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류제성 언론인] 이완구 국무총리가 성완종 리스트 파문으로 4월 20일 전격 사의를 표명했다. 박근혜 정부 들어 끊임없이 이어졌던 ‘국무총리 수난사’의 결정판이다. 박근혜 정부는 5년 임기의 반환점도 돌지 못한 상태에서 벌써 2명의 총리가 사퇴했고, 3명의 총리 후보자가 낙마하는 진기록을 남겼다.
대통령직 인수위 때부터 수난사가 시작됐다. 박 대통령은 취임 직전인 2013년 1월24일 첫 총리 후보자로 김용준 당시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을 지명했다.
하지만 김 후보자는 헌재소장 퇴임 닷새 만에 법무법인으로 옮기는 전관예우 특혜, 부동산 투기 의혹을 받아 낙마했다.
박 대통령 임기 시작 다음날인 2013년 2월26일 정홍원 총리가 취임했지만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는 바람에 지난해 4월27일 사의를 밝혔다. 박 대통령은 참사 수습 후 거취를 결정하겠다며 ‘조건부 수용’을 했다.
곧 안대희 전 대법관이 후보자로 지명됐지만 2013년 변호사 생활 5개월 동안 16억 원의 수입을 얻은 사실이 밝혀지면서 국회 인사청문회 자리에 앉아보지도 못한 채 스스로 물러났다. 다시 문창극 후보자가 지명됐지만 역사인식 논란으로 연쇄 낙마했다. 그러자 사의를 표명한 정홍원 총리가 어정쩡한 상태로 자리를 지켰다.
박 대통령은 국정을 정상화하기 위해 이완구 후보자를 선택했다. 그는 아들과 본인의 병역특혜, 언론외압 논란을 빚다가 가까스로 국회 인준을 통과했지만 사실상의 역대 최단명 총리라는 오명을 남기고 퇴진하게 됐다.
대한민국 국무총리의 잔혹사는 과거 정권에서도 있었다. 역대 총리 가운데 재임 기간이 가장 짧았던 인물은 제6대 허정 총리다. 1960년 6월 15일 취임했지만 4·19로 제2공화국이 출범하자 재임 65일 만인 그해 8월 18일에 물러났다. 이완구 총리의 재임 기간은 취임부터 사의표명 시점까지 64일에 불과하다.
이후 단명 총리로는 노태우 정부 시절 노재봉, 현승종, 김영삼(YS) 정부 시절 이회창 전 총리, 김대중 정부 때의 박태준 전 총리를 꼽을 수 있다. 이유는 다양하다.
노재봉 전 총리는 시위 중이던 강경대 군 사망 사건으로 4개월 만에 물러났다. 이회창 전 총리는 1993년 12월 17일 취임했으나 YS와의 불화로 125일 만에 교체됐다. YS는 5년 임기 중 국무총리를 다섯 번 갈아치웠다. 박태준 전 총리는 2000년 1월 13일 취임했다가 수십억 원 대의 부동산을 다른 사람 명의로 이전하고 조세를 회피하려 했다는 의혹을 받아 126일 만에 경질됐다.
국무총리 출신 중 대통령이 된 인물은 최규하 전 대통령이 유일하다. 하지만 최 전 대통령은 직선제로 선출되지 않은 과도기 대통령이었다.
이후 김종필·이회창 전 총리가 대선에 직접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이홍구·이수성·박태준·이한동·고건·정운찬 전 총리 등도 대권주자 반열에 올랐지만 모두 뜻을 이루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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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제성 언론인 ily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