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ㅣ 이범희 기자] 금호산업 매각 본 입찰에 호반건설(회장 김상열)이 단독으로 나섰으나 불발되면서 매각작업이 다시 표류하게 됐다.
호반건설이 6007억 원을 제시했지만 채권단이 액수가 적다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로 인해 금호산업을 되찾겠다는 의지를 여러 차례 피력한 박삼구 회장(사진) 측이 유리한 고지를 재선점하게 됐다. 하지만 박 회장이 다시 찾는다는 것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많다. 승자의 저주를 한 번 경험했던 그가 또 다시 승자의 저주에 빠지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이다.
매각 안갯속…채권단 기대 못 미쳐 ‘유찰’
박 회장 그룹 재건 최대 걸림돌 사라져
승자의 저주는 인수·합병(M&A) 과정에서 경쟁이 치열해져 경매에서 실제 가치보다 훨씬 높은 가격이 제시된 경우다. 결과적으로 기업 인수경쟁에서는 이겼지만 인수에 성공한 기업이 유동성 상태가 악화되고, 그 후유증으로 큰 손해를 입게 된다.
금호산업 경영이 그동안 어려움을 겪은 것도 결국은 ‘승자의 저주’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분석이 많다.
악재 딛고 부활 날갯짓
2009년 12월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가 워크아웃에 들어갔고 금호석유화학과 아시아나항공은 채권단 자율협약을 체결했다.
주력 계열사가 모두 채권단의 손으로 넘어간 상황에서 동생인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과의 갈등으로 이른바 ‘형제의 난’을 겪기도 했다. 결국 2010년 2월 그룹은 금호아시아나그룹과 금호석유화학그룹으로 쪼개졌다.
박 회장은 2010년 금호산업 100대1 차등감자를 했고, 2012년에는 금호산업·금호타이어에 3300억 원의 사재를 출연해 유상증자를 감행했다.
2013년 3월에는 금호산업에 대한 7대1 감자를 진행하며 경영정상화에 박차를 가했다. 또 금호생명과 금호렌터카, 금호고속, 서울고속터미널 등 알짜 계열사도 차례로 매각했다.
이 같은 노력으로 금호산업은 자본잠식에서 벗어나 지난해 10월 채권단으로부터 조건부 워크아웃 졸업 결정을 받았다. 금호타이어·아시아나항공도 지난달 각각 워크아웃과 자율협약을 졸업했다.
박 회장은 그동안 틈날 때 마다 금호산업을 되찾겠다는 의지를 여러 차례 피력했다.
올해 초 신년사를 통해 “제2창업을 완성하기 위해 자강불식의 자세로 임하겠다”며 어려움이 있더라도 포기할 생각이 없음을 내비쳤다. 금호산업이 아시아나항공의 지분 30%를 갖고 있는 사실상 지주회사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현재 박 회장 등 대주주는 금호산업에 10.51%의 지분을 보유 중이며, 채권단이 보유한 57.6%의 지분 중 50%+1주에 대한 우선매수청구권을 갖고 있다. 채권단이 힘을 실어준다면 또 다시 경영권을 찾을 수 있는 좋은 입지를 점령하고 있지만 그의 인수 의지에 반감을 드러내는 이들이 적잖다는 게 숙제다.
박 회장이 자신이 직접 경영했던 회사를 인수하는 만큼 승자의 저주설은 미약할 것이란 분석도 있지만 호사가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쉽게 거두지 못한다.
한편 광주·전남에서는 지역의 자존심과 같은 전통기업인 금호와 지역의 신흥맹주로서 성장 중인 호반이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찾길 바라는 정서도 있다.
금호와 호반이 다투다 전혀 엉뚱한 측에서 금호산업을 차지할 수 있는 데다 두 기업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면 결국엔 ‘승자의 저주’로 인수자도 결국 불행한 결말을 맞이하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또한 호반건설이 거액을 들여 금호산업을 인수할 경우 이른 바 승자의 저주에 지역 경제가 고통받을 수 있다는 것을 우려한다. 막대한 금액이 지역 기업에서 빠져 나가 채권단으로 들어가면 아무래도 지역에 자금 부족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금호나 호반 양쪽 모두 호남 지역 경제에 큰 영향력을 가진 회사"라며 "어느 쪽이 이기든 큰 돈이 회사서 빠져나가기 때문에 지역에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광주지역 시민사회단체도 이 같은 우려를 담은 성명을 수차례 발표했고 윤장현 광주시장도 같은 취지의 입장을 언급하기도 했다.
김상열 회장이 제22대 광주상공회의소 회장으로 선출된 점도 지역경제에 부담을 줄 만한 일이다.
상생방안 찾았으면
한편 업계에서는 호반건설이 낮은 금액을 써낸 것에 대해 기업간 ‘상도’를 저버리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읽기도 한다.
금호산업 인수를 위해 우선매수청구권이 있는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도저히 써낼 수 없는 금액을 써내는 행위 자체가 재계에서 도의를 잃은 행동으로 비칠수 있는데 오히려 낮은 금액을 써서 경쟁 상대인 박 회장의 숨통을 틔워줬다고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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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희 기자 skycro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