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보좌진 세계 33] “진정·건의문 접수”(하편 )
[국회 보좌진 세계 33] “진정·건의문 접수”(하편 )
  • 홍준철 기자
  • 입력 2015-04-13 10:30
  • 승인 2015.04.13 10:30
  • 호수 1093
  • 49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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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 소싸움도 합법적 도박 인정…사행사업화
- 도박중독자 치유 모임 ‘단도박모임’ 첫 대면


강원랜드 카지노에서 무려 300억 원이 넘는 거액을 잃은 도박중독자는 19대 국회에서도 인연이 이어졌다. 지난 18대 국회 시절 진정서를 보냈던 그를 4년 뒤에 의원회관에서 다시 만났다. 어찌어찌 소식을 들었는지 몇 년 만에 전화가 다시 왔다. 의원실을 옮겼다고 하니 2012년 국정감사를 앞둔 시점에 찾아왔다. 국회 문화체육방송통신위원회 의정활동을 보좌하고 있을 때였다.

다시 찾아온 그는 ‘단도박모임’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단도박모임(GA, Gamblers Anonymous)은 ‘익명의 도박중독자들’이라는 뜻이다. 세계 모든 도박중독자의 자조 모임의 원명이다. 자신만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도박문제를 각종 프로그램과 서로의 경험, 공동체의 특별한 힘 등으로 치유하고 도와주려는 모임이다. 여기에는 가족모임도 있다. 도박중독자를 둔 가족들은 경제적 어려움은 물론 불안, 초조, 원망 등 정신적 괴로움을 겪기도 한다. 도박중독자를 가족으로 둔 사람들끼리 유대감을 갖고,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해 만든 모임이라고 한다.

‘단도박 모임에서 활동하는 회원을 난생 처음 대면했다. 일반인들 가운데는 도박중독자에 대한 선입견이나 편견이 있을 수 있다. 필자 역시 그런 생각이 전혀 없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을 만나고 생각이 달라졌다. 경제적 파산은 물론 심신이 피폐해지고, 가족까지 힘들게 하는 도박중독자들을 치유하고 정상적인 생활로 복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몇 년 만에 다시 만난 그 진정인은 낯선 중년여성분과 함께 찾아왔다. 다소 의아했다. 그분 역시 단도박 가족모임으로 활동 중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놀랍게도 교감선생님 출신이었다. 자신의 배우자가 도박중독에 빠져 단도박 가족모임에서 활동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정부와 사행산업 감독기관을 원망했다. 자신의 처지와 도박중독자 가족의 고통을 언급했다.

도박중독자를 양산하는 사행산업의 폐해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들과 긴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었다. 그분들은 국정감사에서 재차 사행산업의 폐해와 대책을 추궁해 달라고 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는 결심했다. 그분들의 이야기를 감독당국에 들려주고 싶었다. 도박중독자와 가족들이 겪은 고통을 듣는다면 사행산업의 폐해를 더 절실하게 느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교감 출신도 도박중독 방문

국정감사를 앞두고 본격 자료수집에 나섰다. 카지노 말고도 대표적인 또 하나의 사행산업인 경마도 들여다봤다. 한국마사회가 운영하는 경마 역시 도심 곳곳에까지 진출한 장외발매소 등으로 도박중독자를 양산하고 있었다. 피감기관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경마에서도 1인당 한도액 초과사례가 상당수 적발되었다. 또한 강원랜드 카지노에서만 100억 원이 넘는 거액의 가산을 탕진한 도박중독자만 당시 15명이 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해 국정감사에서 강원랜드 대표이사, 한국마사회 회장, 단도박 모임 활동가 등을 증인과 참고인으로 함께 신청했다.

국내 사행산업계는 발칵 뒤집어졌다. 강원랜드는 국정감사 대상기관에서도 빠져 있어 넋놓고 있다가 느닷없이 강펀치를 맞은 격이다. 실무자들이 증인신청에서 제외시켜 달라고 의원회관을 들락거렸지만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결국 당시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 국정감사 때 사행산업계 대표들과 단도박 모임 활동가들이 증인과 참고인으로 모두 불려 나왔다

증인 신청했으나 국회 파행 ‘무산’

하지만 난감한 사태가 벌어졌다. 당시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는 정부의 언론장악 사태에 대해 논쟁이 많았던 상임위였다. 매번 회의 때마다 입씨름이 이어졌다. 여·야 간 치열한 기싸움이 계속돼 국정감사 때까지 이어졌다. 당시 방송인사들의 증인출석 등을 놓고 힘겨누기를 하다가 끝내 국정감사가 파행에 이르렀다. 애꿎은 사행산업계의 증인·참고인들마저 국정감사에 임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매우 안타깝고 아쉬웠다. 국정감사장에서 사행산업의 폐해를 따지려 했던 게 물거품이 된 것이다. 이같은 사태는 결국 정치권과 국회의 책임이었다.

사행산업의 법적 의미는 인간의 사행심을 이용하여 이익을 추구하거나 관련된 재화나 서비스를 생산하는 산업을 의미한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법에서 규정하는 사행산업은 카지노업, 경마, 경륜, 경정, 복권, 체육진흥투표권, 소싸움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 심지어 몇 해 전에는 정부가 ‘전통 소싸움’마저 합법적인 도박산업으로 인정했다. 소싸움경기장에서 싸움소 간의 힘겨루기를 하는 전통 소싸움경기까지 거액을 걸고 도박을 하도록 하는 게 옳은 처사였는지 의문스럽다.

한편 강원랜드의 카지노는 건전한 사행산업을 통한 폐광지역 활성화라는 당초의 취지와는 달리 많이 퇴색했다.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했다. 강원랜드 자체는 물론 카지노의 인·허가와 관리감독을 담당하는 문화체육관광부,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 등의 책임도 상당하다. (주)강원랜드는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한국광해관리공단과 강원도에서 설립한 강원도 개발공사, 폐광지역 4개 시군(정선,태백,영월,삼척) 지방자치단체 등 공공부문이 51%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공공기관이다. 강원랜드는 스키장, 리조트 등을 운영하고 있지만 총매출액 가운데 절대액은 카지노가 차지한다. 결국 정부가 공공기관을 통해 사행심을 부추겨 도박중독자들을 양산하는 꼴이다.

지난 1995년 12월, 「폐광지역 개발지원에 관한 특별법(이하 폐특법)」을 제정해 석탄산업의 대체산업으로 관광산업을 육성한다는 명분으로 강원 사북에 내국인 출입가능 한 카지노를 설립했다. ‘폐특법’은 강원랜드 내국인 출입 카지노 운영의 법적 근거다. 1995년 10년 한시법으로 제정된 이후 시효가 2015년에 이어 2025년으로 두 차례나 연장됐다. 강원랜드 카지노 설립으로 인해 폐광지역이 경제적으로는 살아났는지는 몰라도 그 속을 들여다 보면 지역이 황폐화되지 않았나 싶다. 합법적인 사행산업임을 내세우고는 있지만 도박중독자는 물론 인근 지역사회에 얼마나 폐해가 있는지 곰곰이 짚어 봐야 한다. 분명 현지의 주민들도 느끼고 있을 것이다.

한편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는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법’ 제정으로 2007년 9월, 국무총리 소속으로 설치되었다. 그동안  ‘사행산업 건전발전 종합계획’을 수립해 사행산업 총량제를 도입하고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를 설치했다. 연간 75조원 규모에 달하는 불법사행산업을 근절하기 위해 불법사행산업 감시신고센터도 설치·운영하고 있다. 합법사행산업의 건전화, 불법사행산업 근절, 도박중독 예방 및 치료를 위해 노력한다고 하지만 심각한 도박중독의 실태를 감안하면 미흡하다. 도박중독의 폐해를 인식해 사행사업의 건전화에 더욱 노력해야 할 시점이다. 더 이상 정부가 도박중독자를 양산하거나, 방치해선 안 된다.
<김현목 보좌관>

 

홍준철 기자 mariocap@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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