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후 학자금 상환제(ICL) 실태보고
취업후 학자금 상환제(ICL) 실태보고
  • 전성무 기자
  • 입력 2010-03-09 10:07
  • 승인 2010.03.09 10:07
  • 호수 828
  • 1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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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학기 시작했지만… 등록금에 고개 숙인 대학생들

취업후학자금상환제(ICL)가 이번 학기부터 시행됐다. MB의 ‘반 값 등록금’ 대선공약 이후 정부가 획기적인 등록금 정책이라며 내놓은 ‘비책’이다. 재학 중에 갚는 일반 학자금 대출과는 다르다. 말 그대로 풀이하면 취업 후 차근차근 갚아나가면 되는 학자금 대출 혜택이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이자에 이자가 붙는 복리이자가 적용된다. 나중에는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 또한 농후하다. 시행 초반부터 드러나는 취업후학자금상환제의 문제점을 짚어봤다.

“1000만원 빌리고 군대 다녀오면 3000만원 갚으라는데 누가 이용 하겠어요”

수원대학교 3학년에 재학중인 이경렬씨(25·가명)는 ICL 대신 일반 학자금 대출을 신청했다. 재학 중에 상환 걱정이 없어 ICL 신청을 고려했지만 알아보니 문제가 많았기 때문이다. 우선 취업 후 갚아야 할 상환액이 얼마인지 알 수가 없다.

해당 년도 최저생계비와 대출자 연봉 액수에 따라 갚아야 할 금액이 달라진다. 이씨는 아직 군대에 다녀오지 않았다. 이씨는 “ICL을 신청할 경우 군 입대 기간에도 이자가 적용 된다고 들었다”며 “알아보니 군 입대 기간 동안 쌓이는 이자가 400만원이 넘던데 누가 대출 받겠냐”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경기도 A대학교 총학생회 정책국장은 “1000만원 빌리고 군대 갔다오면 3000만원 갚으라는 것 아닌가”라며 “남학생의 경우 취업하고 결혼도 해야 하는데 무리해서 대출 받을 사람이 있을지 의문이 든다. 실제로 내 주변에 ICL 신청한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신입생은 무조건 ICL

ICL은 정부가 대학 등록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획기적으로 내놓은 정책이다. 재학생의 경우 기존 일반대출과 ICL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신입생은 무조건 ICL이 적용된다. 학생들이 가장 걱정하는 부분은 취업 이후다. 고액 연봉을 받는 직장에 취업하면 상환액수가 줄어든다.

반면 저 임금 직장에 취업하면 상환액수는 눈덩이 처럼 불어난다. ICL은 기본적으로 매년 초과소득금액의 20%씩 상환해야 한다. 초과소득금액은 연봉에서 연 최저생계비를 뺀 금액이다.

교육과학기술부에 따르면 매 학기 400만원씩 모두 3200만원을 빌린 뒤 연봉 1900만원을 받는 직장에 취업한 대출자가 25년 동안 초과소득금액의 20%씩 대출금을 상환할 경우 9705만원을 갚아야 한다. 원금의 3배가 넘는 셈이다.

하지만 같은 조건의 대출자가 연봉 2500만원을 받는 직장에 취업한다면 상환액은 6884만원, 4000만원 직장에 취업하면 상환액은 5168만원으로 줄어들게 된다. 적게 벌수록 더 갚고 많이 벌수록 덜 갚는 구조다. 변동금리로 적용되는 이자율도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높다. 올해는 5.7%로 적용되지만 금리 인상 가능성이 높은 것을 감안하면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호주의 경우 재학 중에는 0%, 상환기간에는 연 2.4% 금리를 적용하고 있다. 일본은 연간 최대 3.0%를 부과한다. 학점 제한도 상향 조정돼 부담이 크다. 교과부는 당초 ICL 대출 자격 요건으로 평균 학점 C를 적용했다. 하지만 시행 하루 전날인 1월 14일 돌연 B이상으로 기준을 변경했다. 이 때문에 올해 전체 재학생의 10%인 25만여명이 신청 자격을 상실했다.

이 처럼 까다로운 자격기준과 악 조건으로 인해 대학생들은 ICL을 기피하고 있다. 정부는 당초 110만 여명이 ICL을 신청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한국장학재단에 지난 4일 까지 접수된 신청자는 44만5301건에 그쳤다.

불만이 확산되자 국회 교과위 소속 의원들도 문제 제기를 하고 나섰다. 지난달 15일 민주당 김효석 의원 등 3명은 ‘취업 후 학자금 상환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은 대출자의 군복무 기간 이자를 면제해 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국회 예결특위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나라당 박영아 의원도 문제 제기를 했다.

박 의원은 지난해 12월 예결위 전체회의에서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취업 후 학자금 상환 제도의 현재 우리나라에서 조세 공평성에 대한 신뢰가 부족한 것도 해결되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 역시 소위 ‘월급쟁이’들의 상환 부담만 강제된다”고 말했다.

박 의원실 측은 ICL이 국가 예산에도 타격을 줄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ICL은 100% 국고채로 충당된다. 대출자가 대학 졸업 후 취업에 실패해 대출금 상환을 하지 못할 경우 그 만큼 국고 손실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4일 통계청 등에 따르면 아무런 활동도 하지 않고 ‘그냥 쉰다’는 15~34세 청년층 인구가 43만명으로 추산됐다.

이러한 자발적 실업상태의 청년층은 2004년 33만명, 2005년 38만5000명, 2006년 39만1000명, 2007년 39만7000명, 2008년 39만9000명으로 해마다 증가 추세다.

학생들도 반발하고 나섰다. 한국대학생연합은 4일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의 개정과 ‘반값등록금’ 이행을 촉구하는 ‘10만 대학생 서명운동’에 돌입했다.


뿔난 대학생들, ICL 개정요구

한대련은 ▲이자에 이자가 붙는 복리 계산방식 ▲5.7%의 고금리 ▲군복무 기간 이자납부 ▲수능6등급·B학점 이상 대출제한 등 의 ICL의 문제점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한대련은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은 등록금 인하를 위한 노력은 커녕 2010년 고등교육 예산을 11년만에 1700억원이나 삭감했다”며 “등록금으로 고통 받는 대학생과 국민을 생각한다면 고등교육에 예산을 투입해 반값 등록금 공약을 하루빨리 이행하고 취업후 상환제 역시 전면 개정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국장학재단 측도 이 같은 문제점에 대해 해명 자료를 냈다. 한국장학재단은 고금리라는 지적에 대해 “‘든든학자금’은 장학금이 아니라 대출상품이다”라며 “7%대의 금리를 이번 학기 5.7%까지 낮추었으며, 앞으로 금리를 더 인하는 노력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복리이자가 부담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일각에서 십수년에 걸쳐 분할 상환할 경우 원금보다 2배 이상의 돈을 갚아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며 “이는 시간의 흐름에 따른 화폐가치 변화와 납입 유예기간동안의 부담감소라는 이점을 고려하지 않은 지적”이라고 일축했다.

한국장학재단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해명자료를 홈페이지를 통해 공시했다.

2010학년도 첫 학기가 시작됐다. 하지만 시행 초기부터 삐걱거리고 있는 ICL로 인해 가난한 대학생들의 한숨만 깊어지고 있다.

[전성무 기자] bukethead@nate.com

전성무 기자 bukethead@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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