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엽 살해지령 北직파간첩 진짜가 아닐 수도…
황장엽 살해지령 北직파간첩 진짜가 아닐 수도…
  • 윤지환 기자
  • 입력 2010-04-27 09:16
  • 승인 2010.04.27 09:16
  • 호수 835
  • 1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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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필 지금 직파간첩이? 의문 곳곳에서 증폭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를 살해하라는 지령을 받고 북한에서 남파된 간첩 2명이 구속돼 파장이 일고 있는 가운데 허술한 간첩에 대해 여러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이진한 부장검사)와 국가정보원은 북한 정찰총국의 지령을 받고 위장탈북해 국내에서 황 전 비서를 암살하려한 혐의(국가보안법 위반 등)로 김명호(36)와 동명관(36)을 지난 4월 20일 구속했다.

검찰에 따르면 대남 및 해외 공작업무를 담당하는 인민무력부 정찰총국 소속인 이들은 지난해 11월 정찰총국장인 김영철 상장으로부터 ‘황 전 비서를 살해하라’는 지시를 받고 같은 해 12월 중국 옌지를 거쳐 탈북자로 가장해 태국으로 밀입국했다가 강제추방 형식으로 한국에 들어왔다.

김씨 등은 나란히 1992년 9월 인민무력부 정찰국(현 정찰총국) 전투원으로 선발돼 1998년 북한 노동당에 입당했으며 2004년부터는 공작원 신분으로 대남 침투 교육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이들의 진술을 살펴보면 직파간첩이라고 보기에 여러 면에서 허술하다. 정찰총국에서 지시했다는 지령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때문에 이들의 정체에 대한 논란이 분분하다.

이들은 “황씨가 자주 다니는 병원이나 장소, 만나는 사람 등의 동향을 먼저 파악해 보고한 뒤 구체적인 살해 계획을 지시받아 실행하기로 돼 있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인민군 소좌 계급인 이들은 남파를 앞두고 다른 사람으로 신분을 위장했으며 특히 동씨는 황씨의 친척인 것처럼 신분을 속여 “황장엽의 친척이라는 이유로 더 이상 승진하지 못해 남조선행을 택했다”며 거짓으로 탈북 이유를 댔다고 검찰은 전했다.

지난해 11월 말 두만강을 건너 중국 옌지에 도착한 김씨와 동씨는 중국 내 연락책을 통해 탈북 브로커를 소개받아 일반 탈북자들에 섞여 12월 태국행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들은 국내로 들어온 뒤 탈북자 심사 과정에서 꾸며낸 인적사항과 동일한 지역 출신의 탈북자와 대질신문을 받다가 가짜 경력이 모두 탄로 나는 바람에 정체가 드러났다. 계속되는 추궁에 이들은 결국 황 전 비서를 암살하라는 지령을 받고 입국했다는 사실을 털어놨다.

정찰총국은 북한에서 대남 및 해외 공작업무를 해오던 ‘35호실’과 작전부, 정찰국이 지난해 인민무력부 산하로 통합된 확대 기구다. 1990년부터 남북 고위급 회담의 대표로 참석했고 2006∼2007년에는 남북장성급 군사회담의 북측 대표단장이었던 ‘대남통’ 김영철 상장(남측의 중장)이 이 조직의 총국장을 맡고 있다.


어설픈 암살계획 의문

국정원에 따르면 조사과정에서 이들은 기존의 대북 관련 정보와는 일치하지 않는 진술을 했고, 이에 수상한 낌새를 차린 국정원의 집요한 추궁에 자백하게 됐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번 간첩 사건에 의구심을 나타내고 있다. 시기적으로 너무 미묘한 시점에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최근 천안함 사태는 물론, 황씨 살해 지령이 내려졌다는 시점도 지난해 대청해전 직후 북한이 보낸 협박 통지문의 시기(지난해 11월)와 너무 딱 맞아떨어진다는 점에서 “진위를 떠나 매우 공교롭다”는 것이다.

또 북한에서 수년간 훈련받은 암살조가 너무 허술하다는 지적도 있다. 이들의 위장 탈북 및 자백 과정이 실제 암살조의 침투가 맞는지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이들의 활동내용을 들어보면 매우 치밀하고 정교한 스파이 활동과는 거리가 멀다. 더구나 철통같은 경호 속에 묻혀있는 황 전 비서를 암살하려는 이들치고는 어설프기 짝이 없다.

철저한 이념으로 무장한 직파간첩이 자백을 했다는 부분도 그대로 믿기 힘들다. 지금까지 검거되거나 정체를 드러낸 간첩들을 보면 자살하거나 끝까지 입을 다무는 경우가 많았다.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려 한 김신조 일당이나 동해안 침투 무장공비, KAL기 폭파범 김현희 등 암살·테러 지시를 받은 간첩들은 대부분 자살하거나 사살당하는 등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뿐만 아니라 이들의 탈북 경로도 석연치 않다. 이들은 ‘북한 평양→함흥→청진→회령→두만강 도강(渡江)→중국 옌지(延吉)→태국 방콕’이라는 복잡한 과정을 거쳤다. 중국이나 몽골을 통해도 손쉽게 입국이 가능한데도 굳이 동남아를 통해 먼 길을 돌아 국내로 잠입한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특히 태국을 경유하는 탈북자들은 대부분 한국행을 원하고 있다. 따라서 대기 순번이 길기 때문에 국내로 들어오기까지는 통상 1년 이상이 걸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중간 루트로 태국을 택한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또 이들은 지난해 12월 태국으로 건너갔고, 올해 1월 말~2월 초에 입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매우 이례적인 경우로 왜 하필 이들이 그토록 빠르고 손쉽게 남한으로 입국할 수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남한 측의 특별배려가 아니고는 쉽지 않지만 외교부와 국정원은 이에 대해 공식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있다.

또 “목적 달성에 실패할 경우 제3국의 북한대사관으로 탈출해 추가 임무를 기다리라”는 지령을 받았다는 진술도 납득키 힘들다. 항공기나 선박 등을 통해 제3국으로 움직이는 것 보다 남한 내에서 몸을 숨기는 것이 합리적이다. 해외로 움직이려 할 경우 검거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기본도 모르는 간첩

첩보활동을 벌인 부분도 어설프다. 국정원에 따르면 이들은 “우선 황 전 비서의 주거지와 동선 등을 파악해 보고한 뒤, 구체적 살해계획을 지시 받기로 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탈북자 신분으로 감시의 눈초리를 받고 있으면서도 굳이 위험을 감수하며 대북 보고를 여러 차례 했다는 것도 의문으로 남는다. 지금까지 전례로 볼 때 정찰총국에서 이 같이 허술한 지령을 하달했다 보기 힘들다. 이는 북한 전문가들도 같은 견해다.

동씨의 신분세탁도 의심스럽다. ‘황명혁’이라는 이름을 사용한 동씨는 국정원의 초기 심문과정에서 “황장엽의 친척이어서 북한에 남아 있으면 더 진급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사실 황 전 비서의 친인척에 대해 남한 정보당국도 당연히 파악하고 있을 걸로 판단하는 게 상식적인데도 황 전 비서의 친척으로 위장한 것이다. 황 전 비서의 친척으로 위장할 경우 오히려 우리측 정보당국의 주목을 받아 임무수행이 힘들어지는 데도 이 같은 위험을 감수했다는 점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황명혁’이라는 이름이 만들어진 과정 역시 허술하다 못해 엉뚱하기까지 하다. 검찰과 국정원에 따르면 동씨는 애초 실제 황 전 비서의 친척인 ‘황○○’이라는 이름을 쓰려 했으나 여러 문제점이 발견돼 다른 이름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동씨가 이전에 한 차례 썼던 가명 ‘김명혁’과 조합해 ‘황명혁’을 만들어냈다고 동씨는 진술했다. 우리 정보당국이 황 전 비서의 친인적에 대해 소상히 파악하고 있다는 것을 북한이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이렇게 이름을 지었다고 진술하는 동씨의 말을 신뢰하기 힘들다.

검찰과 국정원은 그러나 황 전 비서에 대한 경호를 강화하는 한편 이들이 접촉한 남한 내 활동 간첩에 대해 계속 수사를 벌일 예정이다.

[윤지환 기자] jjh@dailypot.co.kr



#‘암살조’ 6년간 철저한 남파훈련

이번에 검거된 2인조 간첩단은 6년 동안이나 공들여 남파 준비를 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더하고 있다.

지난 4월 21일 검찰과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전날 구속된 김명호씨 등은 나란히 2004년 북한 인민무력부 정찰총국 소속의 대남 공작원으로 선발돼 특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철저한 훈련을 받아왔다.

1992년부터 인민군 전투원으로 활약한 김씨는 2003년 중국 내 정찰 업무를 두 차례나 성공적으로 수행해 이듬해 4월 인민무력부 정찰국(현 정찰총국)으로부터 정식으로 대남 공작원에 임명됐다.

김씨는 평양에서 전문 공작원 교육을 이수한 뒤 2007년 함흥 태생인 또 다른 김씨의 학력, 가족관계 등의 신상명세를 외우고 그의 주소지를 현지 답사하는 등 신분을 위장했다.

함께 위장 탈북한 동씨도 1992년 전투원으로 군 경력을 시작해 2004년 12월 정찰국 산하 대남 공작부서인 717부 공작원에 선발됐다. 동씨는 해외 위장침투를 위해 영어권 국가에서 활동한 경력의 지도원 김모씨에게서 국내에서 발간된 영어 교재로 영어회화 수업을 수강하고 북한의 정치사상 교육도 받았다.

이들은 중국과의 국경을 넘기 위한 도강 경로를 탐색하는 등 각종 침투 훈련을 받은 것은 물론 거점 마련 방법과 고정 간첩망과의 접선 방법을 숙지하는 등 임무 수행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과정에서 동씨는 다른 사람의 명의로 된 위장여권을 소지하고 지난해 5월 중국 지린성에 잠입한 적이 있으며, 북한으로 돌아온 뒤에는 황 전 비서의 친척으로 신분을 위장했다고 검찰은 전했다.

그러나 이들은 한국에 들어오자마자 탈북자 심사 및 수용시설에서 학력과 경력, 탈북 경위 등의 진술에 의심을 품은 신문관의 집중 추궁과 위장한 인적사항과 동일한 지역 출신 탈북자와의 대질신문에 꼬리가 밟히고 말았다.

윤지환 기자 jjh@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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