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항의 강하게 하지 않아 과실여부 더 조사 안 했다니”
보험사들 보험사기 방지책 회사 위한 것일 뿐
금융감독원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적발된 보험사기 금액은 약 6000억 원, 보험사기 혐의자는 8만4385명에 이른다. 2013년 적발된 보험사기 금액이 5190억 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16% 늘어난 수치다. 이 수치는 금융감독원에서 공식적으로 보험사기 규모를 집계하기 시작한 2001년 이래 사상 최대치다.
보험사기는 보험 가입 유형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진다. 가장 많이 발생하는 보험사기는 자동차손해보험, 장기손해보험(1년 이상 운전자보험, 상해보험), 생명보험 순이다. 이중 자동차손해보험이 전체 적발액의 절반인 50.2%를 차지한다.
과학적인 증명 대신
정황으로만 사고책임 판단
지난 3월 A씨는 종로4가 로터리에서 종로3가 방향으로 주행을 하다 황당한 사고를 경험했다. 1차선에서 2차선으로 차선 변경을 하고 신호대기를 하고 있었는데 낯선 여성 B씨가 차창을 두드렸다. A씨가 창문을 내리고 무슨 일인지 묻자 B씨는 A씨의 차량이 자신의 차량 왼쪽 휀다 부분을 긁고 지나갔다며 보험처리를 해 달라고 말했다.
A씨는 주행 중 차가 부딪히는 느낌이 없었고 자신의 차에 긁힌 부위가 없었지만 B씨의 주장에 하는 수 없이 보험업체를 불러 처리를 맡기고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문제는 그 이후에 발생했다.
A씨의 보험사에서는 사고에 대해 8:2의 비율로 A씨의 과실로 판결하고 수리·렌트비 등이 포함된 보험금 약 140여만 원을 B씨에게 지급해 버린 것이다. 사고 상황에 대해 이해할 수 없던 A씨는 보험사에 항의를 했다. 보험사에서 돌아온 말은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항의했으면 피해사실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봤을 텐데 사고 이후 이렇다 할 반응이 없어서 그대로 종결을 했다”는 말뿐이었다.
A씨는 자신의 보험사를 믿고 보험처리를 부탁했는데 항의를 강하게 하지 않아 과실여부에 대해 더는 이의가 없는 줄 알고 종결했다니 황당할 따름이었다.
A씨가 더욱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사고 당시 사고를 목격한 사람은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B씨뿐이었다는 점이다. 두 차 모두에 블랙박스는 설치돼 있지 않았고 주변에 사고당시를 찍은 CCTV도 없었다. 그런데 현장조사를 나온 보험사 관계자 역시 사고사실 유무는 물론 기타 정황을 제대로 살피지 않은 채 사고 상태만을 보고 과실여부를 판단한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피해자 B씨가 주장하는 피해상태다. B씨가 주장한 접촉부분인 오른쪽 휀다를 살펴보면 음푹 눌린 자국과 가로 세로 각각 1줄씩의 스크래치가 나 있었다. A씨와 B씨의 보험사 측은 가로 세로 스크래치는 A씨 차량의 바퀴 또는 휠이 스치면서 생긴 것이라고 주장했다.
A씨는 황당함이 극에 달했다. 최소한 두 차량의 타이어나 휠의 높이를 파악해 본 것도 아니고 정황상 그러니 사고책임이 있다고 말하는 보험사에 배신감까지 들 정도였다. 추후 B씨 휀다에 있던 음푹 눌린 자국은 과거 사고에서 발생한 것으로 밝혀졌지만 가로 세로 스크레치에 대해서는 보험사도 명확한 결론을 내놓지 못한 채 보험금 지급이 이뤄져 종결되고 말았다.
A씨는 사고가 종결된 지 두 달여가 지났지만 지금도 사고가 정말 발생한 것인지 아직도 이해할 수가 없다는 입장이다. 보험사의 불성실한 태도와 함께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양쪽 보험사들이 짜고 그런 것은 아닌가하는 의심까지 들 정도다.
자동차보험사기 증가
사기 치기 쉬워서?
자동차보험 사기에 있어 사고원인 및 피해사실 증명은 상당히 중요하다. 사고과실 여부를 따지기 위해서는 철저한 증명이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많은 보험사들이 진로변경사고 등 상황별 과실비율을 정해 놓고 그 가이드라인에 맞춰 고객들의 사고과실을 따지고 있다.
자동차보험 사기가 증가하는 이유는 그만큼 사기 치기가 쉽기 때문이다. 보험사기 혐의자가 똑똑해서라기보다는 보험사의 피해사실 확인 과정이 어설프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자동차손해보험사기의 주요 유형 중 허위로 자동차 도난신고를 하고 보험금을 타내는 수법이 가장 흔할까.
물론 보험사 측이 경찰과 같은 사법기관은 아니다. 하지만 보험사로서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서는 사고원인분석과 과실유무를 판정하는 데 명확한 기준을 갖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점이 문제다.
최근 보험사들도 보험사기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보험사고조사전담팀(SIU), 보험사기방지지스템(IFDS) 등을 설치하고 보험사기 방지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자신들의 고객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자신들의 보험사를 상대로 사기를 치려는 사람들을 검거하는 데 우선순위를 두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점이다.
벌금형 느는데 벌금 감소
관련법 강화해야
보험사기가 늘어나면 그 만큼 국민 손실은 커진다. 자동차보험의 경우 최근 자차손해의 담보 손해율이 2011년 74.3%에서 지난해 1분기 기준 86.2%까지 올랐다. 자동차보험료가 인상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문제는 증가한 담보 손해율 속에 보험사기가 끼어 있다는 점이다. 결국 국민들은 더 내지 않아도 되는 보험료를 내고 있는 것이다.
이밖에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보험사기로 인한 보험금 누수 규모를 2010년 기준 3조4000억원으로 추정했다. 이를 근거로 다시 계산해 보면 가구당 20만원, 1인당 7만원의 보험료를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보험사기를 줄이기 위해서는 결국 관련법이 강화돼야 한다. “사기는 괜찮아”라는 인식을 “사기는 심각한 범죄행위야”라고 바꾸기 전에는 결코 보험사기가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문가들이 많다.
우리나라에서 보험사기는 일반 형법상 사기죄로 취급한다. 미국이 연방법으로 보험범죄를 별도로 규정해 강하게 제재하는 것과는 강도에 차이가 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처벌이 가벼운 벌금형의 비율은 2007년 28.4%에서 2012년 51.1%로 증가한 반면 그보다 처벌이 무거운 집행유예는 2007년 46.9%에서 2012년 26.3%로, 징역형은 2007년 24.7%에서 2012년 22.6%로 약화되는 추세다.
벌금형의 비중은 증가하는데 평균 벌금액은 2007년 374만원에서 2012년 263만원으로 29.6% 감소했다. 처벌을 강화해야할 상황에 오히려 완화시키고 있으니 자동차보험사기가 줄어들 기미가 없다.
오두환 기자 freeore@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