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옹 그리고 50년> 작가 김영무 인터뷰
<포옹 그리고 50년> 작가 김영무 인터뷰
  • 우선미 기자
  • 입력 2010-04-12 15:24
  • 승인 2010.04.12 15:24
  • 호수 833
  • 5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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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속에 그리움의 미학 담아”
작가 김영무 photo@dailypot.co.kr

극단 춘추는 100회 정기 공연 기념으로 <포옹 그리고 50년>이라는 작품을 무대 위에 올렸다. 의미 깊은 공연이니만큼 작품 선택에도 신중했을 터. 고르고 고른 작품이 바로 김영무 작가의 <포옹 그리고 50년>이다.‘리얼리즘’을 가득 내포한 이 작품을 보고 나온 관객들은 하나같이 “작품 속 주인공이 정말 ‘분단의 아픔’을 느껴본 실존 인물같다”며 작가에 대해 궁금해 했다. 이에 [일요서울]이 작품의 작가 김영무씨를 대학로 예술극장에서 만나봤다. 그는 한국희곡협회 회장을 역임하고 있는, 한국 희곡의 산 증인이자 대선배이다.

- 작품 속에 ‘분단의 아픔’이 잘 녹아있는데, 개인적인 경험이 담긴 것인가.
▲ 그렇다. 나는 6·25를 몸으로 경험했다. 내 고향은 낙동강 외산철교에서 60리 정도 떨어진 칠곡 북산면이다. 6·25당시 포로수용소에 있었다. 때문에 어린 시절의 이런 기억들이 나의 작품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1969년에 발표한 데뷔작 <쫓겨난 사람>은 화전민 부락 이야기이고, 그 후 발표한 <낙동강 우화>는 6·25사변시 인민군 대위와 남쪽 여인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의 고뇌를 그린 스토리이다. <우리 가족사진 이야기>와 이번 막을 올린 <포옹 그리고 50년>에도 이런 나의 어린 시절의 경험이 영향을 끼쳤다.

- 이번 작품의 모티브는 과거의 기억 말고도 어디서 얻었나.
▲ <포옹 그리고 50년>은 사실 몇 년 전에 이미 완성됐다. 그 당시 남성 탈북자가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언론에 공개한 것을 보고 모티브를 얻었다. 그 분은 “북한에 있을 때 얻었던 아내는 남편이 남쪽을 너무 사랑한다고 생각해 외로워하다 죽었다. 남쪽으로 내려와서 얻은 아내는 자신이 북쪽 아내를 너무 그리워한다고 생각해 우울증에 걸렸다”고 털어놨다. 어느 쪽에도 몸 담을 곳 없는 탈북자의 ‘신세타령’이 내 가슴에 크게 와 닿았다.

- ‘연극’이라는 장르가 가지는 한계성 때문에 힘든 점은 없나.
▲ 당연히 있다. 전쟁 스토리 연극은 스포츠화 되거나 반전사상 혹은 휴면 스토리로 가는 게 다이다. <포옹 그리고 50년>은 100% 심리극이다. 하루의 시간을 one set 안에서 그것도 40년간 ‘묻어뒀던’ 주인공의 추억과 심리를 드러내야 하는 것이다. TV나 영화와 달리 한정된 공간에서 연기하기 때문에 공연진의 연기력도 여실히 드러난다. 100% 대사 중심극이다. 반면, 이런 어려움들이 연극(희곡)을 ‘그 자체가 예술’인 장르로 만드는 것이다.

- 텔레비젼 드라마를 안 쓰는 이유도 이와 관련있나.
▲ 관련 있다. TV는 희곡보다 예술성이 떨어지고, 무엇보다도 드라마를 쓰면 거기에 올인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 연극을 못한다. 드라마나 영화는 흥행 위주이기 때문에 작가의 표현성이 위축될 수 있고, 관객들과의 접근성이 떨어지기에 피드백(FEED BACK)을 받기도 어렵다. 반면 희곡은 작가의 가장 자유로운 표현 방식이다. 더군다나 희곡은 못 다루는 소재도 없다. 여기에 철학성도 가미된다면 금상첨화이다.

- 출연진들이 쟁쟁하다.
▲ 연출을 맡은 문고헌 씨는 특히나 캐스팅에 신경을 많이 쓴다. 이번 작품에는 중년 연기파 배우인 정진씨, 서권순씨, 최종원씨가 출연한다. 작년 속초에서 연출가와 내가 함께 캐스팅 작업을 했다. 정진씨는 영화가 2개나 걸려있는 상황임에도 캐스팅에 응했고, 최종원씨는 태백시장에 출마하라는 권유를 뿌리치고 나왔다. 서권순씨는 15명의 여배우를 섭외하는 우여곡절 끝에 최종적으로 선발됐다. 이 분들께 고맙고 다른 직원들도 너무 고맙다. 음악가 한철씨는 열성으로 돕고 있고, 의상 담당인 이규태씨는 거의 무료 봉사하는 수준이다.

- 소재는 일상에서 찾나.
▲ 대중없다. 어떤 때는 길을 가다 소재가 떠올라 손벽을 치기도 했고, 어떤 때는 몇 날 몇 일을 고민해도 떠오르지 않을 때가 있다. 이런 소재는 다시 엄선돼 공연의 요소가 되기도 하고 버려지기도 한다.

- 특히나 애착가는 작품은.
▲ 희곡은 한 작품 한 작품이 전쟁이다. <탈속> <오토바이 오피스> <푸른 하늘> 그리고 이번 작품에도 애착이 간다. 평양가서도 공연한 오페라 작품은 많은 노력을 쏟았는데도 실패해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이 작품의 연출은 광영근씨가 맡았었는데, 일이 틀어지려고 했는지 그 당시 암수술을 받아 진행이 수월치 않았다. 안타까웠다.

- 속세로 들어간 적도 있다고 들었다. 삶 자체가 변화무쌍한데.
▲ 속세를 들어갔다 나오길 반복했다. 나의 삶은 그 자체가 ‘자유’다. 그리고 정신적 방황의 연속이기도 했다. 종교적인 ‘틀과 기준’은 나에게 없다. 종교 이념을 가지면 그것에 얽매여 사고가 한정된다. 나는 불교 방송에 출연하시는 스님과 40년지기며, BTN에서 대담 프로그램을 6개월간 진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기독교 방송 라디오국에 20년 동안 있기도 했다.

- 유교를 중심으로, 동양철학에도 조예가 깊으신데.
▲ 외관 칠곡군은 보수적이며 동양철학 많이 하기로 유명한 곳이다. 유교도 불교 등과 마찬가지로 우리 생활의 일부분이다. 오랜 역사를 우리와 함께 했으니 당연한 것 아닌가. 그렇기에 ‘한국인의 삶’을 이해하려면 유교도 알아야 한다. 난 ‘우리 것’에 대한 애착이 높다.

- 공연 후 활동 계획은.
▲ 6월에 <이언찬 의병장> 이야기를 연극으로 올릴 것이다. 11월에는 김천에서 <사모 바위> 희곡을 쓸 계획이다. 김천에 문화공연장 만들기 위해 위원회도 설립한다. 그리고 유교학을 담은 <군자론> 등의 책을 집필할 것이다.

- 희곡협회 회장이신데, 후배 작가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 공부 좀 열심히 하라고 말하고 싶다. 요즘 젊은 작가들은 연극을 너무 쉽게 생각한다. 방송과 달리 희곡은 많은 것이 함축적으로 드러나야 해서 많은 것을 알아야 한다. 나는 아직도 책을 많이 읽는다.

[우선미 기자] wihtsm@dailypot.co.kr


#김영무

1943년 경북 칠곡 태생. 6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희곡)로 문단에 나와, 그간 한국희곡문학상(85), 행원문학상(02), 한국문학대상(03)등을 수상했다. <구름가고 푸른하늘><하늘천따지><황진이><광개토호태왕> 등 공연으로 발표된 작품은 총 28편이다. 저서로는 희곡집<달은 달>, <퇴계 선생 상소문><보물찾기>등과 <드라마의 본질의 이해>라는 이론서가 있다. 또한 사상 교양서<반야심경으로 보는 불교사상><21세기군자만나기><장자미학만나기>등이 있다. 현대 한국문인협회 희곡분과 회장이다.

우선미 기자 wihtsm@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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