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내 연애하는데 회장 허락 있어야?…직장인·취업준비생 ‘울컥’
[일요서울|강휘호 기자] 안료 및 화학약품 제조와 생산을 전문으로 하는 기업 일삼의 정우철 회장이 남다른 직원 교육으로 직장인들 또는 취업준비생들의 질타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가 내놓은 직원 교육용 지침서가 문제로 작용했다. 정우철 회장이 직접 언급한 말을 정리한 해당 직원 교육 자료는 인사 예절, 복장 규정 등 무려 13가지 항목으로 구분되어 있다. 그런데 그 내용 가운데 “사내연애는 나쁘다. 항상 그려오던 이상형일 경우에는 (정우철) 회장님의 허락을 받아라”는 등 다소 황당한 내용도 포함돼 있어 갑론을박이 펼쳐진 것이다. [일요서울]이 정우철 일삼 회장의 말과 이를 본 이들의 반응을 살펴봤다.
총 101개 지침 담긴 직원 교육용 자료 온라인서 화제
중소기업 명예의 전당 올라… 이미지 타격 어쩌나
1976년 사업을 시작한 정우철 회장이 그동안 보여준 인간경영은 독특한 면모를 가진다. 일삼의 공장엔 여느 공장에서 볼 수 있는 ‘안전 제일, 생산율 몇% 증가’ 등의 문구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 대신 “언제나 착한 마음으로 웃으며 즐기자”는 표어가 등장한다.
특히 예의와 규칙 준수는 정우철 회장이 가장 엄격하게 관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출근이 늦은 직원을 바로 집으로 돌려보내 반성의 시간을 갖게 한 일화는 세간에도 알려져 유명하다.
그의 직원들이 사적인 고민을 털어놓으면 듬직한 해결사를 자처한다거나, 병원비나 전세금 보조 등 자금을 내준 일도 정우철 회장이 인간경영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 알 수 있는 사례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우철 회장의 인간경영이 다소 황당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일삼의 회사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직원 교육용 회장님 말씀이 알려지면서부터다. 해당 자료는 회사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누구나 열람할 수 있다.
먼저 정우철 회장은 출근 시간에 대한 정의를 “출근 시간은 업무를 시작하는 시간이다. 그때까지 출근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 즉, 모든 준비를 끝낸 상태에서 자리에 앉아 업무를 시작하는 시간을 말한다”고 내린다. 퇴근은 “업무를 마치는 시간이지, 그때 퇴근하라는 것이 아니다”고 말한다.
대화 예절을 가르치는 내용 중에는 “묻는 말에만 대답하라. 쓸데없이 살을 붙여 이야기 하지마라(예 : 밥 먹었느냐? 네, 아니오)”는 항목도 있다. 아울러 “엘리베이터의 문을 여닫는 스위치를 사용하지 마라. 이것은 여유가 없는 사람이나 하는 짓이다”는 규정도 있다.
특히 사내연애도 지침사항에 나오는데 “남녀 직원은 서로 형제 대하듯이 하라. 사내에서의 이성 교제는 시야가 좁은 사람이다. 절대적으로 안된다는 것이 아니라 나쁘다는 것이다. 과거에 그런 일이 있었는데 결과가 좋지 않았다. 그러나 이 사람이 평생의 배필이다. 항상 그려오던 이상형이라고 판단되면 회장님의 허락을 받아라”고 교육한다.
이처럼 총 101가지 항목의 일삼의 직원 교육용 자료에서 화제가 된 내용은 출·퇴근, 직원 예절, 사내 연애 등이다. 이를 본 직장인들이나 취업준비생 등은 대체로 어이가 없다는 반응이다.
“생각할수록 황당해”

한 중견기업 사원은 “모든 면에서 억압하는 분위기가 될 것 같다”면서 “사원들이 스트레스를 엄청 받을 만한 지시 사항이 많아 보인다”고 입을 열었다. 이어 “요즘 같은 시대에 회사가 연애까지 관여하는 것은 구시대적 발상 아니냐”고 덧붙였다.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는 한 예비직장인은 “만약 회사의 회장으로부터 엘리베이터 스위치를 한 번 눌렀다고 지적을 받는다고 생각하면 벌써 답답하고 황당하다”면서 “아무리 취업이 급하다지만 다시 생각하게 하는 ‘회장님의 말씀’이다”고 전했다.
온라인 게시판 등에서도 화제가 되고 있는데 한 누리꾼은 “출근시간이 8시인데 이 전에 출근해서 다 세팅해놓으라는 것은 ‘계약기간 밖의 초과근무를 시키겠다’라는 말로 밖에 안 들리는군요”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정우철 회장이 생각하는 인간 경영의 행보가 다소 황당하다는 지적이 많다. 그동안 일삼이 걸어온 길을 보면 정우철 회장은 우수 경영인의 표본과 황당할 정도의 깐깐함을 보이는 회장 사이를 오간다.
안료 및 화공약품 제조·생산을 전문으로 하는 일삼은 중소기업 명예의 전당에 오른 바 있고, 우수 경영 사례로 불리던 중견기업이다. 실제 2003년 중소기업청 우수중소기업표창을 받았고, 기업은행의 제4회 중소기업인 명예의 전당 헌정 대상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기업은행의 중소기업인 명예의 전당 헌정은 시장점유율 신용평가등급 업적 기술개발력뿐 아니라 사회적 신망까지 종합적으로 심사해 엄선됐다. 정우철 회장은 중졸 출신으로 1976년 홀로 사업을 일궈 합성피혁용 착색제를 자체 개발해 시장점유율 수익성 안정성 모두 1위를 달리고 있다는 점을 인정받았다.
당시 그는 “농사꾼이 되라는 부모님의 권유가 못마땅해 술에 빠져 살던 나날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며 “‘행복한 가정 건설에 기여하자’는 경영이념이 인정을 받은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또 일삼은 인지도가 높은 회사는 아니지만 내실도 탄탄하다는 평가다.
일삼은 폴리염화비닐(PVC)용 착색제 및 프린팅 잉크,가교제,폴리프로필렌(PP)ㆍ폴리에틸렌(PE)ㆍ폴리스티렌(PS) 등 합성수지 제조용 가공안료,금속 및 플라스틱용 특수잉크 등 1500여개의 제품을 생산한다. 동종 업계에선 이미 독보적인 위치라 할 수 있다.
다만 일삼은 특별히 대응할 생각이 없다는 입장을 전했다. 일삼의 한 관계자는 “회장님의 말씀이 화제가 되고 있다는 점은 알고 있다”면서도 “위법한 사실도 아닌데, 굳이 회사가 대응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고 말을 잘랐다.
아울러 “회장님 말씀을 따르지 않는다고 해도 불이익이 주어지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단순히 회장님의 개인적인 생각이나 가치관을 정리해 놓은 자료 정도로 해석하면 된다”고 밝혔다.
hwihols@ilyoseoul.co.kr
강휘호 기자 hwihol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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