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류제성 언론인]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4·29 재보선에서 참패한 뒤 처음으로 5월 4일 광주를 찾았다. 광주 서구을에 공천한 새정치연합 조영택 후보를 지원하기 위해 7차례나 현장을 찾았지만 무소속 천정배 후보에게 참패한 데 따른 반성의 마음을 전하려는 방문이었다.
그러나 광주공항에 도착한 문 대표를 맞이한 건 30여명의 항의 시위대였다. 이들은 ‘문재인은 더 이상 호남 민심을 우롱하지 말라’, ‘호남이 봉이냐’, ‘호남을 우습게 보지 말라’는 등의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를 벌였다.
귀빈실을 통해 공항을 빠져 나온 문 대표는 “호남에서 그동안 누려왔던 일체의 기득권을 다 내려놓는 그런 심정으로 당을 뼛속부터, 뿌리부터 환골탈태하는 완전히 새롭게 창당하는 그런 각오로 완전히 새롭게 가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문 대표에게 이번 광주 선거 패배는 뼈아프다. 문 대표의 정치적 자산인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당선시키고 지난 2012년 대선 때도 전폭적인 지지를 보였던 호남 민심이 돌아섰기 때문이다.
광주 유권자들은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에게 95.17%,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에게 91.97%의 몰표를 몰아줬다. 하지만 이번 광주 선거에선 사실상 문 대표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다.
광주가 ‘문재인 카드’를 포기한 것일까. 광주 지역의 한 언론인은 일단 ‘포기’가 아닌 ‘유보’라고 강조했다. 그는 “야당이 광주 선거에서 패배한 건 지역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함께 당내 친노 패권주의에 대한 심판”이라고 말했다. 다만 문 대표 개인에 대한 광주 유권자들의 인식에 대해선 “그동안 믿고 기다렸으나 뚜렷한 정권창출 비전을 보이지 못했다. 이번에 경고장을 날린 뒤 앞으로 어떻게 할지를 지켜보자는 생각이 표심에 담겨 있다”고 말했다.
광주 외의 다른 호남지역 민심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해와 올해 잇달아 치러진 재보선에서 나타난 호남 여론은 문 대표에게 등을 돌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7·30 재보선 당시 전남 순천-곡성에서 친노계인 새정치연합 서갑원 후보가 ‘예산 폭탄’을 공약으로 내 건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에게 패배한 건 충격적인 일이었다.
더구나 이번 광주 선거에선 ‘호남 정치 복원’을 내세운 천정배 후보에게 안방을 내주는 결과를 낳았다. 조영택 후보는 사실상 문 대표가 공천한 인물인 만큼 그를 압도적인 표 차이로 떨어뜨린 호남 민심은 예사롭지 않다.
광주의 ‘탈(脫) 문재인’ 민심은 김한길·안철수 전 공동대표 체제와도 비교된다. 지난해 7·30 재보선 때도 광주 민심이 새정치연합에 좋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 전략공천으로 논란이 일었던 권은희 의원을 압도적인 표차로 뽑아줬다. 앞서 치러진 지방선거에서도 윤장현 광주시장을 큰 표 차이로 당선시켰다.
만일 문 대표가 호남 민심을 돌리지 못한다면 차기 대권 가도에 치명적인 장애물이 된다. 새정치연합의 정치적 텃밭인 호남에서 대권 주자로서 인정을 받지 못할 경우 대선 후보가 되는 일 자체가 어렵게 된다.
이 경우 호남 민심이 손학규 전 대표나 안철수 의원, 박원순 서울시장에게로 급격히 기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야권 내 유력 정치인들의 호남 공략 성공 여부가 차기 대권구도를 좌우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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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제성 언론인 ily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