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화폐개혁은 中의 북한 장악 시나리오
북한 화폐개혁은 中의 북한 장악 시나리오
  • 윤지환 기자
  • 입력 2010-03-22 15:26
  • 승인 2010.03.22 15:26
  • 호수 830
  • 1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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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 빨라지는 北·中 커넥션 우려가 현실로
지난 2월 함경남도 함흥시에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앞줄 오른쪽)과 왕자루이(王家瑞·앞줄 왼쪽)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이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고위 관료가 총살당하는 등 북한에 화폐개혁 후폭풍이 매섭게 몰아치고 있다. 복수의 대북소식통은 “북한의 박남기 전 노동당 계획재정부장이 화폐개혁 실패의 책임자로 몰려 지난주 평양에서 총살됐다”고 전해 우리 정부는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다.

이같은 소식은 다양한 대북 채널을 통해 들려오고 있어 사실일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화폐개혁이 실패하면서 다양한 분석들이 쏟아지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주목을 끄는 것은 북한 붕괴와 중국의 북한 장악 시나리오다. 북한이 경제 파탄으로 붕괴할 경우 러시아와 중국이 북한을 점령 통치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최근 들려오는 박 전 부장의 사형 소식은 북한 붕괴 시나리오에 근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중국과 긴밀하게 접촉하고 있는 북한의 움직임은 심상치 않다.

연합뉴스는 지난 18일 북한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북한 당국이 지난주 평양시 순안구역의 한 사격장에서 박 전 부장을 총살했다”며 “화폐개혁의 실패로 민심이 악화되고 김정은 후계체제에도 나쁜 영향을 미치자 모든 책임을 박 전 부장에게 씌워 반혁명분자로 처형했다”고 보도했다.

이 소식통은 “박 전 부장에게 ‘혁명대오에 잠입한 대지주의 아들로서 계획적으로 국가경제를 말아먹었다’는 죄목이 씌워졌다”면서 “1990년대 ‘고난의 행군’ 때 처형된 서관희 전 노동당 농업담당 비서 사건과 닮은 꼴”이라고 말했다.


후유증 체제에 심각한 영향

그러나 이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의 엘리트들은 물론 일반 주민들도 박 전 부장에게 씌워진 죄목에 대해 거의 믿지 않고 있다. 북한 지도부가 박 전 부장을 희생양으로 삼았다고 보는 분위기라는 것이다.

화폐개혁 실패는 북한체제 내구력에 중대한 손상을 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향후 북한 체제의 존속은 북한 주민들의 정치적 태도변화에 달렸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백승주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장은 국회 외교통상통일위 소속 송영선 의원이 지난 18일 오후 국회서 개최하는 ‘지금 북한에선 무슨 일이’ 토론회를 위해 미리 배포한 발제문에서 “북한의 화폐개혁 실패는 북한체제 내구력에 중대한 손상을 가져왔다”면서 “후유증에 대한 치밀한 후속조치가 마련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조명철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국제개발협력센터장은 “화폐개혁 이후 북한 물가는 10배 이상 올랐으며, 결국 북한 경제는 ‘빈곤의 함정’에 빠졌다”면서 “여기에서 빠져나오려면 매년 8~10%의 경제성장률이 5년간 지속돼야 하는데, 지금 북한은 외부 도움 없이는 성장이 불가능한 상태”라고 진단했다.

북한은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중국과 긴밀한 협조를 이룰 것으로 보인다. 일본 마이니치(每日)신문이 지난 15일 보도한 바에 따르면 북한은 최대 지원국인 중국의 원조가 불가결하다고 판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신문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지난 8일 함경남도 함흥에서 방북 중인 왕자루이(王家瑞)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과 만났다. 김 위원장이 지방 도시에서 외국 요인과 만난 것은 이례적이다. 회담에서 김 위원장은 국내 경제와 관련, “전체적으로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중국이 북한의 기대대로 순수한(?) 원조를 줄지는 미지수다.

최근 북한 내부에서는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가 지난해 10월 방북 시 약속한 대북 원조가 기대대로 실시되지 않고 있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지난 9~13일 중국을 방문한 6자회담 북한측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의 임무 가운데는 조속한 원조 집행을 중국 측에 요구하는 것도 포함돼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함께 중국이 북한의 위기 상황을 틈타 북한을 장악할 수도 있다는 주장이 나와 관심을 모으고 있다.


北 붕괴 땐 중·러 공동점령

미국 워싱턴시에서 한미경제연구소(KEI) 주최로 열린 토론회에서 리처드 와이츠 미국 허드슨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북한이 붕괴될 경우 중국과 러시아군이 북한을 공동 점령할 수 있다”고 북한 점령시나리오를 공개했다.

와이츠 연구원은 ‘러시아와 남북한: 과거 정책과 미래 가능성'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통해 이 같이 밝힌 뒤 “이미 이와 관련해 공동 군사훈련도 실시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러시아와 중국은 이미 이런 공동 점령의 총연습에 해당하는 워게임을 실시했다”며 “2005년 8월 러시아와 중국은 북한 인근에서 ‘평화임무 2005'라는 군사훈련을 실시했다”고 말했다.

또 와이츠 연구원은 “북 붕괴사태가 일어날 경우 인도적 대응과 함께, 테러리스트와 범죄자, 불량 정권들이 북한의 핵폭발 장치 등을 손에 넣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이웃 국가들이 자국 군대의 북한 진입을 고려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러시아와 중국은 미군이 자신들의 국경에 근접하는 것을 허용하기보다 먼저 북한을 점령하기를 원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정의화 의원도 이와 비슷한 주장을 해 눈길을 끈 적 있다. 정 의원은 지난해 10월 23일 통일부 국정감사에서 “북한의 중국 쏠림현상 대책이 시급하다”며 “이는 남북 공동 개발계획에 강력한 방해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고 북한 급변사태시 중국 개입을 더욱 강화시킬 것”이라며 남북 경협 활성화를 촉구했다.

정 의원은 북한의 중국 예속화 근거로 ▲중국의 북한 광물자원 독점 ▲북한의 대중 무역의존도 증가 ▲급증하는 중국의 대북투자 ▲에너지와 식량수입 중국 의존현황 등을 제시했다.

정 의원 조사에 따르면 중국은 2004년 11월 아시아 최대 노천 광산인 함북 무산 철광 50년 채굴권(연간 1000만통 규모)을 확보했고, 2005년 2월에는 아시아 최대 동광산인 함북 ‘혜산 청년’(42만톤 동광석 매장 추정, 일일 200톤 채굴 가능)에 대한 투자합의 및 공동개발을 위한 혜중광업합영회사를 설립했다. 같은 해에는 북한 최대규모 무연탄 광산인 평북 구장 ‘룡등탄광' 개발에 합의했고 2006년 3월에는 황해 은파광산 채굴 합작합의서를 체결했다.

2007년 9월에도 몰리브덴 광산인 평남 성천 ‘룡흥광산'에 대광합영회사를, 2008년 6월에는 황해 옹진군 ‘옹진광산'에 철광 공동 개발을 위한 서해합영회사를 설립했다. 5년간 20여곳에 이르는 북한 광산에 투자 개발 및 채굴권 계약을 맺은 것으로 북한의 자원을 중국이 독식하는 형국이다.

정 의원은 “마치 구한말 조선의 지하자원에 군침을 흘리던 서구 열강 침탈 역사가 되풀이 되는 것 같다”며 “한국광물자원공사가 제출한 자료에 의하면 지난 3년간 한국의 6대 전략광종(유연탄 우라늄 철 동 아연 니켈) 수입액이 66억6700만달러에 달하고, 지난해만해도 269억6500만달러를 지불하는 등 매년 광물 수입에 막대한 돈이 들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 의원은 “북한 매장광물 가치가 6조달러(약 7023조원)에 이른다는 경제적 분석이 있는데 이를 결코 수수방관해선 안된다”고 주장했다.

정 의원은 “이런 상황에서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북한과 합의한 신압록강 대교는 단순한 다리가 아니라 북한의 대중국 의존도를 가속화하는 정치·경제적 통로로 작용할 것”이라며 “북한의 대중 경제의존 심화를 견제하고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윤지환 기자] jjh@dailypot.co.kr


# 北` ‘최고경제통’ 박남기는 누구?

화폐개혁 실패의 책임자로 몰려 총살당한 박남기 전 노동당 계획재정부장은 노동당과 내각의 요직을 두루 거친 북한의 대표적 경제관료이다. 황해남도 해주 출신으로 알려진 박남기는 머리가 좋고 학업성적도 우수해 6.25전쟁 때 체코 프라하공대 기계공학과로 유학까지 다녀왔다.

그는 해박한 경제지식과 높은 책임감, 성실성 등을 인정받아 1972년 금속공업성 부상, 1976년 국가계획위원회 부위원장, 1984년 노동당 제2경제사업부(군수공업 담당) 부장 등으로 `출세가도를 달렸다.

특히 1986년에는 고 김일성 주석의 직접 지시로 국가예산을 기획하는 국가계획위원장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2년 뒤 노동당 경공업담당 비서로 승진하기도 했다.

박남기는 2005년 당 계획재정부장에 기용되면서 박봉주 당시 총리와 함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양대 경제브레인으로 활약했고, 2007년 박봉주가 순천비날론연합기업소 지배인으로 좌천된 이후로는 홀로 김 위원장의 경제정책을 보좌했다.

그는 2007∼2009년 3년간 경제관료 중에는 유일하게 김 위원장의 공개활동 수행 ‘톱 10’에 들 정도로 김 위원장의 신임이 두터웠다. 하지만 박남기는 경제관료의 실권이 극히 제한적인 북한 체제의 속성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에 보수적이고 보신적인 성향이 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윤지환 기자 jjh@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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