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마누라도 병원에 낚였다”
병원이 멀쩡한 사람을 죽인다? 지난 9월 부산 D성형외과 연쇄 사망사고 이후 의료사고가 잇따라 환자들이 공포에 떨고 있다. 문제의 병원이 수술복도 없이 수술을 감행했다는 증언이 나와 파문이 인 가운데 지난 2일 역시 부산에 위치한 M병원에서 자연분만을 한 30대 산모가 돌연 사망해 충격을 줬다. 지난 3월에는 인근 I병원에서 제왕절개로 출산을 한 20대 산모가 수술 부작용으로 숨진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인터넷 세상이 발칵 뒤집히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대형 종합병원 전문의의 과잉진료로 피해를 입었다는 40대 주부의 하소연이 눈에 띈다. 지난해 자궁 적출수술을 받은 강모(43·여)씨는 “의사가 ‘암이 생길 수 있다’고 겁을 주는 바람에 멀쩡한 자궁을 드러냈다”며 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 중이다.
강씨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종합병원이라는 간판을 믿고 몸을 맡겼다가 여자로서 생명이 끊어졌다”며 절망감을 드러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강씨의 남편이 현직 정형외과 전문의라는 사실이다. 의사 부인마저 피해가지 못한 의료분쟁의 늪을 집중 조명했다.
강씨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처음부터 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할 생각은 없었다”고 말했다. 병원이 최소한의 미안함만 표했더라면 상처를 덮고 넘기려 했다는 것이다. 더구나 현직 의사인 강씨의 남편도 “의료소송에서 환자가 이기는 건 기적”이라며 소송을 말렸다.
그러나 과잉진료 여부를 따지자 주치의는 “의사가 신이냐”며 되레 윽박질렀고 결국 법에 억울함을 호소할 수밖에 없었다는 게 강씨의 하소연이다.
“의사 남편이 소송 말렸다”
2007년 5월 H병원에서 자궁암 검진을 받은 강씨는 자궁에 3cm 크기의 근종(혹)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듬해 2월 J병원을 찾은 강씨는 H병원에서 받은 진단 결과를 의사에게 알렸고 주치의는 1개월 뒤인 지난해 3월 10일 강씨의 자궁을 드러냈다.
드러낸 자궁 조직을 검사한 결과 단순 근종 외에 암세포나 암으로 발전할 수 있는 이상조직은 발견되지 않았다. 한마디로 멀쩡한 장기를 통째로 잘라냈다는 얘기다.
강씨에 따르면 담당의사 S씨는 “암 생기는 자궁은 없는 게 낫다”며 자궁적출을 부추겼다. 검사결과에 따르면 강씨는 이상이 있는 부위만 국소적으로 제거하는 원추절제술과 자궁적출, 두 가지 치료법을 선택할 수 있었다.
원추절제술은 비교적 간단한 수술로 위험성도 낮다. 그러나 S씨는 굳이 자궁 자체를 드러낼 것을 권했을 뿐 아니라 이후 생길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해서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는 게 강씨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J병원 측은 “강씨가 다른 병원에서 이미 자궁적출을 권유받은 상황에서 월경과다 등 이상 징후가 있었다”며 “그래도 본인의 의견을 존중하기 위해 수술 스케줄의 수술명을 ‘원추절제술’로 바꾸고 충분한 설명으로 선택할 기회를 줬다”고 맞섰다.
반면 강씨는 ‘본인에게 충분히 선택할 기회를 줬다’는 병원 측의 주장은 말도 안 된다는 입장이다. 강씨는 “처음 H병원에서 자궁적출을 권유받은 뒤 인터넷을 통해 부작용이나 후유증 등을 검색했고 이 내용을 S씨에게 말했다”며 “그런데도 의사는 ‘비전문가가 쓴 인터넷 글은 믿을 수 없다’ ‘암 생기는 자궁은 없는 게 낫다’는 등 겁을 줘 어쩔 수 없이 적출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석연찮은 의사의 ‘설레발’
그런데 강씨가 처음부터 수술을 문제 삼은 건 아니었다. “대형 종합병원이니 어련히 잘 하겠느냐”는 의사 남편의 말을 믿고 회복 중이던 강씨에게 S씨는 이상한 말을 했다. 강씨에 따르면 S씨는 “수술이 잘 됐을 것”이라며 “물에 빠진 사람 건져놨더니 나중에 보따리 내놓으라 하지 말라”는 말을 먼저 꺼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강씨는 자신의 진료기록을 남편이 아는 다른 산부인과 전문의에게 보였다. 그 결과 “꼭 자궁을 드러내지 않아도 충분히 치료가 가능했을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더구나 수술 뒤 몸에 적잖은 변화가 생겼음을 스스로 느끼면서 강씨는 억장이 무너졌다.
그는 “체형이 빈약해지고 부부관계에도 애로사항이 생기면서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점점 더 확실히 들었다”며 “혹시 S씨가 자신의 과잉진료 책임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선수를 친 게 아닌가하는 의심까지 하게 됐다”고 말했다.
강씨는 또 “모든 의사들이 내 남편처럼 환자에게 애정을 쏟는다고 믿은 게 바보 같았다”며 “남편의 동료들에게 ‘수술 전 병원에 남편이 의사라고 말했으면 이런 말썽은 안 생겼을 것’이라는 말을 듣고 머리를 얻어맞은 듯 했다”고 호소했다.
똑같은 환자인데 가족이 의사이냐 아니냐에 따라 대우가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금할 수 없었다는 얘기다.
한편 올 들어 산부인과 관련 의료사고가 연이어 발생하면서 산모들이 공포에 떨고 있다. 지난 3월 부산 I병원에서 제왕절개를 한 20대 산모가 수술 부작용으로 사망한 것을 비롯해 서울 양천구 K산부인과에서는 산모와 아기가 연달아 숨지는 비극이 벌어졌다.
#부산 M병원 사망 산모 유족, 병원과 합의 중
지난 2일 부산 M병원에서 자연분만 후 숨진 산모 A씨(30)의 사인이 오리무중에 빠졌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부검결과 명확한 사인을 찾을 수 없다는 소견이 나온 것이다. 경찰은 국과수에 추가로 조직검사 등 정밀 검사를 의뢰했다. 그러나 검사 기간만 한 달 이상 소요돼 사건 해결까지는 적잖은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A씨는 지난 2일 아침 8시 경 딸을 자연분만으로 출산한 뒤 직접 모유를 먹이는 등 안정된 상태였다. 그러나 불과 몇 시간 만에 상태가 급격히 악화돼 부산대 병원으로 호송됐으나 숨을 거뒀다. 유족들은 이 같은 정황을 토대로 M병원의 의료과실 가능성을 강하게 제기했었다. 그러나 A씨의 사인이 확정되지 않아 병원 측 과실을 단정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사건을 수사 중인 부산동부경찰서 형사1팀 관계자는 “현재 국과수의 최종 소견이 나올 때까지 수사를 잠시 보류했다”며 “병원의 의료과실을 입증할 증거나 정황이 나오지 않아 섣불리 피의자 조사를 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유족과 병원 측이 차분한 분위기에서 합의와 관련된 대화를 나누는 걸로 알고 있다”며 “유족들의 흥분도 많이 가라앉은 상태”라고 전했다.
[이수영 기자] severo@dailysun.co.kr
이수영 기자 severo@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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