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박시은 기자]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 겸 중앙대학교(이하 중앙대) 재단 이사장이 모든 보직에서 물러났다. 중앙대 교수들에게 메일로 “목을 쳐주겠다” 등의 막말을 한 것이 발단이 됐다. 박 이사장은 과거에도 수시로 막말 이메일을 보낸 것으로 알려진다. 이 사실이 밝혀지자 여론은 ‘대학판 조현아 사건’이라며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또 이번 사건을 계기로 조현아를 비롯한 재벌가들의 막말 논란이 재조명 되고 있다.
모든 보직 사퇴했지만 근본 해결 안 돼
이번 논란은 두산중공업 회장이자 중앙대 재단의 박용성 이사장이 교수들에게 보내는 메일에서 막말을 한 것이 발단이 됐다. 중앙대 학사개편에 반대하는 교수들에게 “그들(중앙대 교수대표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이 제 목을 쳐달라고 목을 길게 뺐는데 안 쳐주면 예의가 아니다”는 등의 내용이 담긴 이메일을 보낸 것이다.
또 박 이사장은 그동안 학과제 폐지 등 대학 구조조정에 반대해온 중앙대 비상대책위원회 교수들을 ‘Bidet委(비데위)’, ‘鳥頭(조두)’ 등으로 조롱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진다.
해당 사실이 알려지면서 박 이사장은 중앙대 이사장과 두산중공업 회장, 대한체육회 명예회장 등에서 모두 물러났다.
하지만 논란은 여전하다. 우선 박 이사장이 물러났다고 해도 중앙대 재단은 여전히 두산그룹이 장악하고 있어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이뤄지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중앙대 이사회는 고 박두병 두산그룹 초대 회장의 다섯 아들 중 셋째 박용성, 넷째 박용현, 다섯째 박용만 세 아들을 이사장과 이사로 두고 있다.
또 비대위가 사임을 요구하고 있는 이용구 중앙대 총장 역시 재단 이사진이 임명한 사람이며, 총 11명의 이사진 중 조남석 두산엔진 부사장과 이병수 두산기계 사장도 포함돼 있다. 박 이사장이 물러나도 두산가 사남과 오남을 비롯한 두산 사람들의 직책은 그대로인 것이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수원여자대학교, 상지대학교 등 이사회가 막강한 권력으로 전횡을 휘두른 사례를 떠올리며 중앙대도 박 이사장의 퇴진으로 내부에서 불거진 문제들을해결하긴 어렵다는 말이 나온다.
교수협의회와 학생공동대표위원회 측은 “박 전 이사장의 사퇴는 문제 해결이 되지 않는다”며 “학교 재단비리나 구조조정과 관련한 남은 문제에 대해 검찰 조사 등 사실관계를 명확히 따지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형사고발…사면초가
뿐만 아니라 중앙대 비대위는 지난 22일 기자회견을 열고 “박 이사장을 고발하겠다”고 선포했다.
비대위 관계자는 “박 이사장의 막말 파문은 한국 대학사회와 구성원들을 모욕하고 협박한 ‘대학판 조현아 사건’이다”며 “우리는 대학의 정신에 입각해 엄정하게 책임을 물을 것이다”고 밝혔다. 박 전 이사장이 교수들에게 퍼부은 막말은 명백히 현행법상 모욕죄와 협박죄에 해당하므로 법의 심판대에 세우겠다는 것이다.
또 “재벌이 사립대학을 당당하게 자기 소유물처럼 여기고 전횡을 휘두르고 있는 것”이라며 “박 전 이사장이 아직 유지하고 있는 이사직도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검찰도 박 전 이사장을 직접 조사한다는 방침을 정하고, 소환 시기를 검토 중이다.
검찰 측은 “중앙대 캠퍼스 통합과 적십자간호대 인수 등 박범훈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의 외압 의혹이 제기된 학교 정책에 박 이사장이 전권을 행사한 것으로 판단한다”며 “중앙대 이사회 회의록 분석과 이태희 재단 상임이사 등 참고인 조사 결과를 토대로 조만간 박 이사장을 소환할 계획이다”고 전했다.
특히 중앙대와 학교 법인 사이의 수상한 자금 흐름도 들여다보는 것으로 알려진다. 박범훈 전 수석의 비리 의혹 수사가 중앙대와 학교법인의 내부비리까지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박 이사장의 신분에 변동이 있을 수도 있다”며 박 이사장이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할 가능성도 내비쳤다.
이와 관련해 두산그룹 측은 “박용성 회장이 그동안 두산중공업의 경영에 직접적으로 참여해왔던 것이 아니므로 박 회장의 사퇴 후에도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또 “향후 후임 인선에 관한 논의는 당분간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박 이사장의 막말논란을 계기로 그간 재계에서 벌어진 막말논란이 재조명되고 있다. 특히 박 이사장의 논란이 ‘대학판 조현아 사건’으로 불리고 있어, 땅콩회항 사건에도 다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은 지난해 12월 뉴욕 JFK발 인천행 대한항공 여객기에서 승무원이 ‘마카다미아’ 땅콩을 봉지째 가져다 준 것을 이유로 난동을 부리고, 항공기를 되돌려 논란이 됐다.
이른바 땅콩회항 사건 후 조 전 부사장은 항공보안법상 항공기 항로변경 등 혐의로 원심과 항소심에서 모두 징역 3년을 구형받았다.
또 조 전 부사장의 동생인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도 땅콩회항 수사가 한창일 때 ‘반드시 복수하겠다’는 말을 조 전 부사장에게 문자메시지로 보내 홍역을 치른 바 있다. 당시 조 전무는 비판이 거세게 일자 사과와 용서를 구하는 것으로 사태를 봉합했다.
뿐만 아니라 최근 조 전 부사장의 아버지인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도 구설수에 올랐다.
땅콩회항 사건 후 임직원 간 소통 강화를 위해 만든 사내 게시판에 올라온 “본사 근무자들이 주차장을 이용하기 위해서 매달 1만8000원의 정기 요금을 내야 되는데, 다른 직원들은 공짜로 이용할 수 있다”는 글에 “회사가 직원들에게 주차장을 제공할 의무는 없다. 말 많은 주차장은 없애겠다”는 댓글이 달려 그 주인공이 조양호 회장이란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이에 대한항공 측은 “익명으로 운영되는 게시판이어서 누가 글을 썼는지 알 수 없다”며 “조 회장이 댓글을 달았다는 주장은 근거 없는 얘기다”고 밝혔다.
박시은 기자 seun897@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