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3·4세 경영능력 평가보고서 들여다보니
재벌3·4세 경영능력 평가보고서 들여다보니
  • 이범희 기자
  • 입력 2015-04-06 09:19
  • 승인 2015.04.06 09:19
  • 호수 1092
  • 2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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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개사 오너 낙제점…해당 기업들 ‘굴욕’

[일요서울 ㅣ 이범희 기자] 지난 2월 24일 청와대에서 열린 기업인 초청 간담회에는 삼성 이재용 부회장과 현대자동차 정의선 부회장 등 재벌 3세들이 대거 참석했다. 사실상 3세 시대가 열렸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재계는 받아들인다. 그런데 이들의 경영능력이 모두 ‘F학점’이란 평가가 나와 주목된다.

경제개혁연구소는 최근 경제전문가 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지난달 30일 ‘재벌총수 일가의 경영권 세습과 전문가 인식도 분석’ 보고서를 내고 이같은 내용을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경제개혁연구소가 KBS 프로그램 ‘시사기획 창’과 공동으로 기획해 작성한 것이다. 이번 보고서는 재벌가 3~4세, 11명(임원 경력 5년 이상)의 경영능력을 설문조사했다. 그 결과 이들은 경영능력에 대해 평균 35.79점을 받았다. 모두 낙제점이다.

경제개혁연, 전문가 설문조사…임원 경력 11명 평균 35.79점
롯데 신동빈 회장 46점으로 1위, 박정원 회장·정의선 부회장順


이번 보고서의 평가 대상자는 이재용(삼성전자), 정의선(현대자동차), 신동빈(롯데), 조원태(한진·대한항공), 박정원(두산건설), 정용진(신세계), 조현준(효성), 정지이(현대유엔아이), 이우현(OCI), 박세창(금호타이어), 이해욱(대림산업) 등 재벌 3~4세 11명이다.
경영능력 점수 상위 3인은 신동빈 롯데 회장, 박정원 두산 회장,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었다. 하위 3인에는 조원태 대한항공 부사장, 조현준 효성 사장, 박세창 금호타이어 부사장이 이름을 올렸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롯데 신 회장, 두산 박 회장, 현대차 정 부회장은 각각 45.9점, 43.4점, 41.6점을 얻었다.
중하위권은 신세계 정 부회장(41.3점), 대림 이 부회장(38.9점), OCI 이 사장(35.78점), 삼성전자 이 부회장(35.75점), 금호 박 부사장(34.3점), 효성 조 사장(30점), 현대 정 전무(27.7점), 대한항공 조 부사장(18.6점)의 순서였다.

부정적 이유는

경영승계를 위한 부의 이전과 재산축적 과정의 정당성도 평균 2.74점(10점 만점)에 그쳤다. 롯데 신 회장은 4.44점으로 최고점을 얻었다.

반면 제일모직(옛 삼성에버랜드)과 삼성에스디에스 전환사채의 헐값발행으로 수조원의 상장차익을 얻은 삼성전자 이 부회장은 1.60점으로 최저점을 받았다. 효성 조현준 사장(1.7점), 대한항공 조원태 부사장(1.84점) 등도 낮은 점수를 받았다.

현재와 같은 경영권 승계와 관련한 질의에서도 부정적인 답변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재벌총수 일가의 자녀에 대한 경영권 승계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이 56%로 ‘바람직하다’(14%) 보다 4배 많았다. 바람직하지 않은 이유(중복응답 가능)는 ▲경영능력 부재(36.7%) ▲불법·편법적인 부의 상속(30.8%) ▲경쟁 없는 승계(19.2%) ▲불투명성(13.3%)이라는 답변이 있었다. 또한 자녀에 대한 경영권 승계는 기업 가치를 훼손시킬 수 있다는 질문에도 부정적 의견이 58%로 긍정의견 6%에 비해 무려 9배 이상 차이를 보였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자녀에 대한 경영권 승계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에 56%가 찬성표를 던졌으며 그 이유로 경영권 승계에 대해 승계과정 중에 발생한 문제가 향후 경영권 승계의 정당성을 훼손시키고 (90.0%) 총수일가 개인이 저지른 경제사건 (횡령, 배임 등)이 그룹의 경영권 승계 여부를 결정하는 데 역할을 한다는 이유를 들었다.  이외에도 총수일가 개인의 도덕성이 그룹의 경영권 승계 여부를 결정하는 데 중요하고 (중요 73.5% vs 그렇지 않다 8.2%) 경영능력(47.3%)과 소유권 승계과정의 적법성(31.2%)등이 꼽혔다.

부정적인 견해가 많은 것과 관련해 전문가들은 ‘승진기간’ ‘경영능력 검증’ ‘후계자 선정과정에서의 경쟁’ 승계과정의 투명성에서 평균 2.42점~2.58점으로 매우 낮은 점수를 부과했다. 이러한 양상은 승계과정에 대한 다양한 문제점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부정적인 시각이 더 큰 쪽으로 틀이 형성된 것 같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우리나라 재벌후계자 선정에서 가장 결정적으로 영향을 하는 요인으로 그룹 총수의 판단이라는 점도 재차 확인됐다. 전문가들은 지배주주 또는 회장 등의 판단이 92.73%로 압도적으로 작용한다고 답했다. ‘나이’ ‘경영능력’ ‘경영수업연수’는 각각 5.89%, 4.58%, 3.59로 나타나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지배주주 또는 회장 등의 판단의 비중이 가장 높은 승계자로는 이재용 부회장(97.96%)인 것으로 나타났고, 그 뒤를 정용진 부회장(95.92%), 조현준 사장, 이우현 사장이 95.8%로 동일수치를 기록했다.

설문에 참여한 한 전문가는 “일부 재벌그룹 후계자들은 경영능력을 최우선으로 평가받거나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후계육성 프로그램에 의해 선정되는 것이 아니라, 시중에 널리 알려진바와 같이 오로지 재벌그룹 총수의 판단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다시금 확인됐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이 세습경영자들에 대해 직관적으로 갖고 있는 느낌에 관한 조사에서는 ‘검증미흡’ ‘부도덕 자질부족’ ‘비전부재’ 등 부정적인 단어들이 주류를 이뤘다.

긍정적인 평가와 장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전체적으로 부정적인 평가가 압도한다. 이렇게 부정적인 단어 또는 표현들이 많은 배경에는 후계자들이 선대의 그늘 아래에 있으면서 본격적으로 지도력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재벌세습에 대한 견해는

이번 보고서를 작성한 경제개혁연구소 위평량 연구위원(경제학 박사)은 “전문가들은 세습경영자에 대해 우려와 경고 메시지를 보내고 있고, 이와 관련해 우리의 기업과 한국경제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다”며 “따라서 재벌그룹과 총수일가 등 관계자들은 이러한 경고의 메시지를 단순히 ‘반기업 정서’ 또는 ‘반시장 논리’로 치부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지적했다.

위 연구위원은 “각 그룹은 합리적인 후계자 양성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재벌그룹의 지배구조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때 후계자 선정은 혈연 중심이 아니라 그룹 또는 회사 내외 모든 인적자원을 대상으로 해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위 연구위원은 “경영권 세습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실정법 내에서 정당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라며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따라 진행될 때 재벌에 대한 일반인들의 부정적인 평가는 최소화 될 수 있고, 이와 같은 절차적 정당성이 확보될 때 비로소 경영권 승계 이후 실질적으로 리더십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마지막으로 “소수 기업집단으로의 경제력 집중을 통제할 수 있는 법과 관행을 정착시켜 중소기업을 통한 성장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국민들이 세습경영자로부터 탁월한 능력을 요구하고 세습체제가 갖고 있는 현실에 대해 크게 우려하는 것은 재벌그룹이 국민경제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보다 건강한 국민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중소기업들이 우리 경제의 성장파이에서 더 큰 비중을 차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설문에 참여한 한 전문가는 “재계는 재벌체제를 옹호하기 위해 외국 가족기업의 성과를 인용하고 있다”며 “전문경영인 체제 등을 도입하는 선진국 가족기업에서는 가문의 일원이라는 이유만으로 후계자가 되는 사례를 찾아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skycros@ilyoseoul.co.kr     

이범희 기자 skycro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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