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만원 투자로 도박판 100전100승 ‘만만하네’

축구에만 ‘각본 없는 드라마’가 있는 게 아니다. 1966년 개봉작 ‘신시내티의 도박사’에는 에이스 석장짜리 ‘풀하우스’를 쥔 주인공이 ‘스트레이트플러시’를 잡은 상대에게 무릎을 꿇는 극적인 상황이 펼쳐진다. 도박전문가들은 이 같은 상황에서 스트레이트플러시가 나올 확률이 0.02%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그야말로 ‘영화 속 기적’이다.
하지만 사기도박판에서 이 정도의 반전은 그야말로 ‘깜도’ 안 된다. 결정적인 한 방으로 판돈을 싹쓸이하기 위해 필요한 건 단 두 가지. 상대의 패가 훤히 보이는 ‘목카드’와 약간의 ‘손장난’만 있으면 100전 100승은 식은 죽 먹기다. 문제는 이런 사기도박 장비와 기술이 이미 일반에까지 깊숙이 파고들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기자는 전화 한통으로 반나절 만에 관련 장비를 건네받을 수 있었다.
사기도박 장비 판매상이 일반 고객을 만나는 통로는 주로 인터넷 블로그와 카페 게시판이다. 포탈사이트에 개인 블로그를 개설하고 관련 키워드를 등록하면 고객이 검색어를 칠 때마다 페이지 1면에 뜨는 것을 이용한 것이다.
네이버와 다음, 야후 등 대형 포탈들은 이들 블로그를 보이는 족족 폐쇄하기 바쁘다. 사기 장비를 파는 행위 자체가 명백한 불법인 까닭이다. 그러나 판매상들의 대포폰 번호가 버젓이 등록된 게시물이 봇물처럼 쏟아지는 터라 단속에 애를 먹을 수밖에 없다.
목카드 종류만 60가지
기자는 직접 한 판매상과 접촉을 시도했다. 블로그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자 30대 초~중반으로 짐작되는 남자가 받았다. 기자가 상대방의 패를 읽을 수 있는 ‘목카드’ 값을 묻자 “5만원”이라는 친절한 답변이 돌아왔다. 일반적인 플라스틱 트럼프카드보다 10배 정도 비싼 값이다.
판매상은 “취급하는 목카드 종류만 60가지다. 가장 많이 찾는 건 공장목(공장에서 미리 표시가 된 상태로 나온 카드)과 약쇼(직접 약품으로 뒷면에 패를 본 떠 새긴 카드)다. 초보자도 한번만 테스트해보면 금방 쓸 수 있다”며 설명에 열을 올렸다.
그는 또 “지역마다 통용되는 (카드)브랜드가 다르다”며 기자가 있는 위치를 물었다. 카드 브랜드 중 ‘윈드밀’과 ‘제팬로얄’은 전국 공용, ‘바이시클’은 대구에서 통하고 전라도에선 ‘엔젤503’을 쓴다는 게 판매상의 설명이다. 일반적인 편의점에서 구할 수 있는 카드를 사기도박용 목카드로 개조해 파는 것이다.
“직접 테스트 하고 사세요”
개조된 목카드를 쓰려면 준비물이 하나 더 필요하다. 바로 카드 뒷면을 읽을 수 있는 특수 콘택트렌즈다. 렌즈 가격은 30만원. 최고급 신형렌즈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안경을 쓰는 기자가 불편하지 않느냐고 묻자 “렌즈엔 도수가 없다. 렌즈를 끼고 그대로 안경을 쓰면 된다”며 안심시켰다.
비싼 가격에 기자가 구입을 망설이자 판매상은 “직접 눈에 끼고 테스트한 뒤에 사라. 다른 집처럼 중국제 싸구려 팔 것 같으면 이런 말 하지도 않는다. 우린 정품 카드와 국산 렌즈만 취급한다. 만약 중국제라면 언제든 환불해주겠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기자는 ‘카드와 렌즈 여러 벌을 동시에 구할 수 있느냐’고도 물었다. 대량구매가 가능한지 확인할 요량이었다. 대답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 과거 중국과 대만 등에서 장비를 소량 수입해 들여오던 것과 달리 전문 제작자가 끼어 국내에서 생산과 판매가 동시에 이루어진다는 얘기다.
혹시 도박장에서 렌즈를 꼈다 발각될 염려는 없을까. 도박 초보자인척 “혹시 현장에서 문제가 생기지 않겠냐”고 물었다. 그러자 판매상은 “절대 걸리지 않는다. 눈동자 색깔과 비슷한 갈색과 검정색이 들어가 있어 눈에 띄지 않는다. 신형 렌즈는 도박장에서도 감정이 불가능하다. 안심해도 좋다”고 말했다.
판매상은 또 “현금 30만원 투자하면 판돈으로 10배, 100배 이상 따기는 쉽다. 직접 테스트하는 곳에서 장비 사용법이나 도박 노하우도 가르쳐 주겠다”고도 덧붙였다.
이 같은 사기도박 장비는 판매상과 고객이 직접 만나는 ‘현금직거래’를 원칙으로 한다. 거래기록을 남기면 안 되는 만큼 신용카드는 쓸 수 없다. 다만 전국적으로 수요가 많아 요즘은 택배 거래도 늘고 있는 추세다.
기자가 접촉한 판매상은 경기도 부천과 대구 등 두 곳에 본거지를 두고 있었다. 서울에 있는 기자가 카드와 렌즈 세트를 사겠다고 하자 판매상은 곧바로 약속장소를 잡았다. “부천 상동에 있는 A마트 앞에서 휴대폰으로 연락하면 물건을 들고 나가겠다”며 직거래를 제안한 것.
판매상이 약속한 렌즈의 테스트는 차 안에서 이뤄진다. 판매상은 “사무실에서는 손님을 맞지 않는다. 모든 테스트와 거래는 차 안에서 한다. 손님이 직접 차를 몰고 오면 훨씬 편하다”고 말했다. 마침내 그와 만날 장소와 시간이 정해졌다. 처음 판매상을 접촉한지 30분도 채 되지 않아 거래가 성사된 것이다.
어설픈 ‘타짜’… 인생 망친 사람들
조승우·김혜수 주연의 영화 ‘타짜’를 계기로 풍문으로만 떠돌던 사기도박판의 기상천외한 수법이 일반에 속속들이 알려졌다. 특히 인터넷과 책을 통해 간단한 손기술을 익힌 어설픈 ‘타짜’들이 크게 늘었고 덩달아 사기도박 관련 장비를 파는 판매상들은 뜻밖의 호황을 맞고 있다.
사기도박의 피해는 고스란히 도박판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호구’(도박판에서 타짜들의 먹이가 되는 이를 가리키는 은어)에게 돌아간다. 도박전문가들은 거의 모든 사설 도박장에서 순수하게 돈을 따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어떤 도박이든 주최자와 짜고 치는 사람에게 절대 유리하도록 ‘설계’돼 있기 때문이다. 어설프면 살아남지 못하는 곳이 바로 도박판이다.
한때 열풍을 일으킨 바다이야기 등 파친코, 슬롯머신 등 기계 도박도 마찬가지다. 최대한 많은 사람을 업장으로 끌어들여 더 많은 돈을 빼내는 것이 도박장의 구조다. ‘한탕의 꿈’은 그야말로 꿈에 불과하다.
지난달 초 자영업을 하는 Y씨(49)씨는 서울의 한 노래방에서 30대 남자 두 명과 일명 ‘바둑이 포커’를 하다 하룻밤 만에 1200만원을 날렸다. 억울한 마음에 습관적으로 Y씨는 도박판을 맴돌았지만 잃는 판돈만 커질 뿐 한 푼도 딸 수가 없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Y씨와 함께 판을 벌인 남자들이 형광물질로 패를 표시한 목카드와 이를 볼 수 있는 특수렌즈를 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경찰에 따르면 Y씨를 등친 사내들은 사기도박 도구 제작자인 김모(49)씨 일당에게 카드 12벌과 렌즈 두 쌍을 묶어 100만원에 사들였다. 그들은 서울 각지를 돌며 Y씨처럼 순진한 ‘호구’를 낚았고 엄청난 판돈을 긁어모았다. 100만원의 투자금이 아깝지 않은 수확이었다. 또 이들에게 장비를 판 김씨는 1년 동안 무려 25억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것으로 밝혀졌다. 김씨 일당이 시중 도박판에 푼 목카드는 총 3만 벌에 달했다.
김씨는 도박판에서 큰 돈을 잃었다고 소문난 도박꾼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한번에 큰 돈을 딸 수 있다”고 유혹해 도박 장비를 팔았다. 김씨 역시 기자와 접촉한 판매상과 마찬가지로 철저히 전화로만 주문을 받고 따로 약속장소를 정해 접촉하는 등 현금 직거래를 원칙으로 했다.
깊어가는 불황의 늪, 한 탕을 꿈꾸는 이들이 늘어갈 수록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는 짙어진다. 사기도박을 종용하는 전문 판매상이 일반인에게까지 마수를 뻗친 상황에서 당국의 단속이 시급한 실정이다.
#사기도박에 속지 않는 8가지 방법
순진한 사람이 사기도박판에 뛰어들면 ‘눈뜬장님’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이 같은 ‘늑대들의 소굴’에서도 벗어날 수 있는 요령은 있다. 판을 벌이며 특이한 소리나 행동을 주의해서 살피면 앉아서 엄청난 도박 빚을 떠안는 비극은 막을 수 있다.
▲패를 돌릴 때 화투목을 똑바로 쥐지 않고 펼치는 행동
= 뒷장의 표시 부분을 읽어 상대방에게 어떤 패가 들어가는지 확인하려는 동작일 수 있다. 상대방이 이런 행동을 할 경우 목카드를 썼을 가능성이 높다.
▲손가락을 모아 ‘기리패(화투를 나누기 위해 모은 것)’를 감싸는 행동
= 엄지는 기리패의 안쪽을 향하고 나머지 네 손가락은 상대의 시선을 가리고 위쪽을 눌러 화투를 기울이는 것은 밑장을 보려는 동작이다. 타짜들은 단 5cm 높이에서도 밑장을 볼 수 있다.
▲뒤집는 패를 공중으로 높이 쳐드는 행동
= 기리패 2장을 들어올려 1장은 바닥에 내리고 나머지 1장은 손안에 감추는 동작이다. 14장으로 고스톱을 하며 남은 화투장은 나중에 기리패에 돌려놓을 수 있다.
▲칼기리’(화투장 수가 딱 떨어지도록 나눠주는 것) 한다며 한 장씩 세듯 나누는 행동
= 타짜는 원하는 숫자만큼 화투를 집을 수 있다. 바람을 잡기 위한 눈속임 동작일 수 있다.
▲보통사람과 다른 특이한 동작을 계속하는 것
= 속임수를 쓰기위한 예비동작일 수 있다. 타짜는 속임수에 필요한 동작을 미리 반복해 습관처럼 보이도록 한다.
▲거울 등 반사 되는 물건을 주변에 놓고 치는 행동
= 사물을 통해 상대 패를 알아내려는 것이다. 타짜는 스치는 찻잔에 비친 것만 보고도 남의 패를 꿰뚫어본다.
▲상관없는 말을 중얼거리는 행동
= 일당에게 암호를 보내는 것이다. 무심코 던지는 말에 다른 사람이 일정한 패를 내놓는다면 십중팔구다.
▲더운 여름에 긴소매 옷을 입는 것
= 손목에 바꿔칠 화투를 숨기기 위한 복장이다. 타짜는 화투 네 모서리를 손에 오므려 언제든 화투를 감출 수 있다.
[이수영 기자] severo@dailysun.co.kr
이수영 기자 severo@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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