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착추적] 경남기업 수사에 숨겨진 진실
[밀착추적] 경남기업 수사에 숨겨진 진실
  • 김재현 프리랜서
  • 입력 2015-04-27 10:49
  • 승인 2015.04.27 10:49
  • 호수 1095
  • 12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로 폭탄돌리기 드러나는 증거들
▲ photo@ilyoseoul.co.kr

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정부 서로 폭탄돌리기 양상
정관계 인사들 수사 장기화땐 사건 흐지부지 될 수도

[일요서울 | 김재현 프리랜서] 검찰이 고 성완종 전 회장의 정치권 금품로비 의혹을 규명할 핵심 증거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은 성 전 경남기업 회장의 최측근을 잇따라 긴급체포하면서 성 전 회장 측근 인사들을 압박할 ‘초강수 카드’를 꺼내들자 정·관·재계에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게 돌고 있다. 경남기업 수사와 관련, 야권은 특검론을 내세우며 여권을 압박하고 있고 여권은 노무현정부 시절 정권 핵심부와 성 전 회장의 유착관계를 집중추궁하고 있다. 검찰 수사에서 사건의 핵심은 성 전 회장이 생전에 관리해온 것으로 알려진 ‘비밀장부’다. 검찰은 경남기업 등 압수수색을 통해 성 전 회장의 비밀장부를 찾아내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아직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와 검찰 주변에서는 성 전 회장이 생을 마감하기 직전 남긴 것으로 보이는 메모를 놓고 여러 추측과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메모에 현 정부 실세들과 여권 핵심 관계자 등 여권인사들이 대거 등장하고 있는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성 전 회장이 현 정부에 대한 배신감과 서운함을 드러낸 것 아니냐고 추측한다. 동시에 검찰수사를 정면으로 반박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도 나온다.

성 전 회장과 경남기업 그리고 검은 커넥션에 연루된 정·관계 인사들에 대한 수사는 장기화 될 조짐이다. 수사가 장기화 될 경우 사건이 흐지부지 마무리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따라서 여론은 수사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지만 정치권은 이런저런 이유들을 내세워 갈피를 잡지 못하는 모습이다.

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정부 핵심 관계자들 중 일부가 성 전 회장과의 연결된 정황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는데, 일부에서는 이를 두고 “성 전 회장과의 연결고리가 드러날 것을 우려해 여야 모두 서로 폭탄돌리기를 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비난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여야는 ‘성완종 리스트’ 진상규명을 위한 조사의 형식을 놓고 접점을 찾지 못한 채 팽팽한 대치를 이어가고 있다.

여야 모두 특검의 필요성에는 한 목소리로 동의하고 있지만, 특검을 어떻게 구성할지에 대해선 치열하게 눈치작전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새누리당은 지난 24일 현행 상설특검법에 따른 특검을 빨리 구성해 모든 의혹을 규명하자는 입장을 재확인한 반면, 새정치민주연합은 상설특검법이 아닌 별도의 합의에 따른 특검을 구성하자는 기존 요구를 거듭 내세웠다.

특검 구성 싸고 눈치작전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는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가 전날 회견에서 ‘성완종 특검’은 현행 상설특검법을 따르지 않는 별도 방식으로 실시하되, ‘자원외교 의혹’ 은 상설특검으로 수사하자고 요구한 데 대해 “자가당착이자 자기모순”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는 “이번 사건은 권력의 불법정치자금, 대선자금과 직접 관련된 사건이자 대통령이 수사받아야 할 피의자들의 뒤에 서 있는 사건”이라며 남미 순방 중인 박근혜 대통령이 귀국과 함께 ‘별도 특검’ 수용 의사를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다.

특히 노무현 정부 시절이던 지난 2007년 단행된 ‘성완종 특별사면’의 특혜 의혹을 둘러싼 여야 간 대립이 격화되고 있다. 이는 현 정권이 야권 최고핵심을 직접 겨냥한 것이어서 향후 정치적으로 적지 않은 파장을 불러올 수도 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특사 상황을) 아는 사람이 문 대표 아니냐. 그걸 안 밝히려면 어제 왜 기자회견을 했느냐”고 지적한 뒤 “문 대표는 성 전 회장에 대한 구체적인 특사 이유를 밝히고, 국민께 사과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새정치연합 전병헌 최고위원은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이 성 전 회장의 사면을 주도했다는 일부 언론 보도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양윤재 전 서울시부시장 사면 개입 의혹 보도 등을 언급, “성 전 회장 사면에 이 비서실장과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관여된 것으로 보도됐다. 이제 특사 논란의 해명 책임은 여권으로 넘어갔다”고 주장했다.

정치권이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검찰 수사도 답답하게 진행되고 있다.

검찰 수사 장기화 조짐

‘성완종 리스트’ 특별수사팀(팀장 문무일 검사장)은 지난 23일 이용기(43) 비서실장을 증거인멸 혐의로 긴급체포했다고 밝혔다. 성 전 회장의 최측근 인사가 긴급체포된 건 이날 구속영장이 청구된 박준호(49) 전 경남기업 상무에 이어 두 번째다.

박 전 상무와 이씨는 검찰의 압수수색에 대비해 경남기업 내부 폐쇄회로(CC)TV를 이틀가량 끈 채 증거자료를 회사 밖으로 빼돌리거나 폐기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남기업 측이 폐기한 자료들 가운데는 대아레저와 대아건설 등 비자금 창구로 지목된 계열사와의 거래내역 등도 섞여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팀은 지난 15일 압수수색에서 확보한 디지털 자료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특정 기간의 기록이 상당 부분 지워진 정황도 확인한 상태다. 지난 20~21일 증거인멸 혐의로 긴급체포한 경남기업 직원들을 조사하면서 박 전 상무 등이 증거인멸을 지시했다는 진술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수사팀은 박 전 상무와 이 실장이 공모해 경남기업의 조직적인 증거인멸을 주도한 것으로 보고 자료를 빼돌린 경위와 은닉 장소 등을 집중 추궁할 방침이다.

향후 ‘성완종 리스트’수사는 금품로비 의혹과 증거인멸 수사가 동시에 진행되는 ‘투트랙 수사’ 수순에 들어갈 전망이다.

수사팀 관계자는 이날 “증거 인멸 의혹도 계속 확인하고 있다”며 “(수사 상황에) 유의미한 변화가 있다. 수사가 두 갈래가 된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신속하게 확보하지 않으면 변질, 인멸될 가능성 있는 자료부터 선제적으로 수집하고 있다”며 “수사팀이 찾고 있는 증거가 폐기된 증거인지, 은닉돼 있는 것인지, 원래 없었던 것인지 아직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수사팀은 이들이 금품수수 의혹에 연루된 정치인 쪽 관계자들로부터 증거 은닉·폐기 회유를 받은 사실이 있는지도 확인할 방침이다.

검찰 공개 안한 내용 있나

성 전 경남기업 회장이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 ‘비밀 로비장부’가 오리무중이다. 비밀장부를 찾지 못하면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정치권 실세 8인을 넘어 정·관계로 수사를 확대할 명분이 작아지게 된다. 검찰 특별수사팀(팀장 문무일 대전지검장)은 열흘째 계속 거의 모든 강제수사 방법을 동원해 비밀장부를 찾는데 주력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수사 변수로 경남기업 임직원들의 ‘증거인멸’ 부분이 점점 부각되고 있다.

수사의 성패를 좌우할 비밀 장부의 존재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지난 13일 특별수사팀 출범 직후 성 전 회장 주변 인사들은 “성 전 회장이 사망 며칠 전부터 리스트 8인에 대한 금품전달 사실을 확인하러 다녔고, 관련자들과 나눈 대화 내용도 기록해 뒀다”고 증언했다.

성 전 회장은 검찰이 자원외교 비리 의혹과 관련해 경남기업을 전격 압수수색하며 공개수사로 전환한 시점이 3월 18일인 점으로 미뤄 볼 때 검찰 내사 단계에서 수사를 인지한 성 전 회장이 일찌감치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던 것으로 보인다.

성 전 회장의 수행비서였던 금모(34)씨는 지난 23일 한 언론을 통해 “(성 전 회장이) 박근혜 대통령의 독일행 기사를 스크랩해 달라고 해 지면에 나온 관련 기사, 특히 사진이 있는 것을 중심으로 일자별로 뽑아줬다”면서 “그게 2월 중순이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당시 10건 정도의 관련 기사를 찾아 프린트해 준 뒤 성 전 회장이 나중에 해당 기사를 다시 찾을 가능성도 있어 기사를 파일로 만들어 자신의 이메일로 보냈다는 것이다.

금씨는 “최근 메일함을 확인해 보니 메일 발송 및 수신 시점이 ‘2월 14일 오후 7시’였다”고 말했다. 최소한 이날보다는 이전이라는 얘기다. 말하자면 이는 성 전 회장은 이미 2월 중순 이전부터 자신의 신상에 중대한 변화가 찾아올 것을 감지, 과거 자신이 정치권에 금품을 제공한 내용을 복기, 정리해왔을 가능성을 높인다.
이때는 이미 참여연대와 정의당 등이 이명박 정부 자원외교 실패와 관련해 한국석유공사 등 공기업들을 검찰에 고발했고 감사원도 강영원 전 석유공사 사장을 검찰에 고발하는 등 자원외교 참여 기업에 대한 수사가 예고된 상황이었다.

한편 검찰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성완종 리스트 8인 중에서 그나마 사법처리 가능성이 높은 대상으로는 시점과 장소, 금액, 돈 전달자가 특정된 홍준표 경남지사와 이완구 총리 2명이 꼽힌다.

하지만 이 총리마저도 성 전 회장과 단 둘이 만나 3,000만 원을 건네 받았다는 주장이어서 한계가 있다. ‘독대의 순간’을 복원하지 않는 한, 실제로 돈이 전달됐다고 입증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의 경우, 시점(2012년 11~12월)과 액수(2억원)는 공개됐지만, 그 외에는 “사무실에서 줬다”는 주장뿐이고, 김기춘ㆍ허태열 전 대통령비서실장은 사실상 공소시효가 지났다.

유정복 인천시장(3억원)과 부산시장(2억원ㆍ서병수 시장 추정)은 금액만 달랑 메모에 적혀 있고, 심지어 이병기 대통령비서실장은 아예 금품과 관련한 어떠한 정보도 없다.

금액 전달 시점 등이 적시된 기록이 없다면 수사 목적인 형사처벌에 접근할 통로는 사실상 막히게 된다. 성완종 리스트의 8인에 대한 처벌이 제한된다면 야당을 포함한 정치권 인사들에게 금품로비를 벌인 또 다른 의혹으로 수사를 확대할 명분도 불투명해질 수밖에 없다.

수사팀은 증거인멸 수사를 통해 일종의 ‘우회로’를 찾고 있다. 관련자 직접 진술이나 자료 확보가 어렵다면, 이들이 감추려 했던 증거들을 찾아내는 ‘역추적’을 통해 난관을 돌파하겠다는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신속히 확보하지 않으면 변질되거나 인멸될 수 있어 보이는 자료들부터 선제적으로 수집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성 전 회장이 메모와 음성파일에서 거론하지 않은 또 다른 증거나 수사 단서들이 대거 발견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성완종 리스트의 8인을 넘어, 또 다른 정ㆍ관계나 금융권 인사들을 향해 수사가 확대되느냐의 관건도 여기에 달려 있다는 게 법조계의 관측이다. 지금은 사건의 지류(支流)처럼 보이더라도 나중에는 본류(本流)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ilyo@ilyoseoul.co.kr 

김재현 프리랜서 ilyo@ilyoseoul.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