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기업 사정수사 확대 가능성 커 긴장
논란 시작된 자원외교 사안은 주춤
‘성완종 리스트’로 인한 정치계의 논란이 커져가는 가운데 재계에 부는 후폭풍도 만만치 않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언급한 인물들이 실제로 금품수수를 받았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다른 기업으로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우선 신한은행은 경남기업 워크아웃 특혜 의혹에 대한 수사를 받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경남기업의 주채권은행인 신한은행과 한국수출입은행의 전직 부행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 조사했다.
검찰은 경남기업 3차 워크아웃 승인 과정에 특혜가 있었는지, 김진수 전 금융감독원 부원장보 등 금감원 간부들의 외압이 있었는지 등을 조사했다. 김 전 부원장보는 경남기업을 실사한 회계 법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000억 원을 경남기업에 지원하도록 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경남기업과는 별개로 검찰수사 선상에 오른 기업들도 긴장하는 분위기다. 검찰 내부에 생긴 수사 경쟁 체제로 인해 대기업 사정수사가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다. 이 같은 분위기는 2013년 4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폐지된 뒤 서울 중앙지검의 여러 부서가 대형 특수 수사를 나눠 맡으면서 생긴 것으로 보인다.
현재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기업은 두산, 동국제강, SK건설, 포스코 등 10여 곳에 이른다.
우선 두산그룹은 중앙대학교(이하 중앙대)와 관련된 특혜 의혹으로 수사를 받고 있다. 박범훈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이 중앙대 관련 민원을 들어주고, 두산 측으로부터 각종 특혜를 받았다는 내용이다.
또 박용성 전 두산중공업 회장은 중앙대 이사장 자리에서 중앙대 대학 구조조정을 진행하다 막말 논란 등을 빚기도 했다. 박용성 전 두산중공업 회장은 이를 계기로 이사장직을 비롯해 두산중공업 회장직에서도 물러났다.
이 같은 상황은 중공업과 건설기계 등 주력 사업에서 부진을 겪고 있는 두산그룹에게는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박용성 전 두산중공업 회장이 논란과 동시에 보직에서 물러난 것도 회사 전반에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한 결정이란 시선도 있다.
포스코도 몸을 움츠리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가 포스코건설 지분 1조 원 규모를 매입하기로 한 계약이 미뤄지는 등 검찰 수사 확대에 대한 우려가 깊은 모양새다. 검찰은 포스코건설의 베트남 비자금 의혹, 포스코와 협력사 코스틸 간의 불법거래 의혹, 성진지오텍(현 포스코플랜텍) 특혜 인수 의혹 등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대선 불법자금
불똥 어디로
동국제강은 장세주 회장이 회삿돈 200억 원을 빼돌려 미국 라스베이거스 등에서 상습적으로 도박을 한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장 회장은 거래대금 부풀리기, 불법 무자료 거래, 허위직원 등재로 급여 빼돌리기 등의 수법으로 회삿돈을 횡령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장 회장은 성완종 리스트 파문 이후 첫 기업 총수 구속이란 점에서 재계의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데 일조했다. 장 회장의 경우로 보아 ‘검찰 소환은 곧 구속’이란 공식이 성립되갈 것 아닌가 하는 시선이다.
이 때문에 재계에 부는 찬바람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현재 검찰 수사 대상으로 거론되는 롯데, SK, 동부 등을 비롯해 구속집행이 정지돼 있는 이재현 CJ 회장, 강덕수 전 STX 회장, 현재현 전 동양그룹 회장 등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반면 자원외교 비리수사는 다소 조용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자원외교 비리 수사가 성완종 전 회장과 관련된 논란의 시작 지점이지만, 성 전 회장의 죽음 후 정치적인 이슈가 커진 탓이다.
검찰은 재정상태가 좋지 않은 경남기업이 성공불융자를 받은 것을 바탕으로 자원외교비리 수사를 시작했다. 성공불융자는 기업이 국외 자원개발 사업에 실패했을 때 정부가 융자금 전액, 혹은 일부를 감면해주고 성공했을 경우에는 융자금보다 많은 금액을 갚도록 하는 제도다.
하지만 성 전 회장의 죽음으로 세간의 시선은 성완종 리스트와 관련된 정치적 이슈에 몰렸고, 자원외교 수사 진행은 주춤하게 됐다. 이 모든 논란이 시작된 시발점이지만 정작 자원외교 수사와 관계된 이들은 한 숨 돌릴 수 있는 상황이 된 셈이다.
검찰은 “자원외교 비리수사를 계속 하겠다”며 성완종 리스트 수사와 경남기업의 해외 자원개발 비리 수사를 동시에 별도로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검찰은 경남기업이 2006년부터 2013년까지 9500억 원대의 분식회계를 꾸민 혐의와 금융사로부터 800억 원대를 지원받은 혐의를 차질 없이 수사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자원외교 비리수사가 실패했다는 얘기가 거론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한편, 검찰의 자원외교 수사 과정에서 수억 원의 현금이 집중적으로 빠져나간 것이 확인돼 자원외교 수사에서 시작된 논란은 대선 불법자금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검찰은 “지난 대선을 앞두고 빠져나간 32억 원의 사용처가 불분명하다”며 수사 계획을 밝혀 대선자금으로 인한 또 다른 불똥이 재계에 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박시은 기자 seun897@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