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조폭 양성 학교 ‘충격’

10대 청소년들이 폭력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경기도 고양경찰서는 지난달 9일 폭력조직을 결성한 뒤 신규 조직원을 양성해 다른 폭력 조직과 집단 패싸움을 벌인 파주스포츠파 두목 김모(40)씨 등 12명을 폭력 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특히 조사 결과 신규 조직원 중 파주지역 중·고교 중퇴자 등 일진회 출신의 청소년들이 포함되어 있어 사회적 파문이 일고 있다. 이에 [일요서울]은 고등학교 시절 싸움으로 조직폭력배에 가담했던 A씨(25)와 거절한 B군(19)의 인터뷰를 통해 잔혹한 조폭의 세계를 들어봤다.
8년 전 춘천의 00고등학교를 중퇴한 A씨(26)는 고등학교 시절 조직폭력배에 몸담은 전과가 있다. 그는 “조폭에 들어간 순간 내 인생은 최악으로 치달았다”고 진저리를 쳤다.
“일진회 아니어도 수소문해 스카우트”
사실 그는 학교에서 내로라할 만 한 싸움꾼은 아니었다. ‘일진회’보다는 삼삼오오 친구들끼리 놀기 좋아하는 소위 잘나가는 ‘날라리’ 학생 정도였다.
A씨는 “공부도, 진로도 정해진 것이 없었다. 매일 술 마시고, 여자 친구들과 잠자리를 갖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었다”고 철없던 10대 시절을 회상했다. 그는 “어느 날 아는 형이 ‘조폭해 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며 “그때는 그게 멋있어 보여 바로 조직에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형의 유혹이 A씨 인생을 송두리째 무너뜨려 버렸다. 그는 “조폭이 되면 돈도 벌고, 어깨도 펼 줄 알았는데 바닥 중의 바닥이었다”며 “무엇보다 매일 얼차려로 맞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다”고 말했다. 결국 조폭 생활 6개월 만에 그는 탈출을 감행, 춘천에서 원주로 도망갔다. 현재 그는 고등학교를 중퇴한 채 근근이 일용직 일을 하고 있다.
A씨와 달리 서울 마포구에 사는 B군(19)은 조폭의 제안을 거절했다.
B군은 마포구 지역에서 싸움으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유명한 싸움꾼이었다.
그는 “진짜 싸움 좀 하는 애들은 일진회 가입 안 한다. 양아치로 본다”고 말했다.
공부만 강요하는 학교가 싫었다는 그는 중·고등학교 시절 두 차례 이전 퇴학을 당했다. 당연히 학교에 가는 날보다 학교 밖 형들과 노는 날들이 잦았다.
B군은 “형들이 사주는 술 마시고, 클럽에 놀러다녔다. 당연히 남자들끼리 다니다 보니 싸움은 다반사”라며 “그 과정에서 형들 눈에 띈 것 같다”고 설명했다. 결국, 지난해 그는 정식으로 조폭 제안을 받았다.
B군은 “취업도 시켜주고, 돈도, 자동차도 준다고 했지만 거절했다”고 말했다.
그가 조폭 제안을 거절한 데는 절친했던 형의 배신 때문이었다.
B군은 “조폭에 들어가더니 나를 불러내 매일 싸움을 시켰다. 늘 뒤처리는 내 몫이었고, 심지어 내 돈까지 뜯어갔다”고 분노했다.
물론 B군도 조폭 제안 거절에 대한 보복이 없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는 “이번 사건처럼 칼부림한 것은 아니었지만, 죽을 만큼 맞았다”며 “다행히 친구 아버지가 조직 고위층이어서 금방 풀려났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현재 B군은 대학에 다니고 있다.
지난달 9일 구속된 파주지역 조직 폭력단은 조직원의 가족까지 협박해 보험사기에 가담시켰다. 경찰조사에서 이들 조직 폭력배들은 조직원들 간에 사고를 내거나 신호를 위반하는 차량과 일부러 사고를 내 총 92차례에 걸쳐 3억 원의 보험금을 가로챈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파주스포츠파의 김모(26)씨는 차량에 이제 갓 2살과 4살 된 자신의 딸과 부인까지 태워 충격을 주고 있다.
뭣 모르고 들어갔다 가족까지 낚여
경찰에 따르면 이들이 보험사기로 얻은 돈은 신규 조직원에게 양복을 사주거나 합숙소를 마련해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달콤한 환대와 달리 실상 신규 조직원들이 겪는 조직 세계는 험난했다.
수시로 선배에 대한 충성도를 확인하기 위해 얼차려와 폭력에 시달렸으며, 심지어 자신의 가족까지도 보험사기에 가담하게 하였다. 만약 조직원이 이를 거부한다면 칼로 이마를 긋거나, 허벅지나 팔을 찌르는 등 잔인한 보복이 가해진다.
A군은 “영화에서나 나오는 조폭의 환상은 모두 거짓”이라며 “조폭에서의 생활은 나와 우리 가족에게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라고 덧붙였다.
학교서 인정받지 못한 아이들, 갈 곳은 조폭
폭력 동아리 및 일진회 출신 학생들의 조폭 진출은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이다. 고질적인 관행이 어린 학생들 인생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내고 있지만, 여전히 해당 학교를 비롯해 교육청 등은 이렇다 할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에 파주교육청 한 장학사는 “폭력 문제는 정말 해 볼만큼 다 해봤다”고 주장했다.
그는 “10대 폭력 관련 관리나 정책은 계속해서 강화해왔다”며 “진짜 문제는 경쟁에 몰린 사회적 구조”라고 말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폭력에 노출된 학생들 대부분이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성적위주의 무한 경쟁에서 밀려난 학생들이 느끼는 박탈감이 결국 그들을 음지로 내몰았다는 것이다.
그는 “경쟁에서 낙오된 아이들이 갈 곳이 없다”며 “정부, 언론, 학교가 유기적으로 담합해 아이들을 선도하고 사회적 구조 변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민간 봉사단체인 법무부 범죄예방 고양지역 협의회의 이기주 운영실장 역시 “10대 조직폭력배 문제는 참 난감한 사안”이라고 얘기했다.
이 실장은 “학교마다 자치적인 감시 체제가 있지만, 일진회를 불러내 조사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감수성이 예민한 학생들을 마음대로 불러내 폭력 조직임을 확인하는 것이 학생 인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번 사건도 조폭을 검거하면서 10대들의 가입 사실이 확인된 것”이라며 “근본적으로 학생들에 대한 관심과 의식 교육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10대 조폭은 근절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수정 기자] hohokim@dailypot.co.kr
김수정 기자 hohokim@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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