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Y 균열 본격화] 각자 목소리, 차기 대권 양상도
[ K-Y 균열 본격화] 각자 목소리, 차기 대권 양상도
  • 류제성 언론인
  • 입력 2015-04-20 10:13
  • 승인 2015.04.20 10:13
  • 호수 1094
  • 10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photo@ilyoseoul.co.kr

변화의 보수로 보폭 넓혀…원조 친박들 분화
차기 대권 놓고 PK 대 TK 대결 양상도

[일요서울 | 류제성 언론인]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6일 9박 12일 일정의 남미 순방을 위해 출국하기 직전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를 급히 찾았다. 곧바로 ‘성완종 리스트’ 파문 수습책을 논의하고 국내 부재 기간에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논의하기 위한 자리가 마련됐다. 원래대로라면 대통령이 국무총리를 불러 해외순방 기간의 내치(內治)를 당부하는 게 정상적이다. 하지만 이완구 총리는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에게서 3천만 원을 받은 의혹을 사는 바람에 ‘식물 총리’ 신세다. 박 대통령은 총리 대신 여당 대표에게 내치를 맡긴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그날 김 대표의 참모들은 쾌재를 불렀다. 저녁에는 삼삼오오 모여 술자리를 가지면서 ‘박근혜-김무성 4·16 전격회동’의 의미를 되새겼다. 애증의 관계를 반복하던 두 사람이 다시 뭉치는 계기가 됐다는 말들이 오갔다. 김 대표의 한 측근은 필자에게 “박 대통령이 최대 위기에 몰린 상황에서 김 대표에게 SOS를 쳤다고 봐야 한다”며 “장기적으론 ‘포스트 박근혜’ 구도와도 맞물려 있는 뜻 깊은 만남”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지난해 7·14 전당대회를 통해 당권을 잡은 뒤 한때 의욕 넘치는 활동을 벌였으나 이내 주춤해진 상태였다. 지난해 10월 중국 상하이를 방문한 자리에서의 ‘개헌 봇물론’ 발언이 발목을 잡았다. 박 대통령이 ‘개헌논의는 블랙홀’이라며 공론화 자제를 당부했음에도 불쑥 나온 이 발언에 대해 당시 청와대 윤두현 홍보수석은 김 대표에게 경고성 멘트를 날렸다. 이는 박 대통령의 의중이 실린 것으로 해석됐다. 김 대표는 즉각 “저의 불찰이었다”며 고개를 숙였다.

“김무성 대표에게 SOS”

이후 김 대표는 처음의 기개와는 전혀 딴판으로 박 대통령에게 자세를 낮추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자 호흡을 고르고 있던 당내 친박계의 김 대표에 대한 공격도 본격화 됐다. 특히 홍문종·윤상현·김재원 의원 등 친박 핵심 의원들은 사사건건 김 대표의 당 운영에 시비를 걸었다.

코너로 몰려가던 김 대표가 다시 활력을 찾은 건 지난 2월 2일 열린 새누리당 원내대표 경선 결과 유승민 의원이 원내사령탑에 오르면서부터다. 유승민 원내대표는 김 대표와 마찬가지로 한때 박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었으나 지금은 비박계로 분류된다. 유 원내대표가 ‘당 중심 국정운영’을 기치로 내걸어 친박계 이주영 의원을 꺾고 당선되자 김 대표는 천군만마를 얻은 듯했다.

당장 언론에선 ‘K-Y(김무성-유승민) 라인’이 친박계를 제압하고 당을 장악할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로 두 사람은 초기에 굳건한 동맹관계를 구축했다. 박 대통령이 친박계인 윤상현·김재원 의원과 친이계인 주호영 의원을 정무특보로 전격 발탁한 것도 ‘K-Y 라인’ 견제용’으로 해석됐다.

그러나 ‘K-Y 동맹’은 애초부터 시한부일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이 ‘원조 친박’으로 2007년 대선후보 경선 캠프 등에서 한솥밥을 먹기는 했지만 출신 성분과 개인 캐릭터, 정치성향 모두에서 뚜렷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KY동맹 애초부터 시한부

먼저 지역적 연고만 봐도 김 대표는 PK(부산·경남), 유 원내대표는 TK(대구·경북)를 각각 대표하는 정치인이다. 정치적 뿌리도 다르다. 김 대표는 김영삼 전 대통령 문하에서 정치를 배운 민주계 출신이고, 유 원내대표는 아버지(유수호)가 민정당 국회의원을 지낸 만큼 민정계 정서와 가깝다. 또 김 대표가 호방한 보스 스타일이라면, 유 원내대표는 치밀한 전략가 스타일이다.

실제로 유 원내대표는 취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유승민 만의 색깔 내기’에 나섰다. 당내 친박계와 친이계는 물론, 김 대표와도 차별화 하는 모습을 보였다. 최근 정국을 강타한 ‘성완종 리스트’ 파문의 수습 방식에서도 독자 목소리를 냈다. 김 대표가 ‘선(先) 검찰 수사, 후(後) 특검’에 무게를 둔 반면, 유 원내대표는 선제적으로 “특검도 피하지 말아야 한다”고 치고 나갔다.

‘유승민 식 정치’의 압권은 지난 8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이었다. 그는 이 자리에서 ‘경제는 중도, 안보는 보수’라는 자신만의 노선을 정립했다.

“새누리당의 대선공약이었던 134조원의 공약 가계부를 더 이상 지킬 수 없다는 점을 반성한다.”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임이 입증되고 있다.” “어제의 새누리당이 경제성장과 자유시장경제에 치우친 정당이었다면 내일의 새누리당은 성장과 복지의 균형발전을 추구하는 정당이 될 것이다.” “양극화 해소를 시대의 과제로 제시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통찰을 높이 평가한다.”

연설이 끝나자 여당뿐 아니라 야당 의석에서도 많은 박수가 쏟아졌다. 새정치민주연합 유은혜 대변인은 “우리나라의 보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여준 명연설”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새누리당에선 평가가 엇갈렸다. “신선했다”는 반응이 나온 반면, “너무 앞서 나간 것 아니냐”는 부정적 시각도 있었다. 어쨌든 유 원내대표로선 자신의 존재감을 뚜렷이 각인시키는 성과를 거둔 연설이었다.

앞서 국회에서 졸속처리된 ‘김영란법’에 대해서도 유 원내대표는 김 대표와 차별화된 발언들을 쏟아냈다. 국회 입법은 원내사령탑 소관이란 점을 들어 1년 반 동안의 유예 기간 동안 입법 보완에 나서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대통령이 현역 여당 국회의원들을 정무특보로 기용했을 때나 이병기 국정원장을 비서실장으로 발탁했을 때도 유 원내대표는 김 대표보다 더 강경한 목소리를 냈다.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SSAD) 한반도 배치의 공론화 문제 역시 국회 국방위원장 출신인 유 원내대표의 전향적 입장이 돋보였다.

유 원내대표가 각종 현안을 놓고 선제적으로 치고 나가는 모습을 보이자 정가에선 ‘유승민 대망론’이 회자되기도 한다. 여권에선 김 대표 외에 뚜렷한 차기 대권주자가 없는 상황에서 유 원내대표에게도 기회가 생기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다. 혹은 지금 몸값을 한껏 올려놓고 차차기를 도모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은 “고정적, 폐쇄적, 이념중심적 보수가 아니라 변화의 보수, 유연한 보수, 사람중심적 보수를 얘기한 유 원내대표의 연설은 새로운 변화의 입구로 훗날 기억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몸값 올리며 차차기 도모?

유 원내대표가 새로운 보수의 가치를 들고 활동 보폭을 넓히자 상대적으로 김 대표의 위상은 떨어지는 측면이 있었다. 가뜩이나 대선후보 지지율 정체로 고민하던 김무성 캠프에게는 돌파구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런 시점에 ‘성완종 리스트’ 파문이 터지고 결과적으로 박 대통령이 김 대표에게 SOS를 치는 모습을 보이자 김무성 캠프에는 다시 활기가 돌고 있다.

김 대표는 지난 2월 이완구 총리 취임과 이병기 비서실장 등장으로 여권에 새로운 진용이 들어서자 “당정청은 국정의 오케스트라가 돼 최상의 하모니를 만들어 국민을 편안하게 해야 한다”며 당정청의 화합을 강조했다. 그러나 ‘성완종 리스트’에 이 총리와 이 실장이 들어가자 “고위 당정청 회의를 할 생각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유 원내대표와 마찬가지로 ‘김무성만의 노선’을 걸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 셈이다.

김 대표의 핵심 측근은 “그동안 김 대표가 의기소침했던 것이 사실이다. 박근혜 정부 초반부터 주변에 사람이 모여들면서 청와대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가신 출신 비서관 3인방으로부터도 견제를 받았다. 그러나 박 대통령과의 첫 독대로 전환점이 마련됐다고 본다”고 밝혔다.

결국 ‘성완종 리스트’ 파문으로 김 대표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생긴 셈이다. 더구나 여권의 차기 대권 경쟁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이번에 큰 타격을 받았다. 이완구 총리는 물론이고, 성완종 회장으로부터 1억원을 받은 혐의로 수사대상이 된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대권주자 반열에서 사실상 탈락했다. 장외 대권주자로 인식되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성 전 회장이 “충청권 주자로 옹립하겠다”고 여러 곳에 말하고 다니는 바람에 정치적으로 상처를 입었다.

김 대표로선 본인이 처신하기에 따라 박 대통령의 후원을 다시 받으면서 여권의 독보적인 대권주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셈이다. 이는 곧 ‘K-Y 라인’ 가운데 ‘Y’(유승민)의 지원 없이도 친박계와 맞서 겨룰 수 있는 힘이 주어졌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상대적으로 유 원내대표의 존재감은 가려질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여건 변화는 ‘K-Y 라인’의 균열을 가속화 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김 대표에게 힘이 실릴수록 유 원내대표는 또 다른 강수를 둘 것으로 관측되는 까닭이다. 유 원내대표의 한 측근은 “앞으로 대통령 정무특보를 비롯한 친박계 핵심들의 당무 간섭에도 앞장서서 저지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K-Y 라인’의 균열은 곧 PK(김무성)와 TK(유승민)의 대치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PK와 TK는 같은 영남권이지만 라이벌 의식이 강하다. PK에선 김 대표 외에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차기 대권주자로 꼽혔다. 하지만 홍 지사는 중도 탈락한 상태다. PK 입장에선 김 대표를 중심으로 똘똘 뭉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따라서 김무성을 앞세운 PK와 유승민을 중심으로 하는 TK가 영남패권을 놓고 정치적 힘겨루기를 벌이는 국면으로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
ilyo@ilyoseoul.co.kr 

류제성 언론인 ilyo@ilyoseoul.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