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 악순환 ‘유럽의 문제아’ 그리스의 운명은?
부채 악순환 ‘유럽의 문제아’ 그리스의 운명은?
  • 송철복 수석 편집위원
  • 입력 2015-04-27 11:13
  • 승인 2015.04.27 11:13
  • 호수 1095
  • 61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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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권자가 요구하는 재정긴축 등 경제혁신 미흡
획기적 경제회복 없이 빚 굴레 벗어나기 어려워

[일요서울 | 송철복 수석 편집위원] 감당할 길 없는 빚 때문에 끊임없이 이웃나라들에 손을 벌리는 ‘유럽의 문제아’ 그리스 때문에 유럽연합(EU)이 골치를 앓고 있다.


국고가 거의 바닥난 그리스 정부가 5~6월에 만기가 돌아오는 국제통화기금(IMF) 부채 25억 유로(2조8850억원)를 갚지 않고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할 가능성이 있다고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가 최근 보도했다. 이 바람에 요즘 뉴욕증시가 연일 출렁이고 있다.

만약 그리스가 실제로 디폴트를 선언한다면 유럽중앙은행(ECB)·EU·IMF가 빌려준 구제금융 2450억 유로(약 283조원)를 돌려받을 길이 막막해진다. 그렇게 되면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이 지향하는 경제 통합 목표가 흔들리게 됨은 물론 유로화에 균열이 생길 수밖에 없다.

경제규모가 한국의 17%인 그리스는 지난 몇 년간 살얼음판 위를 걸어왔다.

미국 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그리스는 유럽 부채 위기의 진앙(震央)이 되었다. 금융위기의 여진(餘震)으로 세계금융시장이 여전히 휘청거리고 있던 2009년 10월, 그리스는 자국이 오랫동안 재정적자 규모를 과소평가해 왔다고 발표했다.

 

경제규모 한국의 17%

이 고백으로 단박에 그리스는 국제금융 시장에서 돈을 빌릴 길을 차단당했다. 2010년 봄, 그리스는 바야흐로 국가 파산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이는 또 다른 금융위기의 씨앗으로 간주되었다. 그리스의 파산은 그리스만의 문제가 아니라 유로존 전체에 재앙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재앙을 막기 위해 IMF와 ECB 그리고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는 2010년 5월을 시작으로 그리스에 구제금융 지원을 실시했다. 그러면서 이 채권자들은 그리스 정부에 긴축을 요구했다. 예산을 대폭 삭감하고 세금을 대거 인상할 뿐만 아니라 정부 조직을 간소화하고 탈세를 근절하며 사업환경을 개선하는 등 경제 전반을 혁신하라고 요구했다.

채권자들이 그리스에 거액을 빌려준 것은 그리스가 그 돈으로 재정을 안정시켜 유로존 분열 가능성에 대한 시장의 불안을 잠재우라는 뜻이었다. 채권자들의 이런 의도는 어느 정도 충족되었지만, 그리스 자체의 경제문제는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현재 그리스 경제는 5년 만에 25% 뒷걸음질 친 상태며 실업률은 25%가 넘는다.

그리스 정부가 받는 구제금융은 경제 재건에 쓰이기보다 기존 부채를 갚는 데 주로 충당된다. 윗돌 빼 아랫돌 괴는 식이다. 경제가 획기적으로 좋아지지 않는 한 그리스가 빚 굴레를 벗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빚에 눌려 숨도 쉬기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자 그리스 내부에서 “채권자들이 우리에게 강요한 긴축 조처들 때문에 우리나라의 문제가 악화하고 있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게 되었다. 이러한 대중의 불만에 편승해 지난 1월 그리스 조기 총선에서 반자본주의·사회주의를 부르짖는 급진좌파연합 시리자가 집권에 성공했다. 시리자 대표로 총리가 된 알렉시스 치프라스는 긴축이 그리스에 ‘인도주의적 위기’를 가져왔다며 채권자들을 상대로 구제금융 조건의 재협상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그러자 독일이 중심이 된 채권자들이 분노했다. 채권자들은 그리스가 구제금융 조건인 경제 혁신을 단행하지 않고 있다며 구제금융 조건을 완화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채권자들과 그리스 간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사이 또 다른 긴급사태가 발생했다. 그리스 정부의 금고가 다시금 빠르게 비어가고 있는 것이다.

거의 파산한 상태에서 그리스 정부는 지난 2월 20일 협상 끝에 유럽관리들에게서 “그리스가 구제금융을 상환하는 것을 최소 넉 달간 늦춰주고, 구조개혁 조건부로 그리스에 70억 유로를 추가 지원한다”는 약속을 얻어냈다. 하지만 채권자들은 그리스가 제출한 구조개혁 계획이 미흡하다며 불만이다.

디폴트·그렉시트 우려감

그리스는 기존 빚을 꺼나가면서 동시에 정부 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자면 EU 측과 이번 거래를 성사시켜야 할 입장이다. 그런데 현재 그리스는 채권자들이 자국과 어떤 식으로건 타협하자고 나설 것이라며 배짱을 내밀고 있다. 그리스가 디폴트를 선언하거나 유로존에서 탈퇴하는 극단적인 상황(Grexit, 그렉시트)을 채권자들이 두고 볼 리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그리스의 이런 배짱은 먹혀들었다. 전문가들은 그리스의 디폴트와 그렉시트가 현실화하면 그 후유증이 유로존 전체로 번져 세계금융에 엄청난 충격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몇 년 사이 상황은 변했다. 그간 유럽은 그리스 충격이 여타 국가들로 번지지 못하도록 안전장치를 마련했다. 그 결과 유로존에서 차지하는 경제 비중이 3%에 불과한 그리스가 그렉시트를 감행하더라도 나머지 97%에는 별 영향이 없다고 자신한다. 심지어 “돈 문제로 끊임없이 이웃나라들을 괴롭히는 그리스를 차라리 이번 기회에 유로존에서 떼버리는 것이 유로존 전체를 위해 더 낫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자는 전문가들도 있다. 기본적으로 EU는 유로화가 유로존 각국의 필요에 따라 좀 더 연방제에 가까운 시스템에 의거해 회원국들 사이에서 이전되기를 원한다. 미국 주들 사이에서 달러화가 이전되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하지만 유로존은 아직 이런 단계까지는 이르지 못한 상태다. 따라서 만약 그리스가 디폴트에 빠지고 유로존을 떠나면 그로 인해 금융시장에 혼란이 초래되어 유럽의 회복을 가로막게 될 것이며, 미국 경기의 반등에도 지장을 줄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치프라스 총리는 그렉시트를 원치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유럽의 돈줄인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유로존은 통합을 유지해야 하지만 ‘어떤 대가에도 불구하고’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그리스는 현재 급한 부채 상환을 위해 70억 유로 중 일부라도 확보해야 할 입장이다. 여기에 올 여름 상환이 도래하는 부채만도 70억 유로가 넘는다. 결국 그리스는 2010년 이래 세 번째로 또 다시 수십억 유로의 구제금융을 확보해야 할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새 빚을 얻어 헌 빚을 갚아야하는 딱한 형편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scottnearing@ilyoseoul.co.kr 

송철복 수석 편집위원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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