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雪魔) 휩쓴 재난 책임공방 가열
‘설마’(雪魔) 휩쓴 재난 책임공방 가열
  • 이수영 기자
  • 입력 2010-01-12 10:42
  • 승인 2010.01.12 10:42
  • 호수 820
  • 1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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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 아비규환’ 와중 뜨뜻한 청사서 시무식 강행?
지난 4일 서울 등 중부지방을 강타한 ‘눈 폭탄’에 도시는 한주 내내 공포에 떨었다. 폭설과 함께 몰아닥친 한파로 전국이 얼어붙으면서 겨울 재난이 가져온 후유증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특히 거대한 아이스링크를 방불케 하는 도로상황과 툭하면 고장을 일으키는 전동차 탓에 ‘고난의 통근 길’을 경험한 시민들의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의 무능함과 관계자들의 안일한 판단착오가 기록적 폭설을 ‘재난’으로 키운 원흉이라는 데 대다수 국민들이 공감하는 탓이다.

평택 오산 등 일부 지자체에서는 폭설대란으로 시민들이 아비규환에 빠진 와중에도 제설작업은 뒤로한 채 시무식을 강행하는 등 상식 이하의 행동을 보였다. 이미 한 차례 폭설을 경험한 서울시도 영하 10도를 넘나드는 한파에서는 효과도 없는 염화칼슘을 수천 톤씩 펑펑 뿌렸다 낭패를 봤다. 경인년 벽두를 강타한 폭설재난의 책임소재를 따져봤다.

이번 폭설은 자연재해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고질적인 ‘한국형 인재(人災)’에 가깝다. 폭설을 둘러싼 기상청 오보와 지자체·방재당국의 늦장대처, 관련 기관들 간의 불협화음 등이 복잡하게 얽혀 피해를 키운 까닭이다.

100년 만에 25.8cm의 기록적인 폭설을 기록한 서울은 ‘대한민국 수도’라는 이름이 부끄러울 만큼 수준 낮은 대처능력을 보였다. 눈이 내릴 것이라는 예보가 잇따르자 서울시는 지난 3일 밤 주요도로에 미리 염화칼슘 3000톤을 뿌렸다.

하지만 그 뿐, 추가 제설작업에는 손을 놓고 있었다. 염화칼슘은 영하 3도 이하의 한파에서는 효과가 거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적설량이 17cm를 넘어선 아침 9시가 돼서야 부랴부랴 제설차를 투입한 것.


“대한민국 首都가 이 모양이니…”

이미 눈 폭탄을 맞은 도로위에 차가 제대로 움직일 리 만무했다. 이 같은 촌극에는 기상청의 엉터리 예보도 한몫했다. 기상청은 4일 서울의 신적설량이 2~7㎝ 수준이 될 것이라고 했지만 103년 만에 최대인 25.8㎝가 쌓였다.

그나마 제설작업이 된 대로는 사정이 나은 편이다. 주택가 이면도로나 고지대 서민들은 집 앞에 쌓인 눈을 치우고도 모래나 염화칼슘 등을 구할 길이 없어 잔설이 고스란히 얼음판이 되는 것을 구경하는 수밖에 없었다.

대한민국의 대표도시가 폭설 융단폭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가운데 다른 지방자치단체들의 상황은 비참하기까지 하다. 경기도 재난안전 본부에 따르면 평택·광명 등 일부 시·군 지역은 제설차량 자체가 없었다. 이날 평택은 24cm, 광명은 20cm의 눈이 쌓였다.

이들 지역은 폭설에 도로가 마비되자 허겁지겁 덤프트럭 등을 동원해 제설작업에 착수했다. 특히 평택·오산 등 일부 지자체는 제설작업은 내팽개치고 시무식을 강행해 공분을 사기도 했다.


대책 없는 ‘지각철’ 이유 있었다

무엇보다 전철을 이용해 서울로 출·퇴근하는 직장인들은 이번 폭설로 인해 지옥을 경험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로는 물론 대중교통망이 완전히 마비되다시피 한 지난 4일 출근포기사태가 잇달았고 수도권 전철의 고장·연착 사태는 지난 8일까지 이어졌다.

지난 4일 출근시간인 7시40분께 지하철 1호선 남영역 인근에서 전동차가 고장으로 멈추는 등 이날 하루 동안에만 수도권 전철 50여 편이 운행 파행을 겼었다. 문제는 이 같은 아비규환을 관계당국과 기관이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환승역을 함께 관리하는 서울메트로(1~4호선)와 코레일(국철 1호선)이 담당구역에 목을 매는 바람에 시민들은 얼음판으로 변한 계단을 위험천만하게 오가야했다. 지난 4일 폭설로 얼어붙은 신도림역 1번 출구는 눈이 그친 뒤에도 이틀 동안이나 방치됐다.

취재결과 메트로와 코레일은 각각 “담당 구역이 다르다”며 염화칼슘을 공유하지 않는 등 비상식적인 태도로 일관한 사실이 드러났다. 1호선을 담당한 코레일에는 염화칼슘이 남았지만 메트로에 빌려주지 않고 쟁여둔 것. 메트로는 인근 공사현장에서 소금을 빌려 응급조치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라고 입버릇처럼 말해온 서울시 등은 정작 지하철 이용객에 대한 배려를 전혀 하지 않았다. 한파에 얼어붙은 전동차 출입문은 수사로 고장을 일으켰고 지난 5일에는 승객을 가득 태운 1호선 열차가 문을 연 채 정거장을 통과하는 아찔한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지난 4일 지하철 1호선 전동차 128대, 5일 오전에만 73대가 출입문이 얼어붙어 정비창 신세를 졌다. 6일에도 이런 상황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운행 전동차가 줄면서 경인선 구간 등에는 역마다 수백 명의 시민이 몰려 극심한 혼잡을 빚었다.

코레일은 이전 비슷한 피해가 발생할 때마다 대책으로 도입하겠다던 ‘열선 장착 전동차’의 도입을 이유 없이 미뤄왔다.


#뿌려도 걱정, 안 뿌리면 말썽… 골칫덩이 염화칼슘

중부지방에 기록적인 폭설로 지자체마다 제설용 염화칼슘을 엄청나게 쏟아 부었으나 도로 위에 그대로 방치되면서 환경피해 우려가 나오고 있다. 폭설로 홍역을 치른 수도권은 지자체 대부분이 올 겨울용으로 확보한 염화칼슘을 대부분 소진했다. 이로 인해 사상 최악의 토양 오염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까닭이다.

지난 6일 경기도와 서울시 등에 따르면 도(道)는 이번 폭설에만 염화칼슘과 소금 1만3000여톤을 뿌렸고 서울시는 올 겨울 들어서만 세 차례에 걸쳐 제설제 1만5000톤을 쏟아 부었다.

도로에 뿌려진 염화칼슘은 눈 속의 수분을 흡수하며 녹아 쌓인 눈을 없애는 효과가 있지만 지나치게 사용하면 토양의 염분을 높여 가로수와 식물의 수명을 단축한다. 식물이 자라려면 수분이 공급돼야 하는데 토양 염분농도가 식물보다 높아지면 삼투압 작용을 못해 수분공급이 어려워지는 탓이다.

염화칼슘은 또 철과 반응하며 염화철을 형성해 차량 및 도로·교량 내부의 철 구조물을 부식시킬 수 있다. 더구나 분말로 된 염화칼슘이 공기 중에 떠돌다 사람의 기관지에 침투해 과민방응을 일으킬 가능성도 높다.

하지만 지자체들은 염화칼슘 살포로 발생하는 피해에 대한 대책이 사실상 없는 상황이다. 친환경 제설제를 살 예산이 턱없이 부족해 부식 우려가 높은 곳은 모래를 대신 뿌리는 게 전부다. 친환경 제설제를 사들여도 눈이 오지 않으면 이를 고스란히 버릴 수밖에 없어 지자체의 고민이 크다.

전문가들은 단기적으로 지금 도로에 남아 있는 염화칼슘을 걷어내고 날이 풀리면 하천 수질오염을 최소화하는 선에서 물을 뿌려 염도를 낮추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수영 기자] severo@dailysun.co.kr
[사진:맹철영 기자] photo@dailysun.co.kr

이수영 기자 severo@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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