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통령 대국민 정치 시동
박대통령 대국민 정치 시동
  • 류제성 언론인
  • 입력 2015-05-18 13:58
  • 승인 2015.05.18 13:58
  • 호수 1098
  • 1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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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 여의도 레임덕의 전쟁인가
김무성-유승민 라인에 대한 불신…대국민 정치 시동
“박 대통령의 친 여의도로 레임덕과의 전쟁” 시각도

[일요서울 | 류제성 언론인] “공무원연금 개혁이 지연될수록 국민의 부담과 나라 살림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그것은 결국 국민들의 허리를 휘게 하는 일입니다. 어휴… 이것만 생각하면 한숨이 나와요.”

박근혜 대통령이 5월 12일 국무회의에서 한 말이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즉각 코드를 맞췄다. 김 대표는 다음날 국회의원 연구모임인 ‘퓨처라이프포럼’에 참석한 자리서 “어제 박근혜 대통령은 공무원연금 개혁을 생각하면 한숨이 나온다고 했는데, 저는 이 문제를 생각하면 참 가슴이 터질 듯 답답하다”고 했다.

박 대통령의 ‘궁중(宮中) 메시지’가 정국 향배의 키(배의 조정 장치) 역할을 단단히 하고 있다. 국정 현안에 대한 생각, 정치권이나 국민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들을 핵심만 콕 찝어 간결한 메시지 형태로 전달하는 방식이다. 대통령의 메시지가 나오면 여당은 곧바로 반응한다.

박 대통령은 12일 국무회의에서 “공무원 연금 개혁이 지연될 경우 시한폭탄이 터질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자 여권은 ‘당·정·청 공무원연금 고위 대책회의’를 추진하는 기민성을 보였다.

발목 잡힌 경제활성화 법안

국회는 12일 본회의를 열어 연말정산 추가 환급 보완책을 담은 소득세법 개정안, 누리과정(만 3~5세 무상보육) 예산 부족 해결을 위한 지방재정법 개정안, 상가 임차인의 권리금 보호장치를 마련한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등 3개 법안을 처리했다. 본회의 법안 처리과정의 마지막 관문인 국회 법사위를 통과한 다른 65개 법안은 야당의 막판 발목잡기로 본회의 상정이 무산됐다.
그러자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의 협상력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지만 정치권 일각에선 3개 법안이라도 처리한 건 유 원내대표가 박 대통령의 메시지에 담긴 뜻을 읽어 일단 최소한의 성과를 내기 위한 노력이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실제로 박 대통령은 여야의 정쟁으로 국회에서 발목이 잡혀 있는 경제 활성화 관련 법안들에 대한 안타까움도 수시로 표현한다. 지난 6일 규제개혁장관회의 및 민관합동 규제개혁점검회의에선 “경제 활성화 법안을 붙잡고 있는 것이 과연 국민을 위한 정치인가 묻고 싶고, 이런 부분과 관련해 우리 정치가 거듭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박 대통령은 13일엔 청와대에서 주재한 ‘2015 국가재정전략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국민부담을 최소화하면서도 경제활성화와 민생을 충실히 뒷받침할 수 있도록 재정개혁에 속도를 내야 할 것”이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앞서 5월 4일 한 달 만에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선 “국민을 대신하는 정치인들과 정치가 국민의 염원을 거스르는 일은 개인의 영달과 이익을 추구하는 정치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의도 정치’의 수술 필요성을 강조한 발언이었다.
궁중 메시지의 압권은 4·29 재보선 전날 나온 ‘병상 메시지’였다. 당시 남미 4개국 순방을 마치고 돌아온 박 대통령은 위경련과 인두염 진단을 받고 청와대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었다. 박 대통령은 병상 메시지를 통해 고(故)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노무현 대통령 시절의 두 차례 사면을 둘러싼 의혹은 제대로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대통령의 대국민 메시지가 단순히 재보선 승리를 위한 승부수가 아니라고 분석한다. 재보선 이후 본격화 될 ‘성완종 리스트’에 대한 검찰 수사를 염두에 두고 과거의 적폐를 도려내려면 리스트에 거명된 8명의 여권 인사뿐 아니라 과거 정권의 실세들도 파헤쳐야 한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보낸 것이란 해석이다.
황교안 법무장관이 최근 성 전 회장의 특사 경위에 대한 검찰 수사 가능성을 언급한 건 박 대통령의 메시지에 담긴 의미를 읽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황 장관은 지난 12일 기자들과 만나 “성 전 회장이 참여정부에서 두 차례 특사를 받은 건 이례적이어서, 혹시 (비위) 관련 제보가 나올지 누가 알겠느냐는 차원에서 (수사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라고 말했다.

K-라인과 청와대 엇박자

박 대통령 뿐만 아니라 청와대 참모들도 잇달아 대국민 메시지를 내놓고 있다. 김성우 홍보수석이 5월 10일 ‘선(先) 공무원연금개혁 처리, 후(後) 국민연금 논의’ 방침을 재확인한 일이 대표적이다. 새누리당의 일부 소장파는 “여당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이라고 반발했지만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원내대표는 청와대 메시지에 호흡을 맞추고 있다.
박 대통령이 이처럼 대국민 직접 정치에 나선 까닭은 무엇일까.
우선 여당의 K-Y(김무성-유승민) 라인에 대한 불신 때문이란 관측이 많다. 박 대통령은 지난 4월 중남미 순방을 떠나기 직전 ‘식물 총리’ 상태였던 이완구 전 총리 대신 김 대표를 청와대로 불러 내치(內治)를 당부하며 여당 지도부에 힘을 실어준 바 있다.
이후 김 대표는 이 전 총리의 사의표명을 이끌어 내고, 4·29 재보선 현장을 누비며 개인기를 마음껏 발휘했다. 유 원내대표도 공무원연금 개혁의 시한 내 관철을 위해 새정치민주연합과 물밑 교섭에 적극 나섰다.
하지만 K-Y 라인은 박 대통령의 뜻과 달리 야당과의 공무원연금 개혁 협상에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 상향조정’에 어정쩡한 합의를 했다. 두 사람 사이에 개혁안의 국회 처리를 놓고 미묘한 알력도 일어났다. 이에 박 대통령이 격노를 했고, 결국 김 대표에게 줬던 권한을 사실상 박탈하기 위해 궁중 메시지를 꾸준히 보낸다고 볼 수 있다.
여기다 4·29 재보선에서 새누리당이 완승을 거둔 후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김 대표의 지지율이 치솟는 데 대한 청와대 참모들의 견제심리도 담겨 있다는 분석이다. 현실정치에서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미래 권력’의 도전은 용납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는 곧 현직 대통령의 조기 레임덕과도 연결된다.
따라서 청와대로선 김 대표에게 쏠려 있는 눈길을 돌릴 필요가 있었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김무성 대세론’의 확산을 막는 일이다.

당 안팎에 감춰진 인물들

새누리당의 친박계 핵심 A 의원은 “야당에는 문재인 대표 외에도 안철수 의원, 박원순 서울시장, 안희정 충남도지사 등 여러 대안이 있지만 여당엔 김 대표 외에 마땅한 대체재가 없다는 지적이 있다. 그러나 그건 잘못된 분석”이라고 말했다. 그는 “여당은 야당과 달리 차기 대권주자가 단숨에 부상할 수 있다. 실제로 당 안팎에서 감춰진 인물들이 있지만 박 대통령의 임기가 아직 반환점도 돌지 않은 시점이기에 드러나지 않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김무성 대세론’을 언급하기는 시기상조라는 의미다. A 의원은 ‘김무성 대안’이 누구인지에 대해선 입을 다물었다. 여당 주변에선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 외에도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의 이름이 거명되고 있으며, 경우에 따라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영입 대상으로 꼽고 있다.
여권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이 당초 계획했던 ‘특보정치’의 한계를 깨닫고 스스로 궁중 메시지를 통해 ‘여의도 정치’를 시작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특히 이번 공무원연금 개혁 파문에서 주호영·윤상현·김재원 의원 등 정무특보들의 역할이 전혀 부각되지 않은 만큼 특보정치를 용도폐기했다는 관측이다.
박 대통령이 ‘병상 메시지’ 이후에도 꾸준히 대국민 직접 정치에 나서면서 각종 여론조사에서 국정운영 지지율이 상향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보수층이 박 대통령을 중심으로 다시 결집하는 모양새다.
한국갤럽이 5월 둘째 주(12~14일 3일간) 전국 성인 1,001명에게 박 대통령의 직무수행 평가를 물은 결과(95% 신뢰수준에서 표본오차는 ±3.1%포인트)도 마찬가지였다. 40%는 긍정평가했고 50%는 부정평가했다. 대통령 직무 긍정률은 전 주 대비 1% 포인트 상승한 반면, 부정률은 2%포인트 하락했다.
일부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에선 김무성 대표가 문재인 대표를 앞선 것으로 나오고 있다. 한국갤럽의 ‘가상 대결’ 조사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다음 대선에 김무성-문재인 두 사람이 출마한다면 누가 대통령이 되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하는지’를 물은 결과 42%는 김무성, 38%는 문재인이라고 답했다. 여권에서 ‘김무성 대세론’의 조짐이 보이고 있고, 이는 현 정권에게는 견제 대상이 된다.
ilyo@ilyoseoul.co.kr 

류제성 언론인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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