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군 훈련 ‘예고된 인재’
예비군 훈련 ‘예고된 인재’
  • 오두환 기자
  • 입력 2015-05-18 11:23
  • 승인 2015.05.18 11:23
  • 호수 1098
  • 4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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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군 정예화 비상‘관심병사’ 제대 후에도 관리해야

▲ 뉴시스
[일요서울|오두환 기자] 지난 13일 국방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 40분께 서울 서초구 내곡동 육군 수도방위사령부 예하 52사단 예비군 훈련장에서 영점사격 훈련을 받던 최모(23)씨가 총기를 난사했다. 이 사고로 3명이 사망하고 2명이 크게 다쳤다. 군대도 아니고 예비군 훈련장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은 전 국민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하지만 속속 밝혀진 사건의 진상은 국민들을 또 한 번 허탈하게 만들었다. 바로 모든 것이 ‘예견된 인재’였기 때문이다.

통제 장교 3명·조교 사병 6명 ‘수습’ 대신 ‘대피’
A·B급 관심병사 2만8000명, 관리체계 허점

“GOP때 다 죽여버릴 만큼 더 죽이고 자살할 걸 기회를 놓친 게, 너무 아쉬운 것을 놓친 게 후회된다. 아쉽다. 75발 수류탄 한 정 총 그런 것들이 과거에 했었으면 후회감이 든다. 내일 사격을 한다. 다 죽여버리고 나는 자살하고 싶다.” 
총기난사 사건의 가해자 최씨는 사건직후 현장에서 자살을 선택했다. 위의 인용문은 최씨가 남긴 유서의 일부다. 그는 미리 유서를 남겼을 만큼 이번 사건을 계획적으로 준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육군 중수단
“계획적 범행 결론”

육군 중앙수사단(중수단)은 14일 총기난사 사건에 대한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계획적으로 범행한 것으로 판단한다”며 사전 계획된 범행으로 잠정결론 내렸다.

중앙수사단에 따르면 최씨는 지난달 22일 자신의 친구에게 ‘5월 12일 난 저 세상 사람이야 안녕’이라며 자살을 암시하는 문자메시지 10건을 보냈다. 5월 12일은 이번 동원훈련를 위해 입소한 날이다.

중수단은 최씨가 남긴 유서와 친구에게 보낸 휴대전화 메시지 등이 계획된 범행의 근거로 판단하고 있다. 또 중수단 관계자는 “최씨가 사격장 조교에게 ‘1사로(사격구역)가 잘 맞는다’며 자리를 바꿔달라고 요구했다. 일부 예비군들로부터 이 같은 요구를 들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범행동기에 대해서는 계속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다른 예비군들과의 마찰 여부에 대해서도 조사하고 있지만 특이한 점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상황은
10초 이내 종료”

당시 사고는 순식간에 일어났다. 최씨는 지급받은 K-2 소총과 실탄 10발을 지급받은 뒤 1발을 표적에 쏘고, 갑자기 뒤를 돌아서 대기 중인 다른 예비군을 향해 총격을 가했다.

사건 당시 가장 좌측에 있던 최씨는 사격개시 신호가 떨어지자 자신의 오른쪽인 2, 3, 4 사격구역에 있던 예비군을 향해 7발을 발사했다. 이 가운데 4발이 다른 예비군의 머리와 얼굴 부분에 맞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최씨는 다른 예비군 동료들을 향해 K-2 소총을 단발로 사격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어 조준 사격 가능성을 제기되고 있다.

중수단 관계자는 사건 발생상황에 대해 “가해자가 첫 발을 발사한 뒤 자살할 때까지 8발을 쏘는 동안 10초 이내에 상황이 끝난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그만큼 사건이 순식간에 일어났다.

사건이 순식간에 발생했지만 당시 현장에서는 관리상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격 당시 현장에 있던 통제 장교 3명과 조교 역할을 맡은 사병 6명은 상황을 차단하고 사태를 수습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은 채 대피한 것으로 드러나 큰 논란이 일고 있다. 

 또 총기 안전고리 장치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중수단 관계자는 “조교가 확인하게 돼 있는데, 채우는 건 정확히 못 보고 사고자가 만지작거리는 걸 봤다고 한다”며 “의도적으로 안 채운 것으로 보이고, 총을 거치대에서 이탈시켜서 쐈다”고 설명했다.

이어 “안전고리는 예비군이 채우게 돼 있고, 조교가 반드시 확인해야 하는데, 이 조교는 정확히 확인 안 하고 손으로 만지는 걸 봤기 때문에 채웠구나 한 것”이라며 “최초에 사고자가 안전고리를 걸었다가 풀었는지, 아예 걸지 않은 것인지 확인이 안 된다”고 덧붙였다.

관심병사 범죄자 아냐
제대로 관리해야

사고조사와 함께 가해자인 최씨가 B급 관심병사였던 것이 밝혀져 큰 논란이 일기도 했다. 최씨는 현역 시절에 인성검사를 통해 우울증 증세가 나타나 B급 관심병사로 판정을 받았다. 그 결과 보직을 4번이나 변경했고 부대를 여러 차례 옮긴 것으로 알려졌다.

중수단은 최씨가 입대 전 과다 행동성 상실 장애로 정신과 진료를 받은 기록이 있고, 전역 후에도 적응 장애로 진료를 받은 사실도 확인했다. 결과적으로는 B급 관심병사가 아닌 A급 관심병사로 분류됐어야 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훈련부대는 예비군 훈련에 동원된 신상특이자에 대한 자료를 확인했어야 했으나 살펴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자료는 군에 마련돼 있었는데 훈련 부대는 이를 간과한 것이다. 그 결과 발생해서는 안 되는 총기난사사고가 발생했고 사망자까지 나왔다.

이제라도 국방부는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당초 국방부는 출산율 저하 등으로 병력자원이 줄어들자 예비전력 정예화를 추진해왔고 그 방안으로 예비군 훈련을 강화해왔다. 하지만 정책은 있었지만 시스템에 허점이 노출됐다. 그 결과 아까운 생명이 목숨을 잃고 말았다.

현재 우리나라 군 내부에는 자살 시도 경력이 있거나 성격 결함 등으로 가혹행위를 저지를 위험이 있는 A·B급 관심병사가 2만8000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관심병사는 범죄자가 아니지만 각종 사고 위험이 높은 만큼 제대로 된 관리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번 사고를 포함해 군대에서 발생하는 각종 사고 가해자로 관심병사들이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만큼 관심병사에 대한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증거다. 결국 새로운 보완책이 필요하다. 폐쇄적인 군대 문화 속에서 이들 관심병사들을 얼마나 제대로 관리하느냐는 군인은 물론 국민과 나라의 안전을 위해서도 꼭 필요 한 일이다. 

오두환 기자 freeore@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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