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서울 | 김종현 기자] 올 초부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서 울리는 한국선수의 잇따른 승전보는 기적을 넘어섰다. 우연한 승리가 아닌 탄탄한 기본기에서 출발하는 실력임을 입증한 것이다. 이에 9개 대회에서 한국계 선수들은 7승을 거뒀고 정확히 한국국적의 선수들은 모두 6승을 거두면서 LPGA 대세가 됐다. 이중 첫 2승을 거두며 상금랭킹, 신인왕, 올해의 선수상 모두 1위를 기록한 역전의 여왕 김세영이 있다. 그간 김효주의 그늘에서 자유롭지 못했지만 이제는 LPGA관심을 한 몸에 받는 대세녀로 거듭났다. 김세영의 우승비결을 들어본다.
효주 그늘의 서러움 시즌 2승으로 역전의 발판 마련
올림픽 출전권 눈앞…우승 열기 금메달 사냥 직행
유독 올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는 신인들의 돌풍에 지난해 시즌을 이끌었던 선수들이 맥을 못 출 정도다. 특히 한국 태생 신인 2명이 LPGA 투어 판도를 뒤흔들면서 지난해 돌풍의 주인공이었던 뉴질랜드 교포 리디아고 역시 다소 관심 밖으로 멀어졌다.
LPGA 투어 신인돌풍의 주역은 김세영과 김효주로 압축된다. 더욱이 김세영이 시즌 2승을 거두면서 스포트라이트가 김세영에게로 쏠려있다. 올해 7차례 대회에 출전한 김세영은 개막전인 코츠챔피언십에서 컷 탈락을 했을 뿐 나머지 6개 대회에서 2차례 우승과 3차례 톱10이라는 걸출한 성과를 이뤘다.
그는 퓨어실크바하마클래식과 롯데챔피언십에서 최종라운드를 극적인 역전승으로 일궈내면서 과거 역전의 여왕임을 다시금 증명했다.
김세영은 지난 19일 미국 하와이 오아후섬 코몰리나 골프클럽(파72·6383야드)에서 열린 롯데챔피언십 최종라운드에 출전해 골프여제 박인비와의 연장전 첫 번째 홀에서 박인비를 제치고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이날 김세영은 11언더파 277타로 박인비와 함께 18번홀(파14)에 돌입했다. 그는 티샷이 워커해저드에 빠지며 위기에 봉착했다. 그러나 1벌타를 받고 친 세 번째 샷을 그린 주변에 붙인 뒤 환상적인 칩인파로 승부를 연장으로 끌고 갔다. 박인비는 30cm 거리의 파 퍼트를 남겨둬 우승을 눈앞에 뒀지만 김세영의 극적 어프로치샷에 연장 승부를 치르게 됐다.
세계 2위도 인정한
신의 손
극적인 승부는 연장까지 이어졌다. 같은 18번홀에서 열린 연창 첫 번째 홀에서 김세영은 두 번째 샷을 홀컵에 넣으며 샷 이글을 기록한 것. 반면 박인비는 두 번째 샷이 그린 주변에 떨어지며 김세영의 우승이 확정됐다.
김세영의 극적인 역전승은 여전히 회자될 정도로 인상 깊은 경기로 남았다. 세계랭킹 2위 스테이시 루이스(미국)는 올 시즌 번번이 한국선수들로 인해 우승을 기록하지 못한 가운데 김세영의 우승 장면에 대해 호평했다.
루이스는 “나중에 그 장면을 봤는데 믿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 골프코스의 18번 홀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김세영의 파 세이브 칩샷과 샷 이글이 정말 훌륭했다”고 평가했다. 또 미국 골프전문 매체 ‘골프채널’은 김세영의 샷 이글을 두고 ‘킴 크레더블(Kim-credible)’이라고 극찬했다.
이처럼 김세영은 미국 무대에 안착하며 기복 없는 플레이와 극적인 우승으로 골프팬들에게 큰 관심을 받고 있는 가운데 지난해 KLPGA를 휩쓸었던 김효주를 압도하면서 김효주에게 뒤졌던 전세를 미국에서 뒤집는 ‘진정한 역전의 여왕’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해 국내 무대에서 7승(김효주 5승, 김세영 2승)을 휩쓸고 나란히 LPGA 투어에 진출한 두 사람은 아마시절부터 경쟁을 벌이며 올해 신인왕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당초 골프계에서는 김세영보다 김효주를 신인왕 0순위 후보로 여길 정도로 후한 평가를 내려왔다. 하지만 미국무대에 넘어오면서 초반 기세는 김세영이 잡은 모양새가 됐다.
물론 김효주가 시즌을 늦게 시작했지만 그 역시 1승을 거둔 바 있어 두 사람의 신인왕 경쟁은 시즌이 끝날 때까지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김효주 60대 타수에
비거리로 맞불
특히 김효주의 장점은 평균타수 부문 2위라는 사실이다. 그는 지금까지 평균타수 69.536타를 기록하고 있다. 60대 평균타수는 현재 1위 루이스(69.458타)와 3위 리디아 고(69.536), 4위 박인비(69.571타) 등 모두 4명뿐이다.
루이스, 리디아 고, 박인비 모두 당대 최고의 실력자라는 점에서 김효주의 실력이 그 만큼 안정돼 있음을 반증한다.
더욱이 지난해 LPGA 메이저대회인 에비앙마스터스에서 우승컵을 안은 이후 두 번의 LPGA 투어 우승에서 카리스마가 강하기로 이름난 캐리 웹(호주)과 루이스를 최종 라운드 맞대결에서 누르고 우승을 목에 걸면서 강한 정신력의 아이콘으로도 급부상했다.
반면 김세영은 김효주와 다르게 태권도와 웨이트로 다진 하체에서 뿜어 나오는 장타를 바탕으로 화끈하면서도 공격적인 골프로 투어를 공략하고 있다.
평균 드라이버 비거리 262.483야드(12위)로 웬만한 LPGA 장타자들에게 전혀 뒤지지 않는다.
다만 페이웨이 안착률 71.9% (95위)로 하위권을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김세영은 안전한 페어웨이보다 그린에 더 가까이 간다면 러프라도 개의치 않는 등 공격적이고 도전적인 스타일을 구사하고 있다. 이는 기적을 이루기도 하고 때론 대형 사고를 부를 수도 있지만 갤러리들의 시선을 이끄는 김세영 골프의 매력으로 자리 잡았다.
이로써 쫓고 쫓기는 김효주와 김세영의 박빙대결은 올 시즌 골프팬들의 눈을 즐겁게 할 것으로 보인다.
신인왕자리
장하나 가세로 3파전
이와 더불어 두 수퍼루키에 가려 있지만 신인왕에 도전하는 출중한 신인들이 산재해 있다.
신인왕 레이스에서 김세영과 김효주가 나란히 1, 2위를 달리는 가운데 아리아 주타누간, 장하나, 이민지, 앨리슨 리, 백규정, 찰리 헐, 슈웨이링, 요코미네 사쿠라가 뒤를 따르고 있다.
이중 장하나는 김세영, 김효주 양강구도에 도전장을 낼 후보 1순위로 꼽힌다. 그는 KLPGA에서 6승을 따낸 풍부한 경험에 장타력 남다른 승부근성을 갖고 있다. 장하나는 개막전인 코츠챔피언십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한 차례 주목을 받았다. 또 톱10에 3차례 올랐고 상금랭킹 14위를 기록하며 실력자임을 입증했다.
이 밖에 호주 교포 이민지는 아마추어 세계랭킹 1위, 퀼리파잉스쿨 수석 합격이라는 풍부한 잠재력을 갖고 있고 지난해 LPGA투어 하나외환챔피언십 우승으로 투어에 직행한 백규정 역시 신인왕을 노리고 있다. 또 기아클래식에서 정교한 퍼팅으로 주목받은 앨리슨 리도 한국인 피가 흐르는 교포선수다.
여기에 태국 출신 주타누간은 2013년 신인왕 모리야 주타누간의 친동생으로 최초의 자매 신인왕을 노리고 있다. 그는 장타 1위를 달리는 등 아시아 선수답지 않은 파워골프를 선보이고 있다. 코리안 슈퍼루키에 특급 신인들이 가세하면서 올 LPGA 투어 신인왕 자리는 그 열기가 뜨겁게 타오르고 있다.
신인왕·올해의 선수상
동시 조준
이런 가운데 루키시즌의 선두로 달리고 있는 김세영이 신인왕과 올해의 선수상을 동시 석권할지도 관심사로 떠올랐다.
LPGA투어에서 신인이 올해의 선수상을 석권한 것은 1978년 낸시 로페스 이후 없었다. 로페스는 당시 무려 9승을 쓸어 담아 신인왕은 물론 올해의 선수상과 시즌 평균 타수가 가장 낮은 선수에게 주는 베어트로피까지 거머쥐며 맹위를 떨쳤다.
이후 신지애가 2009년 신인왕과 상금왕을 차지하며 올해의 선수상에 기대를 걸었으나 로레나 오초아(멕시코)와의 치열한 경쟁 끝에 올해의 선수상 포인트에서 단 1점차로 아쉽게 놓치고 말았다.
김세영은 시즌 초반이지만 이미 2승을 거두면서 신인왕과 올해의 선수상을 동시 석권할 수 있는 후보 1순위에 이름을 올리며 가능성을 키우고 있다.

골프는 1900년 제 2회 파리올림픽에 처음 채택된 이후 1904년 제 3회 세인트루이스 올림픽을 끝으로 올림픽무대에서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최근 골프 인기에 힘입어 2009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2006년 리우데자네이루와 2020년 도쿄올림픽 정식 종목에 골프를 포함시키면서 골프선수들은 올림픽 꿈을 이루게 됐다.
올림픽에는 단체전이 없고 남녀 개인전 금·은·동메달 1개씩 걸려 있다. 72홀 스트로크 플레이로 우승자를 가린다.
올림픽 출전은 개최 한 달 전인 2016년 7월 11일 기준으로 남녀 상위 60명이 출전을 하게 된다. 기준은 국제골프연맹(IGF)이 매주 발표하는 올림픽 랭킹에 따른다. 다만 국가별 편차가 큰 탓에 세계랭킹 15위 내 선수는 국가별 4명까지만 출전할 수 있다. 16위부터는 국가당 2명의 선수만 출전할 수 있다.
규정에 따르면 한국여자골퍼는 지난 23일 현재 4명(박인비, 김효주, 유소연, 양희영)이 세계랭킹 15위 안에 들어 있어 국가대표로 자동출전할 수 있다. 다만 앞으로 14개월이 남은 만큼 올림픽 티켓을 놓고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 현재 16위에는 김세영이 자리잡고 있고 세계랭킹 30위 안에는 12명, 50위안에는 21명이나 포진하고 있어 누가 최종 주인공이 될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김세영은 롯데챔피언십에서 우승한 후 “LPGA로 옮긴 진짜 이유는 올림픽 출전의 꿈을 이루기 위한 것”이라고 밝힐 정도여서 한국선수들의 금메달을 향한 의지는 굳건하다. 이에 LPGA의 열기가 2016년 리우올림픽까지 연결돼 있어 골프팬들은 여느 때보다도 행복한 시즌을 감상할 수 있게 됐다.
todida@ilyoseoul.co.kr
김종현 기자 todida@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