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정 기자의 현장르포[3] 수원역 앞 집창촌
김수정 기자의 현장르포[3] 수원역 앞 집창촌
  • 김수정 기자
  • 입력 2010-04-20 10:13
  • 승인 2010.04.20 10:13
  • 호수 834
  • 1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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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춘여성들의 ‘눈물젖은 애환’ “우리도 결혼해 잘 살고 싶죠”

수원역 뒷골목은 각종 불법 성매매 업소들이 뒤엉켜 있다. 과거 대표적 유흥가였던 집장촌은 화려한 네온사인에 떠밀려 뒷골목에서 간신히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내국인 손님만큼 인근 안산, 평택에서 일하는 외국 노동자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 한마디로 외국인 노동자들의 성 해방구이다. 지난 2008년에 경찰의 대대적인 집창촌 단속이 이뤄졌다. 그러나 여전히 홍등은 꺼지지 않고 있다. 현재 이곳은 도시 정화 차원의 재개발이 추진되고 있다. 조만간 철거될 것으로 보인다. 집창촌 사람들의 ‘생존권’ 이 걸린 만큼 무작정 철거를 진행할 수 도 없는 실정이다. 70년대 집장촌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수원 집창촌 사람들의 오늘을 따라가 보자.

지난 3월 31일 오후 4시 50분. 서울에서 한 시간 정도 지하철을 타고 수원역에 도착했다. 소생하는 봄의 기운처럼 수원역에는 수많은 인파로 북적였다.

수원역 내부에 굽이굽이 늘어져있는 지하도로를 따라 3번 출구로 나오자 불과 50미터 옆 번화가와 달리 한산하고 허름한 상점들이 있다. 각종 성인용품 가게를 비롯해 쪽방 여관, 성인용 콜라텍이 즐비한 골목을 따라 들어가면 거대한 집창촌 구역이 나타난다.

골목 안에는 군데군데 ‘청소년보호구역’ 간판이 보였다. 수원역 집창촌은 일종의 마을과도 같다. 집창촌 한 가운데를 중심으로 메인 도로가 횡단으로 나뉘어져 있고, 그 사이사이 좁은 골목마다 작은 업소들이 촘촘히 박혀있다.

아직 날이 밝았던 탓에 자세히 집창촌 주변을 볼 수 있었다. 흡사 70년대 거리를 연상시키는 집창촌 거리에는 지금은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양화점, 이발소, 에로극장 등이 있다. 또 다른 골목엔 중국, 베트남 상점들이 끝도 없이 이어져 있다. 한문으로 된 간판들이 많다. 이는 이곳이 외국인 노동자들의 밀집 지역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룻밤 쾌락 좇는 남성들의 놀이터

수원역 집창촌의 하루는 일찍 시작됐다. 오후 5시부터 하나 둘 가게 문을 열고 홀복(집창촌 업소용 의상)을 입은 여성들이 하나 둘 나타났다. 거리에는 후줄근한 티셔츠를 입은 채 초점 없는 시선으로 걷는 노인들과 업소 주인, 젊은 남성들이 주변을 배회하고 있다.

집창촌 여성들의 경우 하나같이 긴 스커트나 긴 바지를 입는다. 20cm가 넘는 높은 구두를 신는 것도 모두 똑같다. 이것이 수원 집창촌의 ‘의상 룰’이라고 한다. 노골적으로 벗는 의상보다는 묘하게 가리는 의상이 단속하는 사람들 눈에도 주의를 덜 받을 것 같다는 판단아래 긴 하의를 고수하고 있다. 또 롱다리로 보여 섹시함을 드러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오후 7시가 지나서야 해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유리창 너머로 붉은 홍등 불빛이 거리로 새어나오며 집장촌의 밤을 밝혔다.

아직 때 이른 초저녁 시간인데도 집창촌을 찾는 남성 손님들의 모습이 간간히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들은 먹이를 노리는 늑대처럼 주변을 배회, 여성들을 흘낏 쳐다보며 헌팅을 했다. 그때마다 여기저기서 유리창 넘어 늘씬한 성매매 여성들이 “오빠 멋있다. 오늘도 안 놀고 갈거야?”라며 교태 섞인 말투로 손님을 유혹한다. 그렇게 수원역의 긴 밤이 시작됐다.

수원역은 다른 지역과 달리 내국인과 외국인 업소가 나눠져 있다.

내·외국인 업소는 라인이 그려져 있다. 도로를 중심으로 앞쪽은 내국인이, 좁은 뒷골목은 외국인이 이용하는 업소로 나눠져 있다. 내국인 이용 업소는 2~30대 한국 여성이, 외국인 이용 업소는 일부 조선족 및 4~50대 여성들이 성매매를 하고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가격에서도 차별화됐다. 내국인 이용 업소는 숏 타임에 7만 원. 주로 외국인 노동자들이 찾는 업소는 3만 원선이다.


집창촌 골목마다 가격도 사연도 천차만별

외국인이 이용하는 뒷골목을 찾아가봤다. 가게 문은 대부분 닫혀 있었다. 평일엔 이곳을 찾는 외국인이 없어 낮이나 주말에만 문을 열기 때문이다. 이날은 여느 평일날보다 더욱 한가했다. 낮에 불법 매춘을 하는 외국여성들에 대해 경찰의 단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간간히 문을 연 업소 유리창 너머로 화장을 짙게 한 여성들이 눈에 띠었다. 화장으로 나이를 숨겼으나 주름마저 숨길 수 없었다. 나이는 족히 50은 돼 보였다.

인근에서 상점을 운영하는 A씨는 “낮에 경찰이 불법 매춘하는 여성들을 단속했다. 그래서 조선족이나 동남아 여성들은 숨었다. 여기를 찾는 대부분은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요즘엔 단속과 경기불황으로 손님이 뜸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여기 아가씨들 모두 사연 없는 사람이 없다. 젊은 한국여자는 찾아보기 힘들다. 대부분 4~50대가 넘었다. 일부는 주부도 있고, 퇴물 매춘여성이 대부분이다. 매춘으로 돈 벌고 여기를 떠나 남성을 만나 결혼하고 아이까지 낳았다가 다시 찾아오는 여성도 부지기수이다. 살기위해 나이를 먹었어도 매춘을 하는 여성들을 보면 마음이 씁쓸하다”고 말했다.

이곳을 이용하는 남성들은 인근 평택, 안산 등에서 일하는 인도네시아, 베트남, 중국인 등 외국인 노동자들이 대부분인 것으로 알려졌다.


“살려면 계속 일할 수밖에”

기자는 외국인을 전용으로 받는 3만 원 라인을 벗어나 도로 앞으로 나왔다. 이곳은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길게 늘어선 길가 유리창 너머로 반라의 2~30대 여성들이 남성들을 유혹하고 있다. 그녀들은 지나가는 남성들에게 한 마디씩 거든다.

“오빠 시간 없어요? 놀다가. 오늘도 그냥가면 섭섭하잖아”라며 능숙한 말솜씨로 손님을 상대한다. 남성들은 자신이 원하는 타입의 여자를 찾아 유리창 안쪽을 들여다보다가 마음에 드는 여성이 없자 그냥 갔다.

두 명의 외국인이 나타났다. 유럽인으로 보이는 두 젊은 남성은 술이 만취해 집창촌 주변을 계속해서 맴돌고 있다. 그들은 집창촌 여성들 바로 앞에서 손가락질을 해대며 영어로 온갖 저질스러운 말들을 내뱉었다.

기자는 한 여성을 만날 수 있었다. 30대 후반의 B씨이다. 수원역 집장촌의 큰 언니 겪인 그녀는 17살 때부터 20년 동안 매춘을 했다고 했다. 현재는 매춘을 하지 않고 호객행위를 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그는 “삼촌(업주)이 워낙 잘 보살펴 주셔서 이곳에 종종 와 일을 돕는다”며 “돈이 많이 모이면 작은 카페를 갖고 싶다”고 말했다.

빨간 립스틱이 유독 강렬했던 B씨는 오랜 경력만큼 인터뷰도 능숙하게 피해나갔다. 모든 질문에 물 흐르듯 넘어가던 그였기에 형식적인 질문과 대답만이 오고갈 뿐이었다. 그러나 그에게도 ‘결혼’문제 만큼은 제법 진지한 대화가 오고 갔다.

B씨는 “저도 결혼해야죠. 좋은 사람 만나고 싶고, 잘 살고 싶죠”라며 “가끔 언니들 중에 남자 잘 만나서 팔자 고친 언니들도 많아요. 물론 이 일은 철저히 숨기겠죠”라고 말끝을 흐렸다. 그의 말에 따르면 성매매 여성 대부분이 결혼에 실패하는 일이 많다고 한다. 그 중에는 남편에게 과거사를 들켜 상처받고 헤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그녀는 “그나마 요새 아가씨들은 배운 것도 많고 해서 이거 말고도 할 건 많아요”라며 “그래도 다들 돈이 정말 필요해서 오는 거니까 절박하긴 매한가지죠”라고 말했다.

짧은 인터뷰를 마치고, 그는 다시 손님을 호객하러 밖으로 나갔다. 업소의 구조는 미아리와 다를 바 없다. 유리창 너머 거실이 있고, 여기에 아가씨들이 앉아 있거나 창밖을 보며 남성들을 호객한다. 그리고 커텐을 열고 방안으로 들어가면 좁다란 복도가 길게 늘어서 있다. 붉은색 등이 켜 있다. 그리고 양 옆으로 쪽방들이 여러 개 있다. 이것이 집장촌 풍경이다. 어디선가 “영자야”라고 부르면, 80년대 소설‘어둠의 자식들’의 영자가 달려올 것 같다.

집장촌 여성들은 일반인과 마찬가지로 출퇴근하고 있다. 대부분 오후 5시에 출근해서 다음날 아침 7시에 집에 돌아간다. 이들이 하룻밤에 주말엔 10여명, 평일엔 4~5명의 남성에게 성을 팔고 있다. 화대의 50%씩 업주와 여성이 나눈다. 잘나가는 에이스급 여성이 한 달에 500~600만 원 이상의 수입을 얻고 있으며, 일반적으로 보통 300~400만 원을 벌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외국인 업소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수입은 훨씬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 달에 50~150만 원을 버는 것으로 알려졌다.

매춘은 지구 역사상 가장 오래된 직업이다. 하지만 경기가 나빠지면서 매춘산업에도 불황이 시작됐다.

18년간 ‘홀복’을 팔았던 집장촌의 터줏대감인 C(여·50)는 불황을 하소연한다.


집장촌 불황의 연속

C씨는 “갈수록 장사가 안돼서 큰일났다”며 “그나마 아가씨들도 힘드니까 외상값도 잘 안 갚아 힘들다”고 토로했다.

대개 홀복은 외상으로 구입하는 것이 관행이다. 문제는 장사가 되지 않으니 아가씨들 역시 옷을 구입하는 일도 줄 뿐만 아니라, 외상도 못 갚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 특히 그 중에는 ‘탕’치고 사라지는 여성들도 많아 고민은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했다.

정부의 ‘성매매단속법’이 시행된 뒤, 집장촌들은 사라지고 있다. 대신 불법 매춘업소가 주택가, 오피스텔 등으로 파고들고 있다. 이 때문에 집장촌을 찾는 사람들도 줄어들고, 자연스럽게 집장촌은 폐허화되고 있다.

밤이 깊어갈수록 하룻밤 연애를 하려는 사람들이 불나방처럼 찾아들면서, 수원역 집창촌은 다시 활기를 찾는다. 그러나 아침 태양이 뜨면 집장촌의 밤은 사라지고 말 것이다.

[김수정 기자] hohokim@dailypot.co.kr


#수원한터 오하근 대표 인터뷰

“정부의 성매매단속법이 오히려 불법 성매매 부추긴다”

집장촌 여성의 권익을 위해 한터가 설립되어, 성매매 여성들의 자활을 돕고 있다. 수원 한터의 오하근 대표도 수원역 앞에 업소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여성들의 자립 및 권익을 위해 일하고 있다. 그와 만나 집장촌 여성들의 삶과 애환을 들어봤다.

- 현재 수원 집창촌 상황은 어떤가.
▲이제 수원에 남은 집창촌 업소는 54군데다. 장사가 안돼서 아가씨들도 30%이상 이곳을 떠났다. 여기 남은 사람들은 다 빚만 남은 영세민이다. 또한 아가씨들도 사연이 많은 사람들만 남았다. 아가씨들은 자유롭게 출퇴근하며 생활한다. 그리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 이것이 요즘 집장촌 문화이다.

- 경찰 단속은 어느 정도 이뤄지나.
▲일부 돈을 안내려는 손님들이 신고하지 않으면 일일이 단속하지는 않고 있다. 문제는 되레 집창촌이 사라지면서 불법 성매매 업소들이 더 생겨나고 또 단속도 되지 않아 우리 집창촌 사람들만 더 힘들어졌다.

- 재개발로 철거가 된다면 계획은.
▲솔직히 원만한 보상이 이뤄지면 큰 저항 없이 받아들이고 싶은 심정이다. 그러나 과연 보상이 될 지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보상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2008년과 같은 폭동사태가 또 벌어질지 모르겠다. 정부와 개발업자는 원만한 보상을 통해 집장촌 사람들이 다른 곳에 옮겨가서 살 수 있도록 최소한의 생존권을 보장했으면 한다.

김수정 기자 hohokim@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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