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ㅣ 이범희 기자]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서울시내 면세점 사업권 획득을 위해 동맹을 맺어 주위를 깜짝 놀라게 했다.
경쟁기업이던 두 기업의 이번 협약으로 정 회장은 조카인 정지선 현대백화점 회장과 면세점 사업권을 놓고 경쟁을 피할 수 없게 됐고, 이 사장은 사촌인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과 마찰이 불가피해졌다. 때문에 적과의 동침으로 두 회사가 노린 게 무엇이냐는 의구심도 커지는 상황이다.
정몽규vs정지선, 이부진vs정용진 대결구도 예상
노하우 공유하고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보완
두 회사는 “초기 자본금으로 각각 10억 원씩 투자해 면세점 업체인 HDC신라면세점㈜을 세우고 서울 시내 면세점 사업권 획득을 공동추진키로 했다"고 지난 12일 밝혔다. 이를 토대로 올 하반기 결정되는 서울 시내 면세점 사업권을 따내 공동 운영을 하겠다는 것. 사장단 구성도 공동대표 체제로 운영하기로 했다.
두 회사는 “면세점 후보지는 현대산업개발의 백화점인 아이파크몰의 4개층"이라며 “국내 최대 규모 시내 면세점인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면적 1만1000㎡)보다 큰 규모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업계 안팎에서는 이번 양사의 협력 선언은 ‘전격적'이다 못해 파격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현대산업개발이 같은 현대家에 속하는 현대백화점그룹이 아닌 호텔신라를 선택하고, 호텔신라는 범 삼성가인 신세계그룹이 아닌 현대산업개발을 골랐다는 점에서 재계에선 매우 이례적이라는 반응이다.
그도 그럴 것이 정몽규 회장(당숙)과 정지선 회장(조카)은 5촌지간이다. 정몽규 회장의 아버지인 고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은 정지선 회장의 할아버지인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동생이다. 따라서 조카와 경쟁이 불가피한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마찬가지로 이 사장의 사촌이 정용진 부회장이다. 정 부회장이 이끄는 신세계도 최근 이 사장의 ‘텃밭'인 면세점 사업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 사장의 아버지인 이건희 회장과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은 남매간이다. 이명희 회장은 정재운 신세계 명예회장 사이 장남인 정용진 부회장과 정유경 부사장 남매를 뒀다.
두마리 토끼 잡았다
그동안 현대산업개발은 면세점을 운영한 경험이 없다는 게 단점으로 지적돼 왔다. 그래서 국내뿐 아니라 외국계 면세 사업자를 접촉하며 사업 파트너를 물색해왔다.
정몽규 회장은 지난 1월 기자간담회에서도 서울시내 면세점 사업권 경쟁에 참여할 뜻을 강조하며 의지를 피력했다. 정몽규 회장은 이날 “용산이 발전 가능성과 지리적인 강점을 갖추고 있어 관광중심지로 떠오르고 있다”며 면세점 사업지를 아이파크몰로 삼겠다는 전략까지 밝혔다.
이 시기에 ‘5촌 조카’ 정지선 회장 역시 면세점 사업 추진을 위해 별도법인 설립을 계획할 정도로 면세점 사업 육성에 역량을 집중해왔다. 때문에 당숙과 조카가 서울시내 면세점 사업 진출 의지를 밝히면서 업계에서는 두 회사가 공동 목표를 위해 손을 잡을 것이라는 분석이 이목을 끌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정몽규 회장은 이부진 사장과 뜻을 모았다.
이를 두고 업계는 정몽규 회장이 ‘현대가’가 아닌 ‘삼성가’와 동업자 전략을 세운데 대해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하고 있다. 먼저 정몽규 회장이 호텔신라에 ‘입지’를 제공하고 ‘면세점 운영 노하우’를 취하는 전략을 택했다는 것.
그동안 이부진 사장은 현대산업개발의 입지적 강점을 가장 높이 산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정몽규 회장이 조카인 정지선 회장과 직접적인 경쟁을 피하려는 전략을 택했다고 업계는 보고 있다.
또 대기업 독점 가속화
일각에선 면세점 사업이 또 다시 대기업의 독점 사업이 됐다는 점에서 볼멘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대기업의 참여 허용으로 독과점은 더 가속화 될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특히 인천광역시 등 지방 주요 도시에서는 균형발전 차원에서 지방 면세점 확대도 적극 요구하고 있다.
그렇다면 유통대기업들이 면세점에 목을 매는 이유는 무엇일까. 업계는 수치가 이를 잘 설명해 준다 전한다.
경기 침체 등으로 백화점과 대형마트 등 유통업계 주력사업의 성장이 주춤해진 가운데 면세점의 중국인 관광객 매출이 급증하고 있어 시내 면세점은 새로운 블루오션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것 지난해 전국 면세점 총 매출액은 8조3000억 원. 전년대비 매출 신장률이 21.6%에 이른다. 이중 시내면세점 매출이 5조4000억 원으로 전년대비 32.2% 증가했다.
이 때문에 협약으로 도화선이 된 재계 ‘면세점 대전'이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지 벌써부터 이목이 쏠린다.
이범희 기자 skycro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