못지않게 캐머런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 이번 총선에서 SNP가 약진했다는 사실이다. SNP는 스코틀랜드 주(州) 전체 의석 59석 가운데 56석을 싹쓸이했다. 이로써 SNP는 영국 의회에서 강력한 발언권을 갖게 됐고, 스코틀랜드는 사실상 한 개의 정당이 지배하는 주(州)가 됐다. SNP는 지난해 9월 스코틀랜드 독립 여부를 묻는 주민투표를 주도했다가 실패한 바 있는데, “1년 뒤 있을 지방선거 때 스코틀랜드 독립 주민투표를 한 번 더 해보자”라고 벌써부터 목소리를 내고 있는 실정이다.
멜 깁슨과 소피 마르소가 출연한 미국 영화 <브레이브하트>는 13세기 말엽 스코틀랜드 왕이 후계자 없이 죽자 잉글랜드가 스코틀랜드를 집어삼키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 영화가 실감나게 보여주듯 역사적으로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잉글랜드 사람들을 ‘정복자’로 여긴다. 이런 앙금은 지금도 남아 있으며 현재도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영국 보수당을 ‘잉글랜드 정당’으로 간주한다. 이런 역사적 구원(舊怨)의 위력은 대단해 스코틀랜드 독립 열기를 이어가고 있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세계적인 배우 숀 코너리는 “스코틀랜드가 독립하기 전에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라고 공언하고 다닐 정도다.
영국 총선이 보수당 압승으로 굳어지자마자 캐머런이 런던 다우닝가(街) 10번지 총리 관저 앞에 나타나 군중을 향해 “보수당은 하나의 국가, 하나의 영국의 일개 정당으로서 존중심을 가지고 나라를 통치할 것”이라고 약속하고 나선 것도 영국 정치의 이런 분파적(分派的) 속성을 의식한 데 따른 것이다.
하지만 말은 쉬워도 이런 약속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기란 어렵다. 보수당이 선거 유세 기간 중 SNP를 마구 비난했음을 감안하면 특히 그렇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는 같은 나라에 속한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서로 반목하고 있다. 여기에다 잉글랜드도 스코틀랜드도 이제 모두 단독 정당에 의해 대표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총선 직후 영국 정계에서 “이제야말로 모종의 연방제를 채택할 때가 아닌가”라는 제안까지 나왔다.
스코틀랜드의 운명은 영국이 유럽과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와도 연계돼 있다. 캐머런은 총리에 재선될 경우 브뤼셀(EU본부)과 ‘더 나은 거래’를 협상하는 노력을 일단 기울여 본 다음 영국의 EU 잔류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거듭 공언해 왔다.
‘역내 이동’ EU 조약 추진
만약 캐머런이 EU 설득에 실패하고 영국이 국민투표로 EU 탈퇴를 결정하면 유럽 잔류를 희망하는 스코틀랜드는 ‘이때다’ 하고 다시 한 번 독립 주민투표를 밀어붙일 것이 거의 확실하며, 그 때에는 주민투표가 독립 찬성으로 기울 확률이 매우 높다.
EU는 인력의 역내(域內) 이동을 자유롭게 만드는 제도를 추진 중인데, 캐머런은 이 제도의 변경을 요구하고 있다. EU 규정상 EU 조약 변경이 필요하든 않든 간에 중요 사안은 28개 회원국 만장일치를 거치게 되어 있다. 따라서 캐머런이 고집을 부리면 막판에 독일 같은 EU 강국이 나서서 영국을 말리게끔 구도가 짜여있다.
그렇지만 보수당 내부에서 “이제 그만 EU를 떠나자”는 목소리가 만만찮다는 것이 문제다. 지난 의회에서 보
수당 의원의 근 3분의 1이 반(反)유럽파로 분류되었으며 이런 판도는 좀체 바뀔 조짐이 없다.
캐머런은 영국이 EU에 가입한 뒤 이민자가 늘고 재정이 악화됐다는 이유로 브렉시트(Brexit, 영국의 EU 탈퇴)를 들고 나왔다. 영국에서는 다른 EU 국가 출신 이민자가 크게 늘면서 영국인들의 일자리가 줄었다는 불만이 높다. 보수당은 한 해 60만 명인 이민자 수를 10만 명 선으로 줄이기를 바라고 있다. 캐머런은 이민자 문제 등에서 EU 인권법 대신 영국 인권법을 적용할 수 있도록 EU 협약 개정을 요청해 보고 안 되면 국민투표를 실시한다는 계획이다. 유럽통합의 정치적 결과물인 EU가 영국에서 일자리를 잠식해 영국인들이 ‘EU 탈퇴’까지 들먹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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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철복 수석 편집위원 ily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