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보트피플’ 참사에 EU 대책 급하다
유럽 ‘보트피플’ 참사에 EU 대책 급하다
  • 송철복 수석 편집위원
  • 입력 2015-05-11 11:34
  • 승인 2015.05.11 11:34
  • 호수 1097
  • 61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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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시스>

터키·리비아 통해 그리스·이탈리아 상륙 시도
지구촌 난민 갈수록 급증… 결국 돈 더 쏟아야

[일요서울 | 송철복 수석 편집위원] 더 나은 삶을 찾아 아프리카 해안에서 배를 타고 유럽으로 건너가던 사람들이 지중해에서 선박 전복으로 떼죽음하는 일이 갈수록 늘고 있다.

지난 4월 19일(현지시간) 난민 700여명(일부에서는 최대 950명이라고 주장)을 태우고 리비아를 떠나 이탈리아로 가던 난민 밀수선이 이탈리아 남부 람페두사 섬 남쪽 210㎞ 지점, 리비아 해안 북쪽 27㎞ 지점에서 전복돼 수백 명이 사망했다. 이보다 6일 전인 13일에는 리비아 북부 해안에서 400여명의 난민이 익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전복 사고가 일어났다.

아프리카를 출발해 지중해를 거쳐 사람을 유럽 땅에 불법 입국시키는 이른바 ‘사람 밀수’는 해묵은 현상이
다. 그런데 이런 사람 밀수가 지난 여러 해에 걸쳐 엄청나게 그 규모가 커졌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수백명 사망 사고 잇따라

시리아 내전은 대규모 사람 이동을 초래했다. 시리아 내전은 2011년 3월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의 장기 독재와 폭정에 항거해 봉기한 민중과 반군 세력을 정부군이 무자비하게 진압하며 시작됐다. 유엔에 따르면 내전 발발 뒤 시리아 인구 2300만 명 중 근 절반인 1100만 명이 집을 잃었다. 이 가운데 400만 명은 시리아를 버리고 인근 레바논·요르단·이라크·터키·이집트, 그리고 멀게는 리비아·수단 등으로 뿔뿔이 흩어져 비참한 난민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비단 시리아 난민뿐만 아니라 아프가니스탄과 남아시아 각지 등에서 유럽 진출을 꾀하는 난민들은 주로 터키와 리비아를 통해 유럽 상륙을 시도한다. 터키를 통해서는 그리스로 간다. 리비아는 아프리카에 머무는 난민들이 이탈리아 행 배를 타기 위해 집결하는 곳이다. 터키는 그리스와 가까워서, 리비아는 유럽과 멀지만 치안이 느슨해 사람 밀수꾼들이 선호한다.

유엔 통계에 따르면 2014년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간 이주자는 모두 21만 9000명이다. 이는 2013년의 4배다. 물론 이 수치에는 합법적 이주자도 포함돼 있다.

문제는 유럽으로 가려고 배를 타고 지중해를 건너다 떼죽음을 당하는 사람이 갈수록 늘어난다는 것이다. 이탈리아 정부 통계에 따르면 올해 들어 4월 19일까지 바다를 통해 이탈리아에 불법 입국한 사람은 2만3556명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는 2만800명이었다. 불법 입국자 수 자체는 크게 증가하지 않았다. 그런데 바다에서 목숨을 잃는 이주자 수는 폭증했다. 4월 19일의 대형 참사를 빼고 계산하더라도 올해 들어 4월말까지 바다에서 사망한 이주 시도자는 954명이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의 사망자 96명의 근 10배다.

그렇다면 왜 이토록 사망자가 급증했을까. 한마디로 조난자 구조 노력이 느슨해졌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정부는 람페두사 섬 인근에서 366명의 난민이 사망한 사건 직후인 2013년 10월 야심적인 수색 및 구조작전 ‘마레 노스트룸(‘우리 바다’라는 뜻의 라틴어로 지중해를 가리킴)’ 프로그램을 가동해 적극적으로 지중해 난민 구조 활동을 펼쳤다. 매일 군함, 헬리콥터 등을 동원해 난민이 발견되면 즉시 구조했다. 이탈리아 해군에 따르면 이 작전으로 난민 15만 명 이상을 구조했고 난민 밀수꾼 330명을 검거했다.

하지만 엔리코 레타 정부에 의해 시작되었던 마레 노스트룸은 실시 1년 만에 후속 좌·우 연립정부의 내무장관 안젤리노 알파노에 의해 폐지되고 말았다. 보수주의 ‘신중앙우파’ 정당을 이끌고 있는 알파노는 다른 이탈리아 우파 정당들이 마레 노스트룸에 한사코 반대하는 바람에 고민하던 중 마침내 작전 중단 결정을 내렸다. 마레 노스트룸 폐지를 주장하며 알파노를 압박한 우파 정당들은 “마레 노스트룸으로 인해 이탈리아 해군이 사람 밀수꾼들의 사업을 도와주는 효과를 내고 있다”고 불평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 밀수꾼들은 그들이 태우고 온 난민들을 굳이 해안에 상륙시킬 필요 없이 단지 해상에 내팽개치기만 하면 됐다. 그러면 이탈리아 해군이 난민들을 구조해 가기 때문이다.

알파노 장관이 마레 노스트룸을 아예 포기하려 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이 작전을 유럽연합(EU)에 떠넘기려 했지만 실패했다. EU의 최고 부자나라인 독일을 중심으로 EU 내에서 “마레 노스트룸 때문에 오히려 북아프리카인들이 마음 놓고 난민선에 오르고 있다”며 회의론을 폈기 때문이다. 마레 노스트룸은 결국 지난해 10월 종료됐다.

그러자 궁여지책으로 지난해 11월 유럽국경감시기구인 프론텍스(Frontex)가 이탈리아의 뒤를 이어 ‘트리톤(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바다의 신) 작전’을 가동했지만 트리톤 예산은 마레 노스트룸의 3분의 1인 하루 10만 유로에 불과했다. 게다가 전용 구조선조차 없어 구조 활동 반경이 이탈리아 해안으로부터 30마일 이내로 대폭 축소돼 사실상 별 효용이 없게 됐다. 대다수 난민선은 바다 한가운데에서 침몰하기 때문이다.

‘트리톤 작전’도 효과 없어

지중해를 가로질러 이탈리아 행을 시도하는 사람의 수가 여전하다는 사실은, 지중해 횡단이 갈수록 더 위험해질지라도 난민들이 계속 밀수선을 타리라는 것을 강하게 시사한다.

4월 19일의 대형참사 당시 마레 노스트룸이 가동되었더라면 사람을 더 많이 구할 수 있었으리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이탈리아 해군이 사고 해역에 있었더라도 일어날 사고는 일어나고 말았으리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지중해에서 목숨을 잃는 사람의 수가 지난 1년 사이 근 10배나 폭증한 것을 보면 마레 노스트룸이 트리톤으로 축소되면서 난민의 지중해 통과가 더 위험해졌고, 이 때문에 무고한 생명이 더 많이 희생된 것은 분명하다. 참사 다음날인 4월 20일 이탈리아 해안경비사령관 펠리치오 안그리사노 해군중장은 “최근의 이 떼죽음이 국제사회의 양심을 일깨우기를 바랄 뿐”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난민 수용정책은 EU 회원국마다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안그리사노 제독의 탄식은 불법이든 합법이든 지중해를 건너다 떼죽음을 당하는 사람의 수를 가능한 한 줄이자는 것이다. 그러자면 마레 노스트룸에서 트리톤으로 쪼그라든 해상 구조작전을 내실화하는 조처가 필요하고, 이에는 당연히 돈이 든다. 지중해 참사를 최소화하기 위해 EU가 인도적 차원에서 어떤 구체적 정책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scottnearing@ilyoseoul.co.kr 

송철복 수석 편집위원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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