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정수석 ·비서실장 문재인 정말 몰랐나?
민정수석 ·비서실장 문재인 정말 몰랐나?
  • 류제성 언론인
  • 입력 2015-04-27 09:27
  • 승인 2015.04.27 09:27
  • 호수 1095
  • 1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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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측근, 성완종 특사 개입 의혹
▲ photo@ilyoseoul.co.kr

차기 대권구도 요동…주자 득실계산 분주
김무성 대표는 골수 친박계 쳐내기 호기


[일요서울 | 류제성 언론인] ‘김무성 쾌청, 문재인 흐림’ 성완종 리스트 파문이 아직은 진행형이지만 현재 여야의 유력 대권주자 두 명의 득실은 극명한 차이가 있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남긴 쪽지에 여권 핵심 인사 8명의 이름이 올라 있어 처음엔 여당이 치명적 타격을 받게 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성 전 회장의 비밀장부에 야당 정치인도 포함됐다는 소문이 나돌면서 여야 모두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여기다 성 전 회장이 참여정부 시절 두 차례나 특별사면을 받은 사실이 알려지자 ‘노무현의 남자’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난감한 처지에 빠졌다.

성 전 회장은 2004년 김종필(JP) 총재가 이끌던 자민련에 불법 정치자금 16억 원을 제공한 혐의로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으나 2005년 5월 석가탄신일 특사를 받았다. 2007년 11월에도 행담도 개발 비리사건에 연루돼 징역 6개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지만 같은 해 12월 노무현 정부 마지막 특사 대상자에 턱걸이로 포함됐다.

민정수석과 비서실장 역할

문 대표는 성 전 회장의 첫 번째 특사 때 청와대에서 법무 업무를 관장하던 민정수석, 두 번째 특사 때는 청와대 참모들을 지휘하던 비서실장이었다. 한 정권에서 한 사람에게 두 번씩 특사를 하는 전례 없는 일이 벌어졌고, 그 집행의 중심부에 문 대표가 있었던 셈이다.

이에 대한 새정치연합의 해명은 궁색하다. 2005년 사면은 대선자금 및 지방선거와 관련한 대사면으로, 여야 인사들이 일괄 대상이었고 성 전 회장은 JP의 의견을 반영해서 포함시켰다는 주장이다. 또 2007년 사면은 당시 대선에서 승리한 이명박(MB) 대통령 당선인 측의 요청을 받아들인 결과였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성 전 회장의 사정을 잘 아는 지인 A씨는 “얼토당토 않은 말”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첫 번째와 두 번째 사면 모두 참여정부의 충청권 유력 인사 B씨가 개입한 것으로 안다. B씨와 성 전 회장을 연결시켜 준 고리 역시 충청 출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측근들이었다”고 필자에게 귀띔했다.

정치권 사정에 밝은 C씨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성격상 JP나 MB가 부탁한다고 부적격자를 두 번씩이나 사면했겠느냐”며 “특히 노무현 진보 정권에서 이명박 보수 정권으로 넘어 갈 때는 양쪽이 서로 살벌했다. 신(新)정권이 구(舊)정권에게 뭘 요청하거나 협조를 구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고 밝혔다.

실제로 그 때는 신구 정권의 인수인계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초기 청와대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D씨는 당시 필자에게 “청와대에 들어와 보고 깜짝 놀랐다. 통치에 필요한 참고 자료를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몽땅 가져가거나 폐기했더라. 캐비닛들이 텅텅 비어 있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런 상황에서 이명박 신 정부가 노무현 구 정부에게 특정인의 특사를 요청했다는 건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MB측을 정치적으로 배려?

그럼에도 문 대표는 여전히 책임을 MB 진영에 돌리고 있다. 그는 4월 23일 기자회견에서 “내가 보기에도 의혹을 가질 만하다”면서도 “그러나 퇴임하는 노무현 대통령이 후임 이명박 대통령 측을 정치적으로 배려한 것이다. 더러운 돈 받고 사면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특사 과정을 누구보다 소상하게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었으면서도 MB 측 누구에게서 정치적 배려를 요청받았는지에 대해선 말이 없었다. 추상적인 정치적 수사(修辭)만 나열했다. 유체이탈 화법이란 지적도 나왔다.

더구나 문 대표의 기자회견 주장은 말 바꾸기 논란도 낳았다. 처음엔 대통령 전권(專權) 사항인 특사 문제를 “법무부 소관”이라고 했다가 파장이 커지자 “이명박 배려”라고 책임을 전가했다.

문 대표의 말 바꾸기는 이전에도 자주 있었다. 최근에만 해도 “국회의원이 400명은 돼야 한다”고 했다가 논란이 일어나자 “장난스럽게 얘기한 것”이라고 태연스럽게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의 서해북방한계선(NLL) 포기나 사초(史草) 폐기 문제가 불거졌을 때도 계속 말을 바꿔 비판을 자초했다.

이번 성완종 리스트 파문에서도 문 대표는 대응방향을 명확하게 잡지 못하고 있다. 처음엔 진실규명을 위한 특검 도입에 대해 “필요하다면 할 수 있다”는 식으로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다 여당이 선제적으로 특검 얘기를 꺼내자 “특검 도입을 수용하기 바란다”며 박근혜 대통령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활용했다.

그나마도 수사의 공정성 확보를 위해서라며 기존 상설 특검제가 아니라 국회가 따로 특검법을 입법해야한다고 요구했다. 상설특검의 경우 특별검사를 대통령이 최종적으로 지명한다. 따라서 별도의 특검법 입법을 통해 특별검사를 임명하는 과정에서 야당의 목소리를 담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

문 대표의 대응에 참여정부 사람들, 즉 친노계는 엄호사격을 곳곳에서 보내고 있다. 그러나 비노계는 팔짱을 끼고 뒤편으로 물러 서 있는 모습이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이 의혹의 대상으로 떠오른 만큼 일단 지켜보겠다는 자세다.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 친노계가 위축될 경우 당의 주도권을 되찾아 야권의 대권구도까지 바꿀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문 대표가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여권 안에서 위상을 크게 높여가고 있다. 특히 애증 관계가 교차했던 박근혜 대통령이 힘을 실어주면서 여권을 통 털어 ‘넘버 2’의 위치를 굳히고 있다.

박 대통령이 4월 16일 중남미 순방을 떠나는 당일 출국 시간까지 늦춰가면서 김 대표를 청와대로 불러 독대를 갖고 “해외순방 중 국정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해 달라”고 당부한 일은 예사롭지 않다. 가장 어려운 시련에 부딪힌 박 대통령이 김 대표에게 ‘SOS’를 치며 의지하는 모습을 보인 셈이다.

이완구 총리의 사의표명 과정에서도 김 대표는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김 대표는 박 대통령과의 회동 직후 “대통령이 귀국 후 이 총리의 거취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건의를 박 대통령이 사실상 받아들였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이후 당내 비박계에서 ‘이완구 즉각 퇴진’ 목소리가 높아지자 김 대표는 일일이 전화를 걸어 “대통령이 귀국하는 일주일만 기다리자, 그것도 못 기다려주느냐”고 다독였다고 한다.

총리 사퇴 총대 멘 金대표

그러다 이 총리의 거짓말 논란이 불거져 일주일도 기다릴 수 없는 상황이 되자 김 대표는 다시 총대를 멨다. 그는 4·29 재보선 현장 최고위원회의에서 ‘이완구 퇴진 불가피’라는 당내 여론을 수렴한 뒤 청와대 이병기 비서실장에게 당론을 전했다. 이 실장은 즉각 해외순방 중인 박 대통령에게 이를 보고해 허락을 받아냈다. 이 과정에서 서청원·이정현 최고위원 등 당내 친박계의 견해는 철저하게 배제됐다.

김 대표가 여권 전체에서 실질적인 위기 관리자로 떠오르면서 국정운영 전반에 걸쳐 친박계의 입김은 현저히 줄어들고 있다. 가뜩이나 성완종 리스트에 핵심 인물들의 이름이 줄줄이 오르면서 의기소침했던 친박계는 뚜렷한 퇴조 현상을 보였다.

김 대표는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재보선 국면에서도 꾸준히 공무원연금개혁의 강력한 추진을 강조하는 건 박 대통령에게 더 가까이 다가서기 위한 노력이다. 공무원연금개혁은 박 대통령이 가장 관심을 갖는 국정과제다. 김 대표는 박 대통령 부재중에도 이 과제를 성실히 수행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성완종 리스트 파문의 끝이 어디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국정 현안을 모조리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돼버린 이번 파문이 여야 내부의 역학관계, 나아가 차기 대권구도까지 바꾸고 있다. 새누리당 일각에서 추진하는 ‘성완종 특사 국정조사’가 이뤄지면 차기 대통령 선호도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문 대표의 위상이 크게 추락할 가능성도 있다.
ilyo@ilyoseoul.co.kr

 

류제성 언론인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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