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박시은 기자] 안심주유소 출범을 두고 정부와 주유업계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석유관리원이 직접 품질을 인증하고, 피해가 발생했을 때 보상하겠다는 취지지만 ‘편 가르기’라는 지적이다. 가짜 석유 근절을 위해서 필요한 규제나 감독 강화가 아니라 시장을 양분화 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안심주유소’ 간판이 없는 곳은 ‘가짜 석유를 파는 곳’이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뿐만 아니라 기존 석유품질 보증프로그램과 차별성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존 보증 프로그램과 차별성 미미
산업통상자원부와 석유관리원은 지난 8일 경부고속도로 하행선 만남의 광장 주유소와 안심주유소 1호점 협약식을 가졌다.
가짜석유 신고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12년 1607건, 2013년 1602건었던 신고건수는 지난해 약 2000건까지 증가했다.
이에 정부는 가짜석유 근절을 위해 안심주유소를 도입했다. 석유관리원이 석유제품의 품질을 인증하고, 가짜 석유 등으로 인한 피해가 발생할 경우 이를 보상하는 것이다.
현재 석유품질 인증프로그램(안심주유소 인증)에 가입돼 있는 주유소가 관련사항을 준수하면서 5년간 가짜석유 판매이력이 없을 경우 안심주유소 마크를 달 수 있다.
하지만 이를 놓고 주유소업계는 “전형적인 보여주기식 행정”이라며 거센 항의를 하고 있다. 가짜 석유를 근절하기 위해 규제나 감독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편가르기를 하며 기존 주유업자들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한다는 것이다.
또 석유품질 인증프로그램에 가입된 주유소는 전국 1만2000여개 주유소 중 286개에 불과하다. 안심주유소 지정 대상이 자가폴(자신의 간판으로 영업하는 주유소) 주유소와 알뜰주유소인 것이다. 때문에 전국 주유소 중 상당수를 차지하는 정유사폴과 정유사 직영 주유소는 애초에 안심주유소 검증대상에서 제외됐다는 설명이다.
서울에서 주유소를 운영하는 한 관계자는 “안심주유소란 말이 생기면 그 간판이 달리지 않은 곳에서는 가짜 석유를 판다고 생각할 수 있다”며 “정부가 나서서 시장을 양분화 시켜버리니 결국 시장만 혼란스러워 질 것이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4대 정유사로 불리는 브랜드 정유소들은 제외되고 알뜰주유소, PB주유소들만 안심주유소 지정 대상이 될 수 있는 것도 이해가 안 간다”며 “브랜드 주유소들은 가짜 석유를 팔고 있고, 브랜드 주유소가 아닌 곳은 진짜 석유를 판다고 나눠놓는 것 같다”고 전했다.
게다가 안심주유소 대상이 되는 알뜰주유소, PB주유소의 업주들 중 다수가 안심주유소에 관해 제대로 알지 못하거나 정확한 정보를 갖고 있지 못한 것으로 알려진다.
서울의 한 알뜰주유소 관계자는 “안심주유소가 알뜰주유소처럼 가격이 낮은 주유소를 지칭하는 말인가 싶었다”며 “안심주유소가 어떻게 구체적으로 진행되는 일인지 아는 바가 없다”고 말했다.
또 “알뜰주유소 운영도 박리다매로 살아남는 중인데 안심주유소까지 생겼으니 걱정이 앞선다”고 덧붙였다.
혈세 낭비 논란도
기존 석유품질 보증프로그램과의 차별성에 대한 문제도 불거지고 있다. 안심주유소의 조건인 최근 5년간 가짜 석유를 취급하다 적발된 내역이 없고, 석유제품(등유·경유·휘발유) 수급거래 상황도 석유관리원에 전산 보고해야 하는 내용이 이미 2010년부터 운영 중인 석유품질보증 프로그램에 있는 내용인 것이다.
게다가 석유품질보증 프로그램 참여율이 25%에 불과해 실패한 제도로 인식되고 있다. 때문에 안심주유소 제도가 도입됐다고 하더라도 주유소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내기 어렵다는 전망이다.
뿐만 아니라 안심주유소로 등록하기 위해 주유소 당 연간 600만 원을 관리비 명목으로 내야한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관리비 명목으로 내야하는 돈 중 90%가 정부 예산이어서 혈세낭비라는 것이다.
더욱이 정부의 지원을 받더라도 주유소 사업자들이 연 60~70만 원을 자비로 부담해야한다는 점도 품질보증 참여 및 안심주유소 참여가 저조할 것이란 이유로 거론된다. 투자해야하는 것에 비해 석유품질보증 마크에 대한 소비자들의 이해도가 떨어져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주유소의 수급 거래 상황도 단말기 조작을 통한 조작 가능성이 있어 완전한 감시가 어렵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에 석유관리원 측은 내년부터 월 3회 이상 검사를 병행해 가짜 석유를 완전히 걸러내겠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3회로 늘어나는 검사 횟수만큼 비용도 3배로 증가해 논란이 예상된다.
또한 주유소를 이용하는 소비자들은 의심을 쉽게 거둘 수 없다는 시선을 보내고 있어 이를 극복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업계 관계자들은 “안심주유소를 만드는 것보다 기존의 품질보증부터 정착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주유 업자들 간의 편 가르기를 조장할 것이 아니라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가짜석유를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는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지 말라”는 요구도 나온다. 가짜석유를 팔다 적발되는 비율에서 일반주유소와 정부가 개입한 알뜰주유소의 차이가 없는데도, 그 책임을 일반주유소에만 지우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주유소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체 1만2475개 주유소 중 가짜 주유소 적발 건수는 1.4%로 전년 1.6%보다 감소했다.
한국주유소협회의 한 관계자는 “가짜 석유를 파는 주유소를 적발할 책임이 있는 정부가 일반주유소로 책임을 떠넘기고, 시장 개입만 하고 있다”며 “앞서 시행된 알뜰주유소의 경우에도 설문조사 대상자 중 57%가 유류세 인하가 더 효과적이라고 대답한 바 있다. 알뜰주유소때와 같은 문제가 반복되지 않길 바란다”고 전했다.
박시은 기자 seun897@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