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도라의 상자 된 야적장 컨테이너
판도라의 상자 된 야적장 컨테이너
  • 오두환 기자
  • 입력 2015-04-08 09:18
  • 승인 2015.04.08 09:18
  • 호수 1092
  • 3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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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최측근만 위치, 비밀번호 알아
▲ <사진: 뉴시스>

[일요서울Ⅰ오두환 기자] 일광그룹 이규태 회장이 공군 장비를 도입하면서 500억대 돈을 빼돌린 혐의로 구속됐다. 하지만 수사과정에서 이 회장은 입을 굳게 다물어 합수단 수사관들이 수사에 난항을 겪었다. 그러던 중 합수단은 측근들을 압박해 이 회장이 비밀자료들을 숨겨 놓은 컨테이너를 찾는 성과를 올렸다. 이 회장의 비밀자료가 숨겨진 컨테이너는 도봉산 자락 컨테이너 야적장에서 발견됐다. 이 컨테이너 안에는 무려 10년치 1톤 분량의 비밀서류가 발견됐다.

이규태 회장, 측근에게만 컨테이너 번호 알려줘
관리 업체는 컨테이너 박스 임대만, 내용물은 몰라

이 회장의 비밀자료가 숨겨진 컨테이너가 있던 곳은 의정부시 호원동의 컨테이너 야적장이었다. 도봉산을 오르는 등산로가 있을 만큼 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는 곳이었다. 하지만 사람들 중에는 이 컨테이너 야적장을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은 없었다. 단순히 물건을 보관하는 창고 정도로 여겼기 때문이다.

이규태 측근 행적 추적
기밀·전 기무사령관 파일도

합수단 검찰수사관이 이 컨테이너 야적장에 들이닥친 것은 지난 26일 오전이다. 당시 10여명의 검찰수사관이 들이 닥쳐 이 회장의 컨테이너 박스를 찾았고 문을 따고 들어가자 내부에는 엄청난 분량의 서류와 장부, 차명 통장,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USB 등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추후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곳에서 2~3급 비밀서류가 발견되기도 했다. 이 군사기밀들은 30개에 달하는 메모리카드에 담겨있었다.

다행히 1급 비밀서류는 아직까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양이 워낙 많아서 계속 분석 중이다. 1급 비밀은 전체 50만 건이 넘는 군사비밀들 중에 단 9건만 있을 정도로 아주 중요한 비밀이다.
일광그룹의 계열사, 일광폴라리스의 대표를 지낸 김영한 전 기무사령관의 비밀 파일도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야적장에는 동일한 모양의 컨테이너가 약 250여개가 섞여있었다. 정확한 정보를 갖고 찾는 것이 아니었다면 사실 이 회장의 컨테이너를 찾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실제 이 회장은 핵심 측근들에게만 컨테이너 번호를 알려줘 드나들게 했다는 게 합수단 측 설명이다.

합수단은 수사과정에서 이 회장의 금고지기로 알려진 일광공영 경리실장 김모씨 등 이 회장의 최측근 2명의 행적에 집중했다. 김씨 등에 대한 통화내역 확인 결과 특이하게도 도봉산 인근에서 통화를 자주 한 사실이 포착됐고, 이에 대해 김씨 등을 집중 추궁해 26일 새벽 비밀 컨테이너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이 회장이 비리 장부를 숨겨 두었던 컨테이너는 1.5톤짜리 컨테이너다. 내부를 살펴보면 깊이는 약 6m 정도다. 이정도 규모면 엄청난 양의 서류를 보관할 수 있을 정도다. 컨테이너 야작장에 있는 250여개의 컨테이너 중 200여개는 이미 주인이 있다. 요즘도 꾸준히 문의전화가 걸려올 정도로 성업 중이다.

물건 보관이 아니라
창고 임대, 월 15~20만 원

의정부 호원동은 서울에서도 가깝다. 고속도로로 향하는 길에 인접해 있어 지리적 입지도 좋다. 월 20만원에 약 4.4평 정도의 공간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만큼 컨테이너 임대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다. 컨테이너 임대료는 보증금 없이 월 20만원만 내면 된다. 2층으로 쌓여있는 컨테이너는 15만원이다.

컨테이너가 창고로 인기를 끄는 이유는 임대료만 내면 24시간 내내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누가 어떤 용도로 사용하는지 관리업체도 묻고 따지지 않는다. 계약서 상에도 창고를 임대해 주는 것이지 물건을 보관해 주는 것이 아니라고 써 있다.

이곳 컨테이너에 보관중인 물건들은 이삿짐이 제일 많다. 하지만 이 회장처럼 ‘은밀한’ 용도로 사용되는 경우도 많다. 과거에는 이런 컨테이너 박스에 일명 ‘짝퉁’ 가방, 의류 등을 보관하다 적발된 사례도 있고 마약밀매 용으로 사용되기도 있다.

자영업자들은 컨테이너를 순수한 창고용도로 쓰는 경우가 많다. 수시로 드나드는 데 불편함이 없기 때문에 필요한 물건을 보관했다가 나중에 찾아가기도 한다.

사실 수백 개의 컨테이너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는 관리업체도 알지 못한다. 관리업체 입장에서는 임대만 해줘도 임대수익을 올릴 수 있는데 굳이 안의 내용물이 무엇인지 꼼꼼히 따져가며 불필요한 일을 만들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개인 창고처럼 이용되는 컨테이너 야적장은 주로 인천, 의정부, 남양주, 고양, 하남 등 수도권 외곽에 집중돼 있다. 시내보다 접근이 편리하고 큰 대지가 필요한데 외곽일수록 땅값이 저렴하기 때문이다. 전국에 약 100여개의 컨테이너 야적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폐 수표·전표
주한 리비아대사 금고도

야적장 속 컨테이너 안에는 특이한 물건들도 많다. 이 회장처럼 회사 장부나 서류를 맡기는 경우와 이삿짐, 개인 물품을 맡기는 경우도 많지만 은행에서 각종 폐수표와 각종 전표를 맡기는 경우도 있다. 이밖에 길거리 1000원짜리 뽑기용 상품부터 단종된 구형 국산 승용차 부품 주형틀까지 다양했다.

가장 특이한 물건은 2011년부터 4년째 보관 중인 주한 리비아대사의 짐이다. 2011년 리비아 민주화 시위가 내전으로 번지면서 본국으로 급히 돌아간 주한 리비아대사는 아직까지 물건을 찾아가지 못하고 있다. 당시 주한 리비아대사가 맡긴 짐 중에는 금고만이 남아 있다.

컨테이너 창고 영업은 부동산 경기에 큰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요즘 같은 이사철이 성수기다.
하지만 최근 지방자치단체들이 공터에 컨테이너를 쌓아두는 식의 컨테이너 창고 허가 기준을 강화하기 시작하면서 대형 건물 안에 컨테이너를 넣어두는 ‘기업형 스토리지’ 업체가 늘고 있다.

freeore@ilyoseoul.co.kr

오두환 기자 freeore@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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