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보좌진 세계-32]“진정·건의문 접수”(중편 )
[국회 보좌진 세계-32]“진정·건의문 접수”(중편 )
  • 홍준철 기자
  • 입력 2015-04-06 10:21
  • 승인 2015.04.06 10:21
  • 호수 1092
  • 49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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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원회관 날아든 강원랜드 운영 폐해 ‘진정
- 국회 보좌진-언론사 공조 사행사업 전반 점검 계기


의원실로 배달된 온 강원랜드 카지노 운영의 문제점을 담은 진정서는 사행산업의 폐해를 새삼스럽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우편물에는 발신자 자신이 그동안 어떻게 천문학적인 거액을 카지노에서 탕진하게 되었는지 소상히 밝혔다. 당시 ‘병정(대리 베팅)’ ‘사이드 베팅’ 등 낯선 단어들이 등장하는 카지노 운영상의 의문점들을 적시해 놓고 있었다. 디퍼런스룸(VVIP)에서는 1회 베팅한도를 초과하고, 이를 묵인하고 있던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실제로 강원랜드 카지노 게임장을 출입하다가 거액을 탕진한 당사자가 작성한 진정서라 터무니없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사실인지 여부를 쉽사리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신뢰감도 들었다. 조목조목 강원랜드는 물론 사행산업의 전반적인 폐해를 적시해 놓고 있었다. 진성서 말미에는 억울함을 풀어주고 문제점을 파헤쳐 달라는 정책건의와 함께 자신의 전화번호도 적혀 있었다.

내용보다는 우선 제보자부터 궁금했다.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어떻게 이렇게 카지노 운영의 문제점을 자세히 알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런 궁금증이 생기면서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그 적혀 있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몇차례 휴대폰 신호음이 가더니 이내 낯선 이가 전화를 받았다. 지긋하게 나이가 든 목소리였다. 그는 대뜸 “누구시냐, 무슨 일로 전화를 했느냐”고 전화를 건 용건부터 물었다. 마치 사람에 대한 경계를 하는 듯한 반응이었다.

필자는 반갑게 인사부터 했다. 먼저 경계감부터 없애려고 했다. 낯선 사람이 전화를 하면 대부분이 경계하기 십상이다. 의원실에 근무하는 보좌관이라고 소개했더니 재차 확인을 했다. 어느 의원실이냐, 소속 상임위원회는 어디냐고 꼬치꼬치 캐물었다. 필자는 야당 소속이고,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에서 의정활동을 보좌하고 있다고 소개하니 그제서야 반갑게 대했다.

300명 의원 제보 단2명만 사실 확인

우선 전화를 걸어온 사실에 대해 너무 고맙다는 반응이었다. 사실은 자신이 전체 300명의 의원실에 필자가 받은 내용과 같은 진정서를 보냈다고 한다. 그것도 직접 며칠을 고생해서 작성해 등기우편으로 송부했다고 한다. 당연히 의원실에 제보형식의 진성서를 보내면 답신전화라도 있거니 의레 기대를 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어느 누구하나 전화를 걸어온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던 차에 뜻밖의 전화를 받으니 무척 반갑기도 하고, 의아스럽기도 했다고 한다. 전체 의원실 에 같은 내용의 진정서를 보냈지만 전화를 준 수신자는 필자를 포함해 당시 민주노동당의 정책실 근무자 등 단 2명뿐이었다고 한다. 의원실 보좌진 가운데는 필자가 유일하다고 것이었다. 솔직히 조금 당황스러웠다. 진정서 내용을 보면 당연히 확인을 해야 할 부문이었는데 아쉬웠다.

그의 주장을 듣고는 뜻밖이었다. 필자는 이같은 내용의 진정서나 제보를 받으면 매번 확인한다. 편지나 전화, 이메일 등으로 전달되는 등 제보내용은 사실여부를 떠나 현황파악을 해서 상대방에게 회신전화를 해준다. 간혹 발신자가 없이 오는 제보도 해당 피감기관에 관련 자료를 요청하고 확인한다. 그렇지 않으면 보좌진으로서 직무를 다하지 못하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전에도 몇차례 의원실을 접촉해 문제제기를 시도했지만 번번히 실패했다고 한다. 몇 달전에 어느 보좌관을 만나 하소연을 했더니 자료요청만 하고서는 흐지부지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화가 나기도 했고, 지쳤다고 한다. 진정서를 보내도 소용이 없구나 하는 불신마저 들었다는 것이다. 이전에 실망스러운 사례를 몇차례 당했던 제보자는 필자 역시 그리 신뢰하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이번에도 의례적인 전화가 아니냐는 식이었다. 단순히 사실확인 정도 선에서 그치겠거니 하는 반응이었다. 그만큼 불신이 컸기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든다.

그래도 솔직히 약간은 불쾌했다. 진정서를 보내 놓고 오히려 전화를 건 사람을 신뢰하지 못하면 어쩌겠는가 싶었다. 필자는 “왜 그러시냐”고 물었다. 역시 과거의 사례를 언급하기 시작했다. 난 다르다고 설득했다. 난 그렇게 무책임하지 않다고 설득하기 시작했다. 정 믿지 못하겠다면 언론사 기자를 소개해 주겠다고 했다. 먼저 언론을 통해 진정내용을 털어놓고 나서 나중에 사행산업 전반적인 문제점을 다뤄도 늦지 않다고 제안했다. 전화통을 붙잡고서 한참을 설득했다.

언론사 기자를 연결해 줘

하지만 언론마저 믿으려 하지 않았다. 솔직히 난감했다. 모든 곳에 신뢰감이 떨어져 있는 듯해 보였다. 소개하는 기자마저 강원랜드 측의 입장을 두둔한다면 어쩌겠느냐는 식이었다. 당황스러웠다. 또다시 설득이 길게 이어졌다. 아주 긴 시간동안 통화해서 결국 설득했다. 전화를 끊고나서 곧바로 모 주간지 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기자는 취재아이템에 목말라하는 직업이다. 기자에게 사정을 이야기했더니 곧바로 만나겠다는 반응이었다. 기자에게는 설명은 간단했다. 억울한 사연이기도 하지만 내국인 전용 강원랜드 카지노 운영에 문제가 많은 것 같다고 알려줬다.

진정인을 소개할 테니 그를 만나서 취재해 보는 게 좋다고 말했다. 기자답게 눈치가 빨랐다. 특유의 취재감이 있었다. 진정인의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다. 어렵사리 진정인과 기자를 연결해 주었다. 나중에 해당 기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진정인을 직접 만나 카지노 운영상의 문제점을 세세히 들었다고 한다. 오히려 고맙다고 했다. 그 다음주에 해당신문를 보니 대서특필했다. 「강원랜드를 해부한다」라는 시리즈 기사로 조목조목 문제점을 지적하는 기사가 나왔다. 내심 다행스러웠다.

며칠 뒤 진정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기자를 소개해 줘서 고맙다고 했다. 그러고는 의원회관으로 찾아오겠다고 했다. 얼마 뒤에 그가 찾아왔다. 중년의 신사였다. 선입견 때문이었는지 왠지 초췌한 모습이겠거니 짐작했지만 말쑥한 차림이었다. 의원회관에서 1시간 이상 긴 대화를 나눴다. 자신이 카지노를 출입하게 된 동기부터 인생역정, 거액을 탕진하면서 체험했고 느꼈던 국내 사행산업의 문제점들을 세세히 들려줬다.

필자는 연신 메모를 했다. 가져온 증빙자료를 일일이 확인하고, 추가로 자료요청을 할 부문도 챙겼다.
곧바로 강원랜드와 문화체육관광부,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 등 해당기관에 자료요청을 했다. 예상대로 문제점이 드러났다.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해 보도자료를 배포했더니 언론에서 연일 대서특필했다. 그렇게 강원랜드 카지노 운영의 문제점이 드러났다. 18대 국회 첫 번째 국정감사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강원랜드는 물론 사행산업 전반에 대한 문제점을 다루었고, 수집자료를 바탕으로 「사행산업의 실태와 정책과제」라는 정책자료집도 발간하였다. <계속> [김현목 보좌관]

홍준철 기자 mariocap@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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