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완종-반기문 관계 미스터리… 특별하다 vs 아니다
이완구 총리와는? 안면도 사업 입찰 실패로 ‘갈등관계’
호-충 연대, 제2의 DJP 연대 노렸던 성완종, 결국 실패로
[일요서울ㅣ박형남 기자]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폭로가 정치권을 뒤흔들고 있다. 성 전 회장이 이완구 국무총리, 홍준표 경남지사, 홍문종 의원 등에게 금품을 전달했다고 폭로한 것에 대한 진실게임 양상이 벌어진 가운데 ‘성완종 리스트’에 대한 검찰 수사는 전광석화다. 당시 성 전 회장은 ‘이완구-청와대 합작’ 하에 검찰 수사가 진행됐다며 반기문 UN사무총장을 견제하기 위해 기획수사를 벌였다고 주장했다. 충청도 출신인 반 총장을 도운 것이 결정적인 요인이었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충청권 맹주’ 자리를 놓고 이 총리가 반 총장을 의식, 반 총장과 가까운 성 전 회장을 겨냥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 총리는 “심한 오해”라고 선을 그었고, 반 총장도 특별한 사이가 아니라고 말했다. 성 전 회장의 주장에 대해 양측은 극구 부인한 셈이다. 그 내막을 살펴봤다.
대권주자들에게 지역기반은 든든한 우군이다. 3김 시대를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김영삼(영남), 김대중(호남), 김종필(충청) 등 이들은 오랜 세월 권력을 향유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3김이 정치 일선에서 물러난 뒤 보스정치, 지역감정 등 한국정치의 고질적 병폐가 다소 해소됐다. 하지만 차기 대권을 꿈꾸는 이들은 여전히 출생지나 연고지를 내세워 정치적 지지기반으로 활용하고자 한다. 이러한 의견에 정치인들은 부인하지 못한다.
‘반기문 견제’ 왜
성 전 회장이 '반기문 견제'를 거론하며 이완구 총리가 검찰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발언한 것을 볼 때 다분히 차기 대선을 위한 정치적 기반 확보 차원으로 볼 수 있다. 반 총장과 이 총리는 지지기반을 놓고 경쟁할 수밖에 없다. 여기엔 ‘충청’이라는 태생적 한계가 자리 잡고 있다. 이 총리의 고향은 충남 청양이고, 반 총장은 충북 음성 출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차기 대권 행보를 위해서는 ‘충청’이라는 지지기반을 확고히 할 수밖에 없다. 진정한 ‘충청 맹주’가 되기 위해서는 둘 중 한 사람은 그 자리를 내줄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이 총리가 반 총장을 견제하기 위해 반 총장과 가까운 성 전 회장을 겨냥한 것 아니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실제 성 전 회장은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반기문을 의식해 (이완구 총리가) 계속 그렇게 나왔다. 반기문과 가까운 건 사실이고…”라고 주장했다.
성 전 회장은 이 총리가 견제하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반기문을 의식해 계속 그렇게 나왔다”고 말했다.
또 당시 이완구 의원과 이 같은 부분에 대해 대화를 나눌 때 ‘까칠하게 얘기하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말했다.
이 총리에 대해 성 전 회장은 “너무 욕심이 많다”며 “너무 남들을 나쁘게 이용한다”고 폭로했다. 결국 성 전 회장은 충청 지역 기반으로 차기 대권에 도전을 위해 반 총장이 대권 주자로 부상하는 것을 막으려고 했던 것이다. 이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경남기업에 대한 검찰수사가 진행됐다는 것. 이를 뒤집어 보면 ‘충청 맹주’ 만들기를 놓고 성 전 회장과 이 총리는 갈등이 있었다는 얘기와 일맥상통한다.
눈에 띄는 점은 두 사람의 갈등은 오래전부터 시작됐다는 것이다. 성 전 회장은 경남기업이 고향인 안면도 관광개발사업자 입찰에서 탈락하자 충남도를 상대로 소송까지 벌였다. 충청포럼에도 이 총리는 가입하지 않았다.
꼬이고 꼬인 인간관계
성 전 회장은 이 총리와는 달리 반 총장과의 관계는 어땠을까. 반 총장은 '특별한 관계'가 아니라고 선을 긋고 있지만 성 전 회장 주변에서는 반 총장과 가까운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실제 성 전 회장은 지난 2012년 10월 30일, 반기문 가족과 오찬을 했다. 뿐만 아니라 2013년 8월 26~27일에도 반 총장을 롯데호텔에서 개인적으로 만났을 정도다. 게다가 반 총장의 동생이 경남기업 고문으로 근무했고, 성 전 회장이 주도한 충청포럼의 창립 멤버다.
일련의 관계로 인해 성 전 회장은 여야 정치인들에게 ‘반기문 대망론’을 자주 거론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해 의원직을 상실했을 때도 성 전 회장은 “반 총장이 올 때를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심지어 성 전 회장 측근들도 의원직을 상실했을 때 여당 실세들에 대한 서운함이 컸다는 후문이다. 이후 야권에서 반기문 영입론이 불거졌다.
지난해 11월 새정치민주연합 권노갑 상임고문이 자신의 회고록 출판기념회에서 “반 총장 쪽에서 (반 총장이) 새정치연합 쪽 대선후보로 나왔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타진해 왔다”면서 “반 총장 측근들이 얘기한 시점은 6개월 전이었고 최근에도 있었다”고 말했다.
동교동계 이훈평 전 의원은 당시 권 고문이 언급한 ‘최근’에 만났다는 인사가 성 전 회장이었다고 말했다. 이 전 의원은 “출판기념회 전, 성 회장 쪽에서 권 고문에게 만나자고 연락을 해 만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당시 성 회장이 반 총장 (대선후보 만들기에) 다하는 것처럼 하고 다녔다”고설명 했다.
특히 성 전 회장은 ‘반기문 대망론’을 띄울 구체적인 복안도 생각했던 것으로 확인했다. 과거 김대중-김종필의 ‘DJP연합’으로 대선에서 승리했던 것처럼 반 총장을 중심으로 ‘호남-충청 연대론’을 강조, ‘제2의 DJP연합’을 구상했던 것이다.
새정치연합 박지원 의원은 “성 회장이 제3자를 통해 만남을 요청했지만 거절했다”고 밝혔다. 이어 “반 총장과 동교동이 손을 잡는 ‘뉴 DJP연합’을 성 회장이 언급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반 총장이 우리 당으로 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데 그를 만나면 상황이 이상해질 수 있다고 판단해 만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성 회장 외에도) 충청권, 개신교계, 그리고 외교관들도 반 총장을 대선후보로 추대하는 세력”이라며 “그 사람들은 새누리당은 이미 대선후보 경선 틀이 짜여 있지만 새정치연합은 호남과 힘을 합치면 (반 총장이) 이길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고 전했다. 결과론적으로 성 전 회장은 반 총장 띄우기에 나섰고, 이 총리는 반기문 대망론을 견제하는 관계였다는 사실이 세간에 알려지고 있다.
이에 대해 반 총장은 16일(현지시간) 오전 미국 워싱턴DC에서 연합뉴스 기자와 만나 “이번 사안은 나와 전혀 관계가 없다”며 “(성 전 회장을) ‘충청포럼’ 등 공식석상에서 본 적이 있고 알고 있지만 특별한 관계는 아니다”고 말했다.
충청 민심 어쩌나
어찌 됐든 성 전 회장의 폭로로 인해 ‘충청권 대망론’이 사그라들게 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 총리는 반 총장 견제를 위해 검찰 수사했다는 의혹과 함께 2013년 재보궐 선거 때 성 전 회장으로부터 3천만 원을 받은 의혹을 받고 있다. 이 과정에서 ‘거짓말 논란’이 불거지면서 여권 내에서 ‘이완구 자진사퇴론’이 불거지는 단초를 제공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여권 한 관계자는 “성 전 회장으로부터 3천만 원을 받았다는 의혹보다 해명과정에서 보여준 거짓말이 더 더욱이 문제”라며 “누가 이 총리의 말을 믿고, 듣겠느냐. 사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반 총장 또한 부담을 안게 됐다. 대선 후보로 거론된다고 해도 성 전 회장과의 관계에 대한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반 총장은 16일(현지 시각) 워싱턴 DC 내셔널프레스클럽에서 열린 만찬 연설 질의응답 시간에 “은퇴 후 '008 요원'으로 일하거나, 아내와 근사한 식당에 가서 맛있는 요리를 먹거나, 손자녀들을 돌보며 살고 싶다”며 대선 출마 가능성을 차단했다. 결국 성 전 회장의 폭로로 인해 현실화될 것처럼 보였던 ‘충청 대망론’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됐다는 평가가 해석이 주를 이루고 있다.
7122love@ilyoseoul.co.kr
박형남 기자 7122love@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