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게임 2라운드 여대생 공기총 청부살인사건
진실게임 2라운드 여대생 공기총 청부살인사건
  • 우선미 기자
  • 입력 2010-02-02 10:36
  • 승인 2010.02.02 10:36
  • 호수 823
  • 1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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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가 사모님 윤 여인 "살인청부한 적 없다" 말 바꿔
지난 2002년 일명 ‘H양 사건’으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여대생 공기총 청부살인 사건’의 진실이 8년 만에 밝혀질 전망이다. 살인을 교사한 것으로 알려진 윤모 여인(66·영남제분 류원기 회장 전부인)이 결백을 주장하며 살해에 직접 가담한 조카 윤씨(49)등 공범 2명을 위증혐의로 고소한 것에 대해 이달 18일 법원의 판단이 내려질 예정이다.

윤 여인은 2004년 무기징역이 선고된 대법원 확정판결 이후에도 줄곧 “살인교사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억울함을 호소해왔다. 윤씨 등 공범 2명은 “윤 여인이 하모(당시 22세)양을 납치, 살해하라고 시켰고 도피자금도 대줬다”고 증언했었다. 그러나 윤씨 등은 대법원 상고 과정에서 “엉겁결에 살해했다”며 일부 진술을 번복해 윤 여인은 이를 근거로 윤씨 등의 위증 혐의를 제기한 것이다.

2008년 7월 대전고법은 윤 여인의 재정신청을 받아들여 최근까지 재판이 진행됐다. 만약 법원이 윤 여인의 손을 들어준다면 해당 사건은 청부살해가 아닌 우발적 살인사건으로 종결될 공산이 크다. 또 살인교사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 받은 윤 여인의 무죄방면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재벌 사모님에서 살인청부 의뢰자로

윤 여인은 이 사건으로 그동안 쌓아온 모든 것을 잃었다. ‘해바라기표 밀가루 시리즈’ 등으로 유명한 영남제분의 안주인이었던 그는 무기징역이 확정된 뒤 남편 류원기 회장과 갈라섰다. 재벌가 사모님에서 죄수로 타락한 윤 여인의 인생유전은 당시 언론을 뜨겁게 달궜었다.

경찰에 따르면 윤 여인은 지난 1999년 11월 서울지법 판사였던 사위의 불륜을 확인하고 사위와 내연관계인 하양을 제거하려 마음먹었다.

윤 여인은 조카 윤씨와 윤씨의 고교동창 김모(49)씨 등을 동원해 하양 살해를 지시하고 범행이후 이들의 도피를 도왔다는 게 당시 수사팀과 법원의 판단이었다.

수사과정에서 윤 여인이 하양을 여러 차례 감시하고 협박했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그는 지난 2001년 4월 하양의 부친에게 “딸 단속 잘해라. 이놈 저놈에게 붙어먹고 잘 사는가 보자”며 폭언을 퍼부어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하양을 살해하기까지는 3년이라는 적잖은 시간이 걸렸다. 경찰에 따르면 조카 윤씨 등은 2002년 3월 6일 오전 5시 37분께 서울 강남 하양의 자택 앞에서 그를 납치해 경기도 하남의 검단산으로 끌고가 공기총으로 살해했다.

하양의 행방이 묘연해지자 가족들이 실종신고를 냈고 열흘 뒤 하양은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당시 사건을 해결한 중요한 단서는 경비실 CCTV 녹화 기록이었다. 하양의 외삼촌인 설모 변호사가 하양의 납치 순간이 찍힌 감시 카메라 기록을 발견한 것이다.

테이프에는 범행 당일 집을 나서는 하양과 그 뒤를 몰래 따라가는 건장한 남성 두 명의 모습이 찍여 있었다. 이어 하양을 태운 차량도 카메라에 잡혔다.

윤 여인은 경찰이 수사에 착수하자 조카 윤씨 등을 해외로 도피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윤씨 등은 홍콩, 베트남, 중국 등지를 떠돌며 1년 가까이 도망자 생활을 했다. 이들의 도피자금도 윤 여인이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여인 계좌에서 2002년 6월과 9월 두 차례에 걸쳐 2억원이 넘는 뭉칫돈이 빠져나간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2004년 5월 대법원은 윤 여인과 조카 윤씨, 공범 김씨 등 3명에게 모두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그러나 이달 18일 청주지법의 판결 결과에 따라 그간 윤 여인의 혐의는 없던 일이 될 수도 있다.


가해자끼리 ‘추잡한’ 법정공방

이번 사건을 둘러싼 쟁점은 윤 여인이 살인을 직접 지시했는지 여부다. 그간 검·경찰 수사결과 윤 여인이 피해자를 제거할 의도가 있었다는 의심은 지울 수 없다. 더구나 숨진 피해자를 두고 가해자끼리 수년 째 추잡한 법정공방을 계속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론의 시선이 곱지 않다.

청주지법 형사합의11부(김연하 부장판사)는 지난 1월 24일 “무기징역이 확정돼 복역하던 회장 부인 윤모(65)씨가 공범인 조카(49)와 김모(49)씨를 위증 혐의로 고소한 사건과 관련, 심리절차를 모두 마쳤으며 다음달 18일 오후 2시 선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조카 윤씨는 “윤 여인이 피해자를 납치해 살해하도록 시켰고 도피자금도 받았다”고 진술했었다. 하지만 윤씨는 대법원 상고이유서에서 “둘 사이를 떼어 놓으려다가 엉겁결에 살해했다”고 진술을 번복했다.

윤 여인은 조카의 진술 번복을 근거 삼아 윤씨 등을 위증죄로 고소했으나 검찰은 “윤씨의 공범들이 위증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며 ‘혐의없음’ 처분을 내렸다. 항고, 재항고에서도 마찬가지 결론이 나왔다.

윤 여인은 지치지 않고 대전고법에 재정신청을 제기했고, 법원은 2008년 7월 “살인교사 시점에 의문이 든다”면서 윤 여인의 손을 들어줌에 따라 청주지법에서 재판이 진행돼 왔다.

만약 조카 윤씨 등이 위증을 하지 않았다는 판결이 나올 경우 윤 여인은 꼼짝없이 감옥에서 평생을 썩어야 한다. 그러나 위증 혐의가 인정되면 윤 여인은 대법원에서 확정된 살인교사 혐의에 대한 재심 청구가 가능해진다.

한편 형사소송법은 판결의 근거가 된 증언이 위조됐다는 사실이 법원에서 확정되면 최종 판결에 대한 재심청구가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영남제분 측 공식입장
“진실왜곡, 언론에 책임 묻겠다”


윤 여인이 한때 안주인으로 군림했던 영남제분 측은 해당 사건과 관계된 모든 질문에 극도로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이미 오너인 류원기 회장과 법적으로 남남이 된 마당에 기업의 실명이 공개돼 적잖은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일요서울]은 영남제분 핵심관계자를 통해 사건과 관계된 심경을 들어봤다.

-이번 사건과 관련한 영남제분의 공식 입장은 무엇인가.
▲ 회사는 그 사건과 관련이 없음으로, 공식이든 비공식이든 밝힐 입장이 없다. 2002년 당시 회사를 배경으로 한 기사에 대해서도 이 사건이 종결된 이후 해당 언론사에 대해 법적 조치를 취할 예정이다. 신중한 보도 부탁한다.

-숨진 피해자를 위해 도의적인 책임은 느끼지 않는가.
▲ 한때 가족이었던 분이 연루된 만큼 당연히 도의적 책임은 느끼고 있다. 미행 도중 뜻하지 않게 벌어진 사고에 피해자와 유족들께는 죄송한 마음을 갖고 있다. 그러나 각종 언론을 통해 진실이 왜곡돼 전달된 만큼 사실 여부는 명확하게 구분돼야 한다. 윤 여인은 억울하게 살인 누명을 쓰고 있는 만큼 온 가족의 명예회복을 위해서라도 법원의 정확한 판결을 기대하고 있다.

-현재 윤 여인의 상태는 어떤가.
▲ 몇 년 째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있는데 멀쩡할 리 있겠는가. 암을 비롯한 여러 질병에 합병증까지 겹쳐 당장 목숨을 걱정해야 할 입장이다.

- 2002년 사건이 벌어진 뒤 기업 이미지에 상당한 타격을 입은 것으로 안다.
▲ ‘청렴(淸廉)’과 ‘정도(正道)’가 우리 회사의 기본 모토였다. 그런데 언론의 무차별 보도와 선정적 접근으로 기업 이미지는 엉망이 됐다. 다수의 거래처가 “부도덕한 기업, 부도덕한 기업가와 거래하지 않겠다”며 거래를 끊었다. 영남제분이 언론에 비쳐진 것처럼 부도덕한 기업이라면 벌써 문을 닫았을 것이다. 우린 진실한 모습으로 소비자를 위해 헌신하고 있다. 제발 법원이 이번 판결에서 진실을 밝혀주길 기대한다.


## 일/문/일/답 사건 담당 수사관 오인묵 경기 광주서 형사과장

“윤 여인 살인교사, 정황증거 확실하다”

당시 하양 사건의 수사를 담당한 오인묵 경기 주경찰서 형사과장은 기자에게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괴로운 기억”이라며 말을 아꼈다. 그러면서도 윤 여인의 살인교사 혐의에 대해서만큼은 확실한 증거가 있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다음은 오 과장과의 일문일답이다

- “떠올리고 싶지 않을 만큼” 괴로운 이유가 뭔가.
▲ 법정공방으로 2년이 넘도록 여기저기서 시달렸다. 외부의 압박도 엄청났다. 너무 고통스러워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건이다.

- 윤 여인의 살인교사 혐의를 입증할 근거가 적지 않다고 알고 있다.
▲ 모든 정황과 증거가 윤 여인의 혐의를 입증하고 있다. 먼저 조카 윤씨와 공범 김씨가 윤 여인의 살인교사 혐의에 대해 명확히 진술했다. 또 윤 여인의 계좌기록과 사건 전 그가 피해자를 협박하는 등 갖가지 정황들이 있다.

- 그런데 왜 법원은 윤 여인의 재수사 요청을 들어줬는가.
▲ 이유는 간단하다. 2002년 사건 진술 당시 조카 윤씨와 김씨가 윤 여인으로부터 살인교사를 받은 내용 중 세세한 부분이 엇갈렸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윤 여인이 지시한 살해 일자와 방법, 지원금의 내용 자체가 조카 윤씨와 김씨 사이에 서로 일치하지 않았던 까닭이다. 법원이 정확한 판단을 내려줄 것이라 믿는다. 그것만이 망자의 억울한 한을 달래줄 수 있을 것이다.

[우선미 기자] wihtsm@dailysun.co.kr

우선미 기자 wihtsm@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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